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경송초루도(徑松艸樓圖)>로 불린다.
제목에 의문을 가지는 선에서 그친다.
이윤영(李胤永, 1714∼1759)이 능호관 이인상의 <수하한담도>에 題詩를 적어
나도 블로그에 올리며 공부한 적이 있다.
이윤영은 字인 윤지(胤之)로 주로 불린다.
그의 호는 澹華齋(담화재), 明紹(명소), 丹陵(단릉)이다.
충남 홍성(옛 결성(結城))에서 태어났다.
부친 이기중(李箕重/1697-1761)이
1720년 성균관 유생이 되어 서울에서 성장했다.
李麟祥(1710∼1760), 任邁(1711∼1779) 등과 어울려
<서지상하기(西池嘗荷記)>를 써 당시 서울 집 풍경이 묘사되고 있다.
1743년, 1746년, 1751년 각각
재령(載寧), 김제(金堤), 단양(丹陽)에 부임한 부친을 따라 머무르기도 하였는데,
특히 단양을 좋아하여
1752년부터 1755년까지 구담봉이 바라보이는 곳에 창하루(蒼霞樓)를 짓고 은거하였다.
그리고 단양을 시집 <단릉록(丹陵錄)>과 산수기 <산사(山史)>로 읊고 표현했다.
평생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단양에 은거하며 지었다는 누각 창하루의 지붕은 볏짚을 사용했다.
이인상이 창하루를 찾아 그렸다는 그림이 있다.(아래)
이윤영이 그린 이 그림도 창하루라고 본다.
<단양읍지(丹陽邑誌)>에도 기록이 보이는 이 누각은
지금의 장회나루 근처 구담봉이 보이는 한강 상류 강가에 있었다 한다. 지금은 없다.
이 부채그림에 능호관이 쓴 글은 이렇다.
花㴱柳遠(화심류원)/ 꽃이 우거지고 버들은 아득하여
不分行徑(불분행경)/ 다니는 길을 구분 못하겠네.
起樓水中(기루수중)/ 물에 누각을 세워
將以絶塵(장이절진)/ 장차 세속과의 인연을 끊으려하네
彼倚欄而晤語者(피의란이오어자)/ 저기 난간에 기대 서로 떠드는 것은
其有邵子之樂(기유소자지락)/ 그게 소옹(邵雍)의 즐거움이 있어선가
而文山之悲耶(이문산지비야)/ 문천상(文天祥)의 비련인가?
題胤之畵扇(제윤지화선) 부채에 그린 윤지의 그림에 쓰고
奉正 泉齋(봉정 천재) 천재에게 질정을 청하며 드린다.
麟祥 이인상
1. 㴱(심) : 深의 古字다.
음을 나타내는 오른 쪽은 又(우)와 火(화)를 합한 모양의 글자에 구멍穴을 써서
사람이 주거하는 동굴에 불을 손에 들고 깊숙이 들어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왼쪽에 물水 部를 더하여 물의 바닥이 깊음을 의미한다.
이글의 심(深)은 무성하다 이다. 같은 뜻으로 쓰인 杜甫의 시구는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나라 망해도 산하는 있어 봄이 되니 초목이 우거진다)이다.
2. 樓 앞의 글자를 일어날 起로 볼 수밖에 없다.
서법은 예나 지금이나 개인의 차가 심하다.
그럼에도 起의 초서라 보기에는 무리이나
楊, 超, 招의 초서체가 이인상이 쓴 것과 비슷하나 앞뒤 의미 연결이 안 된다.
3. 絶塵(절진) : 속세의 인연을 끊다
4. 晤語(오어) : 마주 대하여 터놓고 이야기함
5. 邵子(소자) : 소옹(邵雍/1011-1077)
字는 요부(堯夫)이고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이천옹(伊川翁)으로 송대 역학가(易學家)다.
시호가 강절(康節)이어서 주로 소강절(邵康節)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천재였고, 책에 도가 있음을 일찍이 깨달았다고 한다.
북해(北海)의 이정지(李挺之)에게 하도낙서와 복희(伏犧)8괘, 천문, 역법 등을 배웠고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자족을 했다.
낙양에 살아 자칭 안락선생이라 하였고. 외출할 때면 한 사람이 끄는 작은 수레를 탔다고 한다.
인종이 장작감주부(將作監主簿) 등의 벼슬을 제안했지만 병을 핑계로 모두 사양하고
평생 낙양에 은거했다.
선천학(先天學)이라는 새로운 역학을 창시했는데
만물은 모두 태극에서 말미암아 변화하고 생성한다고 주장했다.
음(陰) 양(陽) 강(剛) 유(柔)의 4원(四元)을 근본으로 하고, 4의 배수로서 모든 것을 설명했다.
6. 문산(文山) : 문천상(文天祥/1236-1282)
字는 송서(宋瑞), 이선(履善)이며 號가 문산(文山)이다.
나이 20에 진사과에 장원한 수재였으며
쓰러져가는 송(宋)에 충성을 다하고 원(元)에 끝까지 투항하다 잡힌 뒤,
끝내는 쿠빌라이의 전향 권유도 물리치고 효수 당했다.
7. 奉正泉齋(봉정천재) : 奉은 드린다. 正은 叱正(질정) 泉齋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이인상이 단양으로 가 이윤영이 은거한 창하루를 그렸다는 그림이 있다.
이른바 <강상초옥도(江上草屋圖)>다.
누각을 자세히 보면 좀 다르다. 누각의 기초와 형태가 육각과 사각으로 다르고, 지붕의 층구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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