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김득신이 그린 가도의 <송하문동자>

허접떼기 2019. 2. 28. 20:56

이 그림은 서울대박물관에 있다.

 

이 그림에 긍재(兢齋김득신(金得臣,1754~1822)이 쓴 글은 이렇다.

 

松下問童子 송하문동자

言師採藥去 언사채약거

只在此山中 지재차산중

雲深不知處 운심부지처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께선 약 캐러 가셨습니다.

다만 이 산중에 계실 텐데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한다.

 

이 글의 작가는 가도(賈島).

가도(賈島,779-843)는 자가 낭선(浪仙)이고 범양(范陽)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출신이었지만 배우기를 즐기고 글쓰기를 매우 좋아했다.

과거에 몇 년 계속 실패하여 절망감에 빠져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이름을 무본(無本)으로 고치고 낙양에 있는 청룡사에 머물게 되었다.

창작에 골몰하여 지나가는 경조윤(京兆尹)의 수레와 부딪히길 두 번하여

한번은 큰 고초를 겪고

두 번째는 당대의 명사 한유(韓愈,768-824)와 부딪혀 인생이 바뀌었다.

그해가 811년이다. 끝내 환속(還俗)하였으며,

그의 인생 단어 퇴고(推敲)가 생겨났다.

한유가 "먼저 죽은 맹교가 가도로 다시 태어났다"고 시까지 지었으며,

가도를 물심양면 도운

한유가 없었다면 가도는 출세는커녕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도와 맹교를 함께 놓고 교한도수(郊寒島瘦)라 불렀다.

간신히 59세 되던 837년 사천(四川)성 장강현(長江縣)의 주부(主簿)가 되어

사람들이 그를 가장강(賈長江)이라 부르게 되고 자신도 호로 삼았다.

61세에 안악현(安岳縣) 보주(普州)의 사창참군(司倉參軍)으로 전직되었고

그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가도가 쓴 이 글을 화제(畫題)로 쓰고 그린 산수화를 보며

내 개인의 색다른 느낌을 적어본다.

조선시대에 한글은 언문이라 하였고, 여자들의 글이었다.

그 연유에 대한 소견은 차치하고,

만약 그림에 한글로 그림에 대한 제시(題詩)를 적었다면

글씨보다 그림을 더 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퀴즈를 풀듯이 이 그림에 이 글씨는 뭐일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그림에 대한 감상보다는 제시에 접근한 나 자신의 현학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