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79

균와아집도에 나타난 화가들

이 그림은 여러 사람이 합작한 이른바 다. 이 그림 상단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倚几彈琴者 豹菴也 의궤탄금자 표암야 傍坐之兒 金德亨也 방좌지아 김덕형야 책상에 기대어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 강세황이고, 곁에 앉은 아이는 김덕형이다. ​ 含烟袋而側坐者 玄齋也 함연대이측좌자 현재야 緇巾而對棋局者 毫生也 치건이대기국자 호생야 담뱃대를 물고 곁에 앉은 사람은 현재 심사정이고, 치건을 쓰고 바둑을 두는 사람은 호생관 최북이다. ​ 對毫生而圍棋者 秋溪也 대호생이위기자 추계야 偶坐而觀棋者 烟客 우좌이관기자 연객 호생관과 마주하고 바둑을 두는 사람은 추계고, 마주 앉아 바둑을 보는 사람은 연객 허필이다. ​ 凭几而欹坐者 筠窩 빙궤이의좌자 균와 對筠窩而吹簫者 金弘道 대균와이취소자 김홍도 안석에 기대어 비스듬히 앉은 ..

옛 그림 속 글 2020.10.13

심사정의 <궁산야수>의 글

이 그림은 라는 이름으로 간송미술관에 있다. 이 그림 중앙 위에 써 있는 글은 이렇다. 窮山野水之濱, 궁산야수지빈, 固自有荒凉寥落之趣. 고자유황량요락지취. 但樹間近峰,如美人瘢痕. 단수간근봉,여미인반흔, 何不作曠埜澹沈色也. 하부작광야담침색야. 惜哉. 석재. 鶴山題 학산제 거친 산과 들판을 흐르는 물가는 본래 진실로 황량하고 쓸쓸한 정취가 있다. 그러나 나무 사이 가까운 봉우리는 미인의 흉터 같다. 어찌 빈 들에 담백하게 가라앉는 색을 그리지 않았는지! 안타깝다! 학산이 쓰다. 濱(빈)은 물가를 말한다. 窮山(궁산)은 깊은(深) 산이지만 거친(荒) 산이다. 野水(야수)는 들 밖에 흐르는 물이다. 固(고)는 부사로 본래, 본디, 원래, 전부터를 뜻하고 自(자)는 부사로 저절로, 진실로를 말한다. 寥落(요락)은..

옛 그림 속 글 2020.10.10

심사정 강세황의 한양그림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자는 이숙(頤叔)이며 호는 현재(玄齋)다. 정선(鄭歚,1676-1759)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조영석(趙永錫,1686-1761)과 더불어 삼재(三齋)로 불린다. 그의 할아버지 때문에 죄인의 후손이라 벼슬길에 오를 수 없었다. 그의 부친인 심정주(沈廷冑,1678-1750)도 포도를 잘 그렸으며 그의 외조부 정유점(鄭維漸,1655-1703)도 그림에 능하였고 외종조부 정유승(鄭維升,?-1738)은 인물과 포도 그림에 능하였다. 이른바 경구팔경첩(京口八景帖)중에 현재가 그리고 표암(豹菴, 姜世晃,1713-1791)이 글을 쓴 작품이다. 이 그림의 글은 이렇다. 未知寫得何處眞景 其景似與不似 始不暇論第 煙雲晻靄 大有幽深靜寂之趣 是玄齋得意筆 豹菴 어느 곳의 진경을 그렸는지 ..

옛 그림 속 글 2020.10.07

오달제의 묵매도

두 해 전에 교훈적 내용을 담았다는 감계화(鑑戒畵)라고 할 수 있는 윤두서의 와 작자미상의 에 숙종이 직접 제문(製文)을 쓴 작품을 블로그에 올린 기억이 있다. 숙종이 감상하고 어제(御製)를 남긴 작품으로 남아 있는 그림 중 대표적인 두 점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 중 먼저 집안의 조상이기도 한 추담 달자 제자 할아버지의 묵매도를 본다. 이 그림 위에 숙종이 친필로 가지런히 평한 글은 이렇다. 妙筆吾東¹豈有二 (묘필오동기유이) 觀圖仍忽感前事 (관도잉홀감전사) 辭²君不暫心忘國 (사군부잠심망국) 對虜何嘗³口絶詈⁴ (대로하상구절리) 節義昭昭⁵三子⁶同 (절의소소삼자동) 孝忠炳炳⁷一身備 (효충병병일신비) 誰知嗣續終無傳 (수지사속종무전) 於此難諶⁸福善理 (어차난심복선리) 乙酉臘月下澣⁹題 (을유납월하한제) 신묘한 필법..

옛 그림 속 글 2020.09.24

허필의 묘길상도

이 그림 좌상에 적힌 글은 이렇다, 曾於泰岳, 見妙吉祥, 斷巖爲佛, 自是乃家法, 煙客 이전에 금강산(泰岳)에서 묘길상을 보았다. 바위를 잘라 부처를 만들었다. 대가의 수법이다. 연객 歲丁丑流金¹之月, 豹菴光之², 適往梥京,作無暑二册. 蓋䃲礡之際³, 筆端生風, 電光穿鍼, 刹那成功. 座客叫快, 全失三伏之炎蒸. 山水花鳥, 助其淸朗. 是以 名之曰無署帖. 余得見於二年之後, 冰霜之節. 無署二字, 令人肥膚生粟⁴. 思得重裘複房⁵而不得, 則丹靑造化從此可見. 而余欲翻案之爲排寒帖, 老筆已退. 亦安得句回陽和⁶, 噓出一般春光耶. 吳上舍勗汝氏⁷, 幸毋以無塩效顰⁸, 着作終爲襪材⁹之歸也 정축년(1757년) 한여름 강세황이 마침 개성에 가 ⟪무서첩⟫두 권을 만들었다. 대개 두 다리 쭉 펴고 앉아 붓 끝에 바람이 일고 번개가 바늘을 꿰..

옛 그림 속 글 2020.09.23

허필의 두보시의도

⟪두보시의도(杜甫詩意圖)⟫ 이화여대박물관에 있다. 이 그림에 허필이 적은 글은 이렇다. 讀杜家(독두가) 春日鸎啼脩竹裡(춘일앵제수죽리) 仙家吠犬白雲間(선가폐견백운간) 之句(지구) 參之艸禪戲帖(참지초선희첩) 不覺心期犂肰(불각심기이연) ‘봄날 꾀꼬리가 긴 대나무 숲속에서 울고 신선의 집에는 흰 구름 사이 짖는 개’ 라는 두보의 시 구절을 읽고 그것을 참고하여 초선(자신)이 화첩을 그렸는데 바라는 바가 잘되었다고 생각되지 않구나! 脩竹은 가늘고 긴 대나무다. 脩(수)를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다 1. 포(脯), 포육(脯 肉: 얇게 저미어서 양념을 하여 말린 고기) 2. 건육(乾肉) 3. 닦다(=修), 수양하다(修養--) 4. 마르다, 시들다 5. 오래다 6. 멀다 7. 길다 8. 경계하다(警戒--) a. 술잔(-盞..

옛 그림 속 글 2020.09.22

허필의 시 담박 해석

淡泊(담박) 澹泊貧家事(담박빈가사) 無燈待月明(무등대월명) 折花難割愛(절화난할애) 芟草忍傷生(삼초진상생) 白髮應吾有(백발응오유) 靑山復孰爭(청산복숙쟁) 狂歌當歲暮(광가당세모) 秋氣劒崢嶸(추기검쟁영) 담박하게 사는 것은 가난한 이의 일 등이 없어 달이 밝기를 기다릴 뿐이다. 꽃을 꺾자니 할애하기 어렵고 풀을 베자니 차마 생명을 해치진 못하겠다. 백발이야 응당 내 몫이고 청산이야 누군가의 다툼으로 되풀이되겠지. 미친 듯 노래 부르니 곧 늙은이가 되려는가! 가을기운이 날뛰었던 시간을 거두고 있구나. 澹泊은 淡泊과 같다. 담담하고 소박한 마음을 말한다. 割愛(할애)는 자주 쓰는 말 ‘무언가를 할애’한다는 것이고 芟(삼)은 ‘풀을 베다’이다. 忍(인)은 동사로 ‘차마 ~하지 못 한다’다 傷生(상생)은 삶을 해친다..

옛 그림 속 글 2020.09.21

김홍도의 기려원유도 속의 글

육유(陸游, 1125 ~ 1210)는 금(金)에 의해 송(宋)이 남으로 밀린 시기에 살았다. 중국역사상 최다작의 시인이고,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우국시인(憂國詩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자(字)는 무관(務觀)이고 호(號)는 방옹(放翁)이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시(紹興市)인 월주(越州) 산음현(山陰縣) 사람이다. 그가 1172년 한중에서 성도로 가는 중에 가는 비를 맞으며 검문산(劍門山)을 지나게 되어 쓴 칠언절구 를 썼다. 그 시를 김홍도가 그림의 제시(題詩)로 부채 왼편에 적었다. 衣上征塵雜酒痕 의상정진잡주흔 遠遊無處不銷魂 원유무처부소혼 此身合是詩人未 차신합시시인미 細雨騎驢入劍門 세우기려입검문 庚戌首夏檀園 경술수하단원 옷에 정벌의 먼지와 술 얼룩이 섞였는데 먼 길에 넋이 나가지 않는 곳이 없구..

옛 그림 속 글 2020.04.06

김홍도 무이귀도도와 무이제사곡도의 글

이 그림은 김홍도(1745-1805?)가 중국고사, 인물을 그린 8폭 중 하나로, 간송미술관이 라는 이름으로 보관하고 있다. 중국고사를 그린 8점은 각 폭마다 제목과 관서(款署)를 명기하였으며 [김홍도 필 고사인물도]라는 이름으로 2018년 보물 제 1971호로 지정되었다. 주자가 중국 남부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에서 은거했다는 고사를 그린 그림으로 기암절벽 아래 급류에 한 척의 배가 내려오는 모습을 묘사하였는데 중국, 중국인이 아닌 조선, 조선인의 모습이다. 오른쪽 위에 “武夷歸棹 丹邱(무이귀도 단구)”라는 관서가 있다. 그리고 '‘心醉好山水(심취호산수)’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과 ‘弘道(홍도)’ 주문방인(朱文方印), ‘士能(사능)’ 백문방인(白文方印)이 나란히 찍혀 있다. 이처럼 세 개의 도..

옛 그림 속 글 2020.04.05

김홍도의 협접도에 적은 글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과 석초 정안복(石蕉 鄭顔復,?-?)이 김홍도의 이른바 에 함께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김홍도의 , 부채에 그렸다 하여 ,선면협접도(扇面蛺蝶圖)>라는 제목을 가졌다. 아울러 이 그림에도 표암과 석초의 평가가 있다. 옛 사람들뿐 아니라 요즘의 서예가들도 나름의 필치가 있지만 대강의 서법을 공히 갖는다. 그러나 모르는 글자를 억지로 잘못 틀리게 탈초하는 경우를 본다. 이 그림의 글을 해석한 몇몇 분들의 예가 그랬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김홍도의 그림은 문외한인 내가 볼 때 가히 조선 일인자의 작품이다. 도무지 못 그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 그림의 제작시기와 제작자는 부채 오른쪽에 적혀있다. 壬寅秋士能寫 임인..

옛 그림 속 글 2020.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