淡泊(담박)
澹泊貧家事(담박빈가사) 無燈待月明(무등대월명)
折花難割愛(절화난할애) 芟草忍傷生(삼초진상생)
白髮應吾有(백발응오유) 靑山復孰爭(청산복숙쟁)
狂歌當歲暮(광가당세모) 秋氣劒崢嶸(추기검쟁영)
담박하게 사는 것은 가난한 이의 일
등이 없어 달이 밝기를 기다릴 뿐이다.
꽃을 꺾자니 할애하기 어렵고
풀을 베자니 차마 생명을 해치진 못하겠다.
백발이야 응당 내 몫이고
청산이야 누군가의 다툼으로 되풀이되겠지.
미친 듯 노래 부르니 곧 늙은이가 되려는가!
가을기운이 날뛰었던 시간을 거두고 있구나.
澹泊은 淡泊과 같다. 담담하고 소박한 마음을 말한다.
割愛(할애)는 자주 쓰는 말 ‘무언가를 할애’한다는 것이고
芟(삼)은 ‘풀을 베다’이다.
忍(인)은 동사로 ‘차마 ~하지 못 한다’다
傷生(상생)은 삶을 해친다는 말이다.
<회남자(淮南子)>에 ‘以欲傷生’이 적혀있다.
욕심 때문에 삶을 해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應(응)은 ‘응당 ~이다’로 쓰였고
또 復(복)은 다시 부가 아니고
‘되풀이하다, 돌아가다, 머무르다’로 쓰였다.
爭(쟁)은 다툼, 싸움이다.
狂歌(광가)는 박자 음정도 안 맞게 마구 부르는 노래다.
歲暮(세모)는 세밑 또는 노년을 뜻한다.
秋氣(추기)는 가을 기운이다.
이 시에서 劒(검)의 쓰임은 댓구상 명사로 볼 수 없고
‘베다, 자르다’ 따위의 동사로 쓰였을 것이다.
崢嶸(쟁영)은
산세가 가파르고 한껏 높은 모양, 재능이나 품격이 뛰어남,
추위가 매우 심함, 파란만장함, 다사다난함, 등의 뜻으로
목적어가 되는 명사로 쓰였다.
첫 번째 줄은 가난함을 말하고 있고
두 번째는
‘折花는 割愛하기를 難하고, 芟草는 傷生하기를 忍하다’ 이며
세 번째는
‘白髮은 吾有를 應하고, 靑山은 孰爭을 復한다’이고
네 번째는
‘狂歌는 歲暮를 當하고, 秋氣는 崢嶸을 劒한다’로 새김이 바르다.
이 시에는 꺾고 자르고 베고 찌르고를 뜻하는 단어가 많다.
가난하게 살았다는 허필의 삶을 덤덤하게 적었다는데
내겐 날카롭게 느껴졌다.
물론 이를 의역하면 저마다 다를 것이나
직역과 동떨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조선 서화에 허필(許佖,1709~1768)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기억해야할 인물이다.
안산15학사와 강세황의 그림을 공부하다 알게 된
허필의 시 중의 처음이 이 시였다.
적으며 나름 풀어보고 난 뒤 인터넷 검색을 하였더니
어느 박사님의 해석 글이 있었다.
‘담박함은 가난뱅이가 살아가는 법
등불 없이 달뜨기만 기다린다.
꽃을 꺾자니 사랑스러운 것을 어떻게 하고
풀을 베자니 산 것을 차마 해치랴!
백발은 당연히 내 차지이고
청산은 어느 누가 욕심을 낼까?
미친 듯 노래 부르다가 한해도 저무니
가을날의 기운 검처럼 서슬이 퍼렇다.'
라고 하였다.
나로서는 조금 조금 어귀 해석이 갸우뚱하였고, 시의 마지막은 이상했다.
노래 부르다 한해가 다 가는데 서슬이 퍼렇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됐다.
누구나 다른 맛으로 시를 대할 수 있으니
내 나름의 해석은 어떤 질정을 받을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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