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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상의 수석도(樹石圖)와 삼익지우(三益之友)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1710-1760)은 고조부가 영의정을 지냈다. 배청친명파로 청에 두 번이나 억류되었고 효종 즉위로 영의정이 된 이경여(李敬輿/1585-1657)가 그의 고조부다. 그의 증조 이민계(李敏啓)가 서자다. 서출의 자손은 소과에 급제하여도 대과를 보지 못한다. 벼슬에 나아가도 종6품이 한계다. 성격도 휘어지지 못하여 음죽현감도 관찰사와의 갈등으로 그만 두게 되었지만 친구들은 많았다. 그의 집도 친구들이 알선하여 주었고 능호관이라는 당호도 얻었다. 그가 전서(篆書)로 쓴 글을 모은 첩(帖)에 원령필(元靈筆)이란 표지를 달은 작품은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꼬장꼬장한 김정희도 원령 이인상의 전각만은 크게 칭찬하였다. 을 통해 배웠다고 하는 그의 그림..

옛 그림 속 글 2019.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