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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장락동 모전칠층석탑

제천시 장락동 65-2번지 일원 장락사지에 높이 9.1m 흑회색 점판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칠층석탑이 서 있다.석재는 20리 떨어진 용두산에서 캐왔다고 한다.(네이버지식백과) 전탑이나 모전석탑은 많은 부재가 결구되는 특성으로 내구성이 좋다.아울러 대다수가 고층으로 쌓는 배경에는 교통로 경영과도 관련이 있다.전탑이나 모전석탑이 남한강과 낙동강 수계에 집중 분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락사지에는 삼국시대에 사찰이 건립되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찰로 존재했다.영월 수주에 신라 하대 구산선문 중 하나로 지금의 법흥사 자리에 사자산문 흥녕선원이 있었다.사자산문의 중창자가 징효대사(澂曉大師)다. 충주와 단양에서 흥녕선원을 가려면 장락사지를 거쳐야 하기에 두 사찰간의 연관을 짓는 경향도 있다. ..

봉화 서동리 동서삼층석탑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0번지 춘양중학교 안에 동·서로 마주 서 있는 2기의 탑으로 쌍탑형식을 띤다.학교부지내에 있어 정문에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학교 운동장 우측에 자리하고 있었다.당연히 탑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고 현재에 와 학교가 지어졌을 것이다.이 곳은 신라의 옛 사찰인 남화사(南華寺)의 옛터로 알려져 있는데, 절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신라 문무왕 16년(675)에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북쪽으로 6㎞ 정도 떨어진 왕두산(1,046m)아래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남화사는 폐사되어 갔다고 한다. 그러나 탑은 상당히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기단이 땅에 파묻혀 있었고 기울어져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동탑보다 서탑의 기단이 좀 더 땅에 묻혀있다.1962년 10월에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는..

울진 구산리삼층석탑

울진구산리삼층석탑은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1494-1번지에 위치한다.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높이는 3.24m이다.아래 위층 기단의 네 면에 우주(隅柱, 모서리 기둥)와 가운데에 탱주(撑柱 버팀 기둥)을 새겼다. 아랫 기단의 갑석(甲石,윗면)은 경사를 주었으며 윗 기단이 앉는 자리에 굄돌 모양을 만들었다.탑이 넘어져 깨진 것을 수리하여 붙였고 아래 기단 몸돌은 거의 새 돌로 채웠다.형태는 같으나 안상을 조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작시기가 더 오래된 탑이다.윗 기단의 갑석은 경사를 줄였고 굄돌 모양을 새겨 1층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기단 몸돌에는 우주와 탱주를 부드럽게 만들었다.탑신부를 이루는 탑신(몸돌)과 옥개석(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3층 탑신의 너..

단양 향산리 오층석탑

단양군 가곡면 향산1길24(향산리 471-11) 마을에 신라의 탑이 서 있다.단양 어상천 삼태산(878m) 날카로운 줄기가 남한강에 부딪혀 멈춘 곳 맞은 편, 소백산 준령 위에서 북으로 다섯 발가락을 디디고 오른 용산봉(944m)의 발끝이 남한강 모래톱에 맞닿은 지점에 공손하고 단정히 서 있다. 가곡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10리(4km) 향산리 마을 입구 커다란 느릅나무가 버티고 있는 신호등에서 오른쪽 마을에 접어들면 탑의 소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고 마련된 주차장에 들어서니 늦가을 단풍으로 팔 벌린 나무 사이에 탑이 보인다.주차장에서 탑을 향해 계단을 밟아 오르니 단정하다.1964년 보물 제405로 지정되었다.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있다.시대적 상징성과 예술적 가치와 보존의 차이다.이 탑은 옮겨진 것이..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경북 의성에 국보와 탑을 돌아보고 한 달이 지나 탑리리오층석탑에 대한 글을 올리는 심정은 지난 산불로 인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통일신라 5층석탑. 높이 960㎝. 기단 너비 450cm의 국보(1962.12.20 지정)다. 탑의 각 부분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1층탑신에서 목조건물 양식까지 보이는 모전석탑이다. 기단(基壇)은 분황사탑처럼 낮은 단층으로 14석으로 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24석으로 면석(面石)을 구성하였고 중간 부분에 우주(隅柱모퉁이돌)와 2개의 탱주(撑柱버팀돌)를 별석으로 결구함이 특징으로,우주는 신라의 석탑에서 드문,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배흘림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익산미륵사지석탑·부여정림사지5층석탑과 같은 백제계 석탑 양식을 ..

키르키스스탄여행 부라나와 알라 아르챠

3월25일일행들이 아침을 먹고 프런트 홀에서 가이드를 기다리다 08:30 승합차를 타고 카자흐스탄과 맞닿아 국경검문소가 있는 톡모크 교외의 부라나탑을 보러 갔다.보슬비가 내리다 말다하여 조망이 아쉬웠다.카라한 칸국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발라사군의 유적이다. 카라한의 사툭 부그라(SatukBugra,재위: 927년~955년) 칸이 이슬람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향후 투르크계 국가들이 이슬람 왕조로 변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042년에 이르러 카라한 칸국은 동서로 양분되어 동카라한 칸국은 발라사군을 수도로 대칸이 통치하고, 소칸들은 카쉬가르와 탈라스에 거주했다.발라사군의 거점인 톡모크는 중국 시안에서 천산산맥을 지나는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였다.부라나는 사방을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싼 도시 중심에 자..

여행하면서 2025.04.03

키르키스스탄 패키지 여행 촐폰아타 이식쿨호수

3월 24일카라콜 오이모에서 자고 난 이른 새벽몇 블록을 걸어봤다. 집집의 개들이 짖어 대고 난리였다.오이모에서의 아침은 조금 조촐했다.저장이 잘 되지 않은 사과, 딱딱한 빵이지만 나름 맛있게 먹었다.아침 호텔에서 샤워를 한 뒤 한국에서 가져간 필터샤워기를 다시 풀고 원래의 것으로 바꿨는데필터에 걸러진 결과물이 뚜렸했다. 가져오길 잘했다.커피를 마시고 다시 차에 올라 촐폰아타를 향해 갔다.시간 반쯤 지나 길가의 매점에 들러 일행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가게 내 양파가 참 작았다.키르키스스탄은 산유국이 아니다.가까운 카자흐와 동족이고 나름 사이가 좋다고 한다.무연휘발유가 73.3솜이면 한화로 ₩1,200원이다. 싸지 않다.카라콜에서 2시간 반 정도 지나 100km 떨어진 촐폰아타(Cholpon Ata)에 ..

여행하면서 2025.04.02

키르키스스탄 패키지여행 비슈케크에서 카라콜

2025년 3월 22일 ~ 3월 26일하나투어에서 상품 키르키즈스탄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중앙아시아의 ooo스탄이란 이름의 국가는 7개가 있다.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키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중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제외한 다섯 나라를 투르키스탄이란 통칭한다.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서역(西域)인도인들은 이들을 투란이라고 불렀다. 투르크는 '강한'이라는 의미의 '튀뤼크Türük'에서 유래하였다. 한국에서는 사료에 기록된 돌궐(突厥)로 쾩튀뤼크Kök Türük의 가차 표현이고영어식 표기 Turk를 따른 '투르크'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으나 튀르키예가 워낙 인구를 많이 차지해 '튀르크'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고 있다. 탄(Tan)은 페르시아어로 뜻은 나라, 땅이다.우리의 땅과 어원이..

여행하면서 2025.04.02

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

이 탑은 의성 춘산면 산두봉, 북두산, 구무산, 늑두산이 솟아 두른 아래 쌍계천이 굽이치는 계곡 옆 빙혈의 밑에 자리하고 있다.빙산사(氷山寺)의 옛이름은  신라 선덕여왕이 비구니들을 위해 창건하였다는 영니사(盈尼寺)였다고 한다.조선 태종조 전국 88개 자복사찰(資福寺刹¹)중의 하나였으나 임란 시 쫒기던 왜군이 불질러 폐사되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1531~1609)의 주도로 1600년 의성읍에 있던 장천서원(長川書院)을 옮겨와 빙계(氷溪)로 개칭하여 자리하고 있다가 1871년 서원철폐로 다시 폐허로 남게 되었다. 한편 철폐된 서원은 2002년 지역 유림의 공의와 2006년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자리를 계곡 아래로 옮겨 건립되었다.1973년 절터를 복원할 때 3층 탑신 옥개석..

추원재(의성)와 관덕리삼층석탑

경북 의성은 삼한 중 진한(辰韓)계 부족국가 조문국 또는 소문국(召文國¹)의 근거지였던 금성면을 아우른다. 조문국은 신라에 복속되기 전 몇 세기에 걸쳐 나름의 족적을 남긴 나라다. 금성면과 봉양면의 고분군은 조문국과 관련이 있다. 아울러 고운사, 만장사, 운림사 등 유서깊은 절이 있고,국보 1점과 보물 2점의 석탑이 있다. 2025년 3월 6일그중 먼저 찾은 곳은 단촌면 관덕리의 삼층석탑이다.관덕(觀德)은 활쏘기를 달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덕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은 대개 군사훈련, 무예와 관련이 있다. 의성군청의 안내에 따르면 앞산 경치가 좋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관덕정이 있었다고 한다.아마도 사라진 관덕정은 활쏘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북의성IC근처 낙동강의 지류 미천(眉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