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송은(松隱) 이병직(李秉稙, 1896-1973)의 소장품이라 한다.
이 그림은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그림으로 2000년에 세상에 알려졌다.
김홍도가 丹邱(단구)라는 호를 쓴 것이 말년이니 이 그림도 정조 사후(1800년 이후)에 그려진 그림이라 본다.
이 그림에 적힌 시제를 본다.
탈초해 적으면 이렇다
文章驚世徒爲累(문장경세도위누)
富貴薰天亦謾勞(부귀훈천역만로)
何似山窓岑寂夜(하사산창잠적야)
焚香默坐聽松濤(분향묵좌청송도) 丹邱(단구)
문장은 세상을 깨우치나 그저 누가 되고
부귀가 하늘을 움직여도 역시 공로를 헐뜯는다.
어찌 적막한 밤 산창에
향을 피워 조용히 앉아 솔바람 소리 듣는 것과 같겠는가?
압운(押韻)은 로(勞), 도(濤)다.
앞 두 문장은 文章과 富貴가 주어이고
徒와 亦은 전환접속사로 그런데~로 쓰였고, 爲와 謾이 동사로 쓰여 대구를 이룬다.
警世(경세)는 ‘세상을 깨우친다.’이고,
薰天(훈천)은 ‘하늘을 감동시킨다.’이다. 衆口薰天(중구훈천)이란 말이 있다.
何似~(하사~)는 아래의 내용과 같겠는가? 이다
岑寂(잠적)은 1.외로이 솟아있는 모양 2. 쓸쓸하고 적막한 모양
松濤(송도)는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물결치는 소리다
종친이자 화가인 선조의 손자 이건(李健,1614-1662)의 규창유고(葵窓遺稿)에 이 시가 있다.
작자는 중종의 서자 해안군(海安君) 이희(李㟓,1511-1573)라 한다.
조선 중기 시평가인 홍만종(洪萬鍾,1643-1725)의 소화시평(小華詩評)에
선비 의사로 유명한 북창(北窓) 정렴(鄭磏,1506-1549)이 산거야좌(山居夜坐)라는 제목으로 쓴 시가 있다.
위 시와 한 글자만 다르다.
묵좌(默坐)대신 독좌(獨坐)로 썼다.
또한 재야학자로 평생을 지낸 남포(南浦) 김만영(金萬英, 1624-1671)의 문집 <남포집(南浦集)>에
칠언절구 몽작(夢作)이란 제목의 시가 있다.
文章蓋世徒爲累(문장개세도위루)
富貴薰天亦自勞(부귀훈천역자로)
何似白雲明月裏(하사백운명월리)
百年無事臥江皐(백년무사와강고)
문장이 세상을 덮을 정도이나 누가 될 것이며
부귀가 하늘을 움직여도 역시 절로 수고롭다.
밝은 달 속 흰 구름처럼
백 년 동안 아무 일없이 강 언덕에 누워있는 것 같으랴!
김홍도가 그림에 적은 시제로 쓴 시는 당시 유명한 싯구였음이다.
정조 사후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는 김홍도의 심사가 이해되는 시다.
사족으로 이 그림의 소장자인 이병직에 대해 알아본다.
송은 이병직은 내시(內侍) 가문 출신으로 알려졌으나, 관련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다.
서화연구회(書畵硏究會)를 통해 당시 유명한 서화가였던 김규진의 문인(門人)이 되었고,
1918년 서화연구회 1회 졸업생 19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병직은 김규진의 영향을 토대로 사군자에 주력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묵죽을 잘 그렸다.
그 가운데서도 병풍 전폭(全幅)을 한 화면으로 삼아 굵고 힘찬 필세로 그려낸 총죽(叢竹)류의 묵죽화가 돋보인다.
아울러 서화감식으로도 유명하였다. 당대 유명한 부호였으며, 또한 잘 알려진 대수장가였는데,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 권3~5는 이병직이 가지고 있었고.
보물 『제왕운기(帝王韻紀)』 또한 이병직의 구장품이다.
송은과 비슷한 시기를 살고 비슷한 행적을 가진 이가 있으니 간송 전형필이다.
무관 중군(中軍, 정3품)을 지낸 전계훈(全啓勳, 1812-1890)은
배오개(현 종로4가 동대문) 상권을 쥐었고 왕십리, 답십리, 청량리, 송파, 창동은 물론
지방 황해도 연안, 충남 공주, 서산 등에 농장을 가진 수십만 석 대부호였다.
그의 증손이 간송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이다. 간송의 감식안은 스승 위창 오세창에게서 찾는다.
간송이 찾아내고 수장한 미술품 중 국보가 12점이며 보물이 31점이다.
아마도 철종 이후 조선이 없어져간 시기에 막대한 재산을 가질 수 있었던 계층은
그 무엇보다 최고 권력에 가까이 있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관료였던, 내시였던 부를 축적한 자의 상속자로 뛰어난 스승에게서 배워
직접 화가였던 송은과
일본인이 가져간 엄청난 양의 보물 일부를 돈으로 산 간송의 미술품 수장이
새삼 가진 자들의 보람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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