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호연(孟浩然,689-740)은 양양(襄陽) 사람이라 맹양양(孟襄陽)으로 불리었는데,
이름이 호(浩)이고 자(字)가 호연(浩然)이다.
진사시험에 수차례 떨어져 장안에서 벼슬길을 도모하던 중
시불(詩佛) 왕유(王維,699?-759)와 왕창령(王昌齡,698-755?)과 교류하였고
성당(盛唐)시대 자연시 전통을 대표하는 4명의 인물로 불리는
왕맹위유(王孟韋柳) 중의 하나인데,
왕유와 맹호연, 위응물(韋應物,737-804), 유종원(柳宗元,773-819)이 그들이다.
왕유가 천거하여 현종(玄宗)을 만났을 때
‘부재명주기(不才明主棄)’ 즉 재주가 없어 영명한 군주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구절로 인해
현종이 화를 내며
‘그대 스스로 관직을 구하지 않았고 나는 그대를 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춘효(春曉)》라는 시가 유명하다.
春眠不覺曉 춘면불각효
處處聞啼鳥 처처문제조
夜來風雨聲 야래풍우성
花落知多少 화락지다소
봄날 자니 동트는 줄 모르고
곳곳마다 새소리 들리네
밤새 비바람 소리 들리던데
얼마나 꽃이 떨어졌으려나!
신잠(申潛, 1491~1554)의 탐매도(探梅圖)와
달마도를 그려 유명한 중인출신 김명국(金明國)의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그린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의 주인공이 맹호연이다.
당의 수도 장안의 동쪽에 있는 파수(灞水)위에 걸린 다리 파교(灞橋)
이 다리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이별을 전했다는 모습에서 생겨난 파교절류(灞橋折柳)
그런 이유와 덧붙여
파교 위를 나귀 타고 지나면 시상(詩想)이 잘 떠오른다는 뜻의 파교여상(灞橋驢上)
변변한 벼슬도 없이 당나라 시대 중 제일 영화로운 시절에 빈궁히 살았고 몸도 강건치 못했다는 맹호연.
그가 매화를 찾아 파교를 지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십여 점이라 한다,
곤궁한지는 모르나, 절뚝거렸다지만 그나마 나귀를 타고 모자에 목도리에 가죽신까지 신은 시인
그리고 그를 따르는 시동은 거문고와 두 짐을 어깨에 걸고 있다.
심사정이 이 그림을 병술년(1766) 음력 4월(初夏) 따뜻해지는 날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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