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김수철의 석매도 속 철석심장

허접떼기 2022. 1. 28. 21:05

김수철의 생몰은 미상이다. 그의 자(字)는 사앙(士盎)이며 호는 북산(北山)이다.

괴석에 꽃이 한창인 매화를 그렸다. 일반적인 북산의 필체와는 다르다고 한다.

이 그림에 북산이 쓴 글 철석심장. 강철과 돌의 비유가 매화가 어울려 옛 시와 그림에 많이 보이는 결합이다.

어느 자료를 보니

철석심장의 출처가 藩方(번방)이라는 사람이 沈樞(심추)라는 고향선배가 귀양을 가서도 꿋꿋하다며 쓴 시의 일부라는 설명이 있다. 과연 그럴까?

남송대(南宋代) 藩(번) 성을 삼은 이는 없고 潘(반)씨는 있다.

반방(潘方)은 온주(溫州)평양(平陽)사람으로 1256년 이종(理宗)대에 진사를 지내고 경원부(慶元府)의 세금관리(市舶使)에 있다가 경원(慶元, 지금의 영파寧波)이 원나라에 복속되자 물에 뛰어들어 죽은 이다. 그는 철석심장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鐵石心腸이라는 글귀가 있는 시를 찾아보니

 

潘矩(반구,字는方仲)라는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지금의 회계會稽)출신으로 남송(南宋) 효종(孝宗) 시기 안길위(安吉尉)를 지낸 사람이 있다. 그가 지은 《獻沈詹事(헌심첨사)》라는 시에 보인다.

첨사 벼슬의 심씨에게 바친다는 제목을 둔 시는 이렇다

昔年單騎向筠州 覓得歌姬共遠游 석년단기향균주 멱득가희공원유
去日正宜供夜直 歸來渾未識春愁 거일정의공야직 귀래혼미지춘수
禪人尙有香囊愧 道士猶懷婦炭羞 선인상유향낭괴 도사유회부탄수
鐵石心腸延壽葯 不風流處却風流 철석심장연수약 불풍류처각풍류

해석한다면

옛날 균주로 홀로 말을 달려 가희를 찾아내 함께 먼 곳으로 놀러갔네

지난날 정의원에서 함께 숙직하고 돌아오니 혼미하여 봄의 향수를 알지 못했지

중은 일찍이 사향낭이 있어 부끄럽고 도사는 일찍이 탄부를 품어 수줍었다네

철석같은 심장이 수명을 연장하는 꽃밥이니 풍류가 아닌 곳이 곧 풍류로다

 

*중국 후한의 도사 장도릉(張道陵)이 숯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어 문도를 시험했는데 거의 모두가 검은 칠이 묻었다는 이야기로 견고하지 않음을 비유한다.

 

그 이전에도 동파(東坡)소식(蘇軾,1036-1101)은 <여이공택서與李公擇書>에 僕本以鐵心石腸待公(복본이철심석장대공 ; 저는 본디 철심석장으로 공을 기다렸습니다.)라고 쓴 바 있으며,

 

그보다 훨씬 오래 전

당나라 피일휴(皮日休, 834-883)는 《도화부서(桃花賦序》에 이리 적었다.

余嘗慕宋廣平之爲相……疑其鐵腸石心 不解吐婉媚辭 然睹其文而有<梅花賦>

淸便富艶 得南朝徐庾體

(여상모송광평지위상......의기철장석심 불해토완미사 연도기문이유<매화부>청변부염 득남조서유체)

“내가 일찍이 송광평의 재상됨을 흠모하였다......철석 같은 마음 갖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을 뱉을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문장과 <매화부>를 보니 맑고 고와 남조의 서유체를 얻었음을 알았다.

* 광평(廣平)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 재상 송경(宋璟,663-737)의 자(字)다. 지방 수령으로 가는 곳마다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어 사람들이 ‘有脚之陽春(유각지양춘 ;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봄)’이라 칭송했다.

* 서유체(徐庾體)는 남조 양(梁)나라 서리(徐摛)、서릉(徐陵) 부자와 유견오(庾肩吾)、유신(庾信) 부자의 시와 글이 뛰어나 붙혀진 이름이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송(宋) 고종(高宗, 재위1127-1187)대의 사람인

장방기(張邦基)의《묵장만록(墨莊漫錄)》에도 보인다.

無咎嘆曰 人疑宋開府鐵石心腸 及爲<梅花賦> 清艶殆不類其爲人

무구탄왈 인의송개부철석심장 급위<매화부> 청염태불류기위인

 

책망없이 탄식하며 말하길 사람들이 송 개부가 철석심장이라 의심하였으나

<매화부>가 맑고 고와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덪붙여

월탄 박종화가 쓴 《임진왜란》의 한 문장을 적어본다

“명나라 장수들은 뇌물을 가지고 매수할 수 있지만, 이순신이야 철석간장일 테니 화친을 들어줄 리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