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신위의 묵죽 속의 글2

허접떼기 2019. 3. 10. 20:21

신위(申緯,1769-1845)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 경수당(警修堂)이다.

조선 후기의 화단은

1700년대 초반 조선에 들어온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속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의 영향으로

묵죽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군자를 많이 그렸다.

자하는 탄은(灘隱) 이정(李霆,1554-1626) 수운(岫雲) 유덕장(柳德章,1675-1756)과 더불어

조선 3대 묵죽화가로 불린다.

유덕장은 이정의 대나무를 바탕으로 하였다 하고

신위의 묵죽은 줄기가 유연하고 촘촘한 잎이 부드럽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탁월한 글씨 솜씨로 시를 곁들여 이른바 격이 높은 시서화(詩書畵)의 완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 그림에 적힌 글은 이렇다.

 

枝葉上晴光(지엽상청광) 가지 이파리위에 비개고 빛이 난다.

枝輕葉復揚(지경엽부양) 가지는 가벼워지고 이파리는 다시 날린다.

一天風日好(일천풍일호) 하늘 높이 바람이 부니 날씨가 좋다.

聲影靜瀟湘(성영정소상) 들리고 보이는 것들이 고요하니 소상이로다.

 

晴光(청광)은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남이다.

瀟湘(소상)은 중국 호남성의 동정호로 흐르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으로 소수가 상강의 원류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을 일컬으며 소상팔경(瀟湘八景)으로 대변되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다른 그림을 본다.

이 그림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죽병(竹屛)>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니

병풍으로 그린 것으로 병풍의 어느 한 폭일 것이다.

 

이 그림에 자하가 쓴 글을 이렇다.

 

이 글은 원나라 초기의 유명한 장수 장홍범(張弘範/1238-1280)이 대나무에 대하여 쓴

칠언절구(七言绝句) 墨竹이란 시다



원작의 강호(江湖)를 자하가 湘江(상강)으로 바꿔 적은 것이다.

   
麝墨芸香小玉叢(사묵운향소옥총)

淡烟横月翠玲瓏(담연횡월취영롱)

小屏春鎖綠窓夢(소병춘쇄녹창몽)

也勝湘江烟雨中(야승상강연우중)

 

향기로운 먹으로 쓴 시의 운치가 작은 옥 떨기요,

뿌연 연기는 달을 비껴 푸른빛이 영롱하다.

작은 병풍은 봄이 가둔 여자들의 꿈이요,

안개비 내리는 상강보다 낫구나.

 

麝墨(사묵) : 사향노루 배꼽으로 만든 먹으로

             나중에는 향묵(香墨)으로 통칭됨

芸香(운향) : 의 간자체로 쓰이나,

은 향기, 시의 신비스런 운치와 음조를 말한다.

玉叢(옥총) : 1. 한자사전

             2. 대나무를 읊은 시에 많이 나오는데

  대나무 잎이 찰랑거림이 옥 부딪히는 소리 같아 쓰인다.

淡烟(담인) : 엷은 안개, 뿌연 안개. 澹烟(담연)도 쓰인다.

玲瓏(영롱) : 영롱하다.

春鎖(춘쇄) : 봄이 가둔다. 이 역시 한시에 많이 나온다.

綠窓(녹창) :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방, 가난한 여인의 방.

        여자들이 거처하는 방을 이른다.

 

장홍범은 자는 중주(仲疇). 여진족으로 송나라에 귀화한 집안의 자손이다.

아버지인 장유부터 원나라에 들어가 원나라의 군인으로 성장했다.

을 없애버린 전투 애산해전에서 10배가 넘는 송의 잔여 세력을 이긴 장수로

당시 같은 집안 형제인 장세걸과 남송의 충신 문천상과 상대되는 원의 장수로 역사에 남은 사람이다.

그의 문집인 회양집(淮陽集)에 시 120수가 전한다.


자하는 안개비가 잦고 비가 개면 풍광이 아름답다는 소상의 정취와 비교하며

대나무 예찬을 글로 쓰고 묵죽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