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毫)으로 먹고 사는(生) 집(館)이란 號를 가졌고
‘조선의 고흐’라 불리는 기인 최북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라기’라 불린 최북
이름 北을 파자하여 七七이라 자칭하여 나도 감히 그를 칠칠선생으로 부르고 싶다.
키가 매우 작고, 매섭고 괴팍한데다 오만하고 거칠었다는 칠칠선생은
우봉 조희룡이 부잣집 광대를 피한 것은 장하나 칠칠 사십구에 죽었다고 하는데
유홍준이 이규상과 신광하의 평을 잣대로 판단했듯, 적어도 칠십은 넘겨 졸한 것 같다.
칠칠선생은 강세황과 비교되는 대가로 손꼽힌다.
치졸한 듯하며 소박하고 정감어린 그림을
일본은 물론 전국을 돌며 민중에게 그려주며 얻어 살았다는 그의 삶에 끌려
그의 그림에 쓴 글을 나름 읽어보고자 한다.
1)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이 그림의 畵題는 唐(당)대 강골하였다는 유장경(劉長卿 709?-789?)의 시
<逢雪宿芙蓉山(봉설숙부용산)>의 맨 뒷 구절을 화제(畵題)로 적었다.
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일모창산원, 천한백옥빈.)
柴門聞犬吠, 風雪夜歸人. (시문문견폐, 풍설야귀인.)
해는 저물어 푸른 산은 멀어지고, 날 추우니 초가집이 구차하다.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들리니, 눈보라 치는 밤 돌아온 사람.
白屋(백옥) ; 초라한 초가집.
貧(빈) : 형용사, 가난하다, 구차하다, 모자라다, 인색하다.
柴門(시문) : 사립문
칠칠께서 이 그림을 손가락으로 그렸다고도 하는 데 초가집 앞 검은 개와 시동과 지팡이 든 사람이 보인다.
아울러 유장경의 또 다른 시 听彈琴(청탄금)의 싯구를 단원이 그림에 화제로 쓰기도 했다.
2) 空山無人圖
왼쪽 위에 호방하게 쓴 여덟 글자 空山無人 水流花開
누가 먼저 이 글자를 썼는가가 왜 그리 중요한지는 모르겠으나
왕유의 空山不見人도 아니며 당말 시인 사공도의 二十四詩品의 짜깁기는 그럴싸하나 아니며
여러 문인들이 즐겨 쓴 이 단어를
소식(蘇軾1037 ~ 1101)이 十八代阿羅漢頌(십팔대아라한송)에 처음 여덟 자를 완성한 것이 분명하다.
단원도 추사도 이를 화제로 그리고, 썼다.
그 내용은 이렇다.
飯食己畢 撲鉢而坐(반식기필 박발이좌)
식사를 이미 끝내고 바리때 엎고 앉으니.
童子茗供 吹籥發火(동자명공 취약발화)
동자가 차 봉양하려 대롱을 불어 불붙이네.
我作佛事 淵乎妙哉(아작불사 연호묘재)
내가 불사를 짓노니 깊고 묘하도다!
空山無人 水流花開(공산무인 수류화개)
빈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그리고 소식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칭해지며 12세기 전반 북송(北宋)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활동한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1045-1105)의 시에도 이 여덟 자가 보인다.
萬里靑天 雲起來雨(만리청천 운기래우) 구만리 푸른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 비를 부른다
空山無人 水流花開(공산무인 수류화개) 빈 산에 사람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황정견의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 부옹(涪翁)으로,
장뢰, 조보지, 진관 등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불린다.
소동파와 황산곡이 여덟 자를 처음으로 시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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