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조희룡의 고목석죽도의 글

허접떼기 2019. 3. 12. 23:11


매화를 너무도 사랑한 조희룡(1789 ~ 1866)의 자는 치운(致雲)이며,

호는 우봉(又峰), 석감(石憨), 철적(鐵笛), 호산(壺山), 단로(丹老), 매수(梅叟)이다.

본관은 평양(平壤)이고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알려졌지만

추사가 주장하는 문인화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색채를 가진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와 절친히 지낸 이른바 벽오사동인들이 보여준 족적은

조선 후기의 화단을 넓히고 밝혔다고 본다.

당시 문인들은 사군자를 즐겨 그렸는데 조희룡 역시 사군자를 그렸다.

그가 사랑한 매화를 그린 그림만큼이나 이 그림의 풍취는 남다르다.

 

이 그림에 조희룡이 쓴 글은 이렇다.

 

道人寫竹並枯叢(도인사죽병고총)

却與禅家氣味同(각여선가기미동)

大抵绝無花葉相(대저절무화엽상)

一團蒼老暮烟中(일단창로모연중)

徐文長(서문장)

 

도인이 대나무와 죽은 나무 덤불을 그렸다

그건 불가의 마음 씀씀이와 같은 것이다.

대체로 꽃잎의 모양은 아주 없고

저녁연기 속 한 무리가 고아하고 힘차다.

- 서위


禪家(선가)는 참선하는 승려, 그들의 집이다.

絶無(절무)는 무엇무엇이 아주 없다이며

蒼老(창노)1. 고아하고 힘차다, 2. 세련되고 힘차다 이다.

 

조희룡의 글에 나와 있는 徐文長

명말의 시인으로 청나라의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서위(徐渭).

서위(1521~1593)의 자는 문청(文淸)인데 후에 문장(文長)이라고 고쳤다.

다른 곳에서 자는 천지(天池)라 하는데,

호는 청등(淸藤), 천지생(天池生), 전수월(田水月)등이다.

많은 시인 묵객의 고향인 산음(山陰)사람이다.

시문, 서화를 잘하고, 희곡도 지었으며, 희곡 연구로도 유명하다.

총독 호종헌(胡宗憲)의 막하에 들어 백록표(白鹿表)를 기초해서 유명해 졌고,

또 병술(兵術)로도 명성을 떨쳤다.

뒤에 호종헌이 투옥되었기 때문에,

서위는 발광하여 자살미수 소동을 일으켰고 또 처를 죽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스스로, 서예가 제일, 시가 제이, 문상이 제삼, 그림은 제사라 하였다.

서는 초서를 잘했으며, 미불(米芾)을 배웠고,

필세는 분방 기이하여 문징명(文徵明), 왕총(王寵)보다도 한수 위라고 평한다.

그림은 산수, 화훼, 초충 등을 주로 그렸으나,

특히 화훼가 뛰어났고, 오진(吳鎭) 심주(沈周)로 이어지는 계통에 있으면서,

그들과는 다른, 묵색이 아름다운 수묵, 화훼, 잡화를 그려,

진계유(陣繼儒), 팔대산인(八大山人)등에 현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은 화과도권(花果圖卷),

저서에 서문장집(徐文長集), 현초류적(玄鈔類摘)이 있다.


상해박물관에 있는 서문장의 화과도권(花果圖卷)

 

조희룡의 그림은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찾았고 잘 안보이는 왼편의 잘린 글씨를 위해


서울대박물관에 연락했으나 준비중이라 불가능했다.

 

문장 서위의 글이 있고 조희룡이 화제로 적어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