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서/한국의 석탑 4

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

이 탑은 의성 춘산면 산두봉, 북두산, 구무산, 늑두산이 솟아 두른 아래 쌍계천이 굽이치는 계곡 옆 빙혈의 밑에 자리하고 있다.빙산사(氷山寺)의 옛이름은  신라 선덕여왕이 비구니들을 위해 창건하였다는 영니사(盈尼寺)였다고 한다.조선 태종조 전국 88개 자복사찰(資福寺刹¹)중의 하나였으나 임란 시 쫒기던 왜군이 불질러 폐사되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1531~1609)의 주도로 1600년 의성읍에 있던 장천서원(長川書院)을 옮겨와 빙계(氷溪)로 개칭하여 자리하고 있다가 1871년 서원철폐로 다시 폐허로 남게 되었다. 한편 철폐된 서원은 2002년 지역 유림의 공의와 2006년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자리를 계곡 아래로 옮겨 건립되었다.1973년 절터를 복원할 때 3층 탑신 옥개석..

추원재(의성)와 관덕리삼층석탑

경북 의성은 삼한 중 진한(辰韓)계 부족국가 조문국 또는 소문국(召文國¹)의 근거지였던 금성면을 아우른다. 조문국은 신라에 복속되기 전 몇 세기에 걸쳐 나름의 족적을 남긴 나라다. 금성면과 봉양면의 고분군은 조문국과 관련이 있다. 아울러 고운사, 만장사, 운림사 등 유서깊은 절이 있고,국보 1점과 보물 2점의 석탑이 있다. 2025년 3월 6일그중 먼저 찾은 곳은 단촌면 관덕리의 삼층석탑이다.관덕(觀德)은 활쏘기를 달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덕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은 대개 군사훈련, 무예와 관련이 있다. 의성군청의 안내에 따르면 앞산 경치가 좋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관덕정이 있었다고 한다.아마도 사라진 관덕정은 활쏘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북의성IC근처 낙동강의 지류 미천(眉川)의..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2025년 2월 26일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을 본 뒤남본리 200-13번지에 소재한 보물을 보러 갔다.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醴泉 開心寺址 五層石塔)은1963년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개심(開心)은 지혜를 일깨워 마음을 열어 줌을 말한다.중국어로는 반가움, 기쁨이란 뜻이기도 하다.서산 상왕산 아래에도 개심사가 있다.고려 현종 원년(1010)에 세워진 탑이라 한다.거란의 2차 침입이 발발한 시기다. 갑석 처마 부분에 이런 명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자료출처 : 고려시대 금석문·문자자료 고려시대 사료 DB)上元甲子四十七統和二十七庚戌年二月一日正骨開心寺到石析......중략辛亥四月八日立상원갑자사십칠통화이십칠경술년이월일일정골개심사도석절......중략신해사월팔일립 갑자년(964년)47년 요나라 성종(聖宗,재위..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

사천왕(四天王)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방위신이었으나 불교에서 그 개념을 가져와 불법과 절의 건축물 즉 가람(伽藍)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변하여 사찰의 입구에 자리한다.보통 왼쪽에 동방과 북방, 오른쪽에 남방과 서방의 천왕을 배치하는데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동방은 지국천왕(持國天王)으로 비파, 창, 보주를 들고북방은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탑이나 보당을 들고 있다.남방은 증장천왕(增長天王)으로 칼과 창을 들고 마구니를 밝고,서방은 광목천왕(廣目天王)으로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다. 동방은 칼, 서방은 창, 남방은 용 북방은 비파라고 설명하는 마곡사나 수타사의 안내문이 자못 의아스럽다.특히, 동방 지국천왕은 음악을 관장하고 간다르바를 거느려 조선 후기에는 비파를 들고 다소 입을 벌린 모습으로 표현되는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