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홍매대련(紅梅對聯)의 이름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다.
오른쪽 그림에 쓴 화제의 내용은 이렇다
日魄月華玄珠白膏五金四黃(일백월화현주백고오금사황)
皆僊家之丹也(개선가지단야)
博山文火古甕淸水胭脂玉管(박산문화고옹청수연지옥관)
此畫家成丹之法(차화가성단지법)
蓋如是(개여시)
小香雪館 春日 丹篆道人(소향설관 춘일 단전도인)
해의 몸과 달빛, 검은 구슬과 흰 기름, 다섯가지 금속과 네 가지 누른 것이
모두 선가(僊家는 仙家와 같다)의 단(丹)이다.
박산향로, 뭉근 불, 오랜 자기안의 맑은 물, 붉은 염료, 옥으로 만든 붓통
이것이 화가가 단을 만드는 법이니
대개 이와 같다.
소향설관에서 봄날 단전도인
日魄(일백)에 대해 도교의 ⟪참동계(參同契)⟫에 이런 글귀가 있다.
구붓한 반달이 화로 속에서 천지를 삶아내니
해의 몸과 달의 골수를 달이고 굽는다.
偃月爐中煮天地 煎煉日魄月髓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몸을 떠나 혼(魂)이 되고 넋은 시체에 남아 백(魄)이 된다고 한다.
魄은 그 몸에 남은 신(神)이다. 도교의 양신(陽神)과 비슷하다.
月華(월화)는 달의 밝은 주위에 나타나는 광배다. 달빛인 것이다.
玄珠(현주)는 중국 황제가 가지고 다녔다는 검은 구슬이다.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黃帝遊乎赤水之北 登乎崑崙山之丘 而南望還歸 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詬索之而不得也
乃使象岡 象岡得之 黃帝 曰, 異哉 象岡乃可以得之乎.
라고 적혀 있다
“황제가 적수(赤水) 북쪽에 유람하다가 곤륜산 언덕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오다,
현주(玄珠)를 잃어 버렸다.
지(知)에게 그걸 찾으라하나 못 찾았고
이주(離朱)에게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고
끽후(喫詬)에게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이에 상망(象岡)을 시키니 상망이 찾았다.
황제는 말하였다. 이상하다, 상망(象岡)이 찾다니!”
이 우화 중에서 현주(玄珠)는 도(道)와 진(眞)을 상징한다. ‘
知(지)는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離珠(이주)는 전설적으로 눈이 밝았다는 이루(離婁)다.
喫詬(끽후)는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다. 唐 육덕명은 역사(力士)라 했다.
象岡(상망)은 어정쩡하고 나이 든 신하였다.
- 여혜경(呂惠卿)이 주(注)하기를
象則非無 罔則非有 不皦不昧 玄珠之所以得也
상(象)은 무(無)가 아니고, 망(岡)은 유(有)가 아니며 밝지도 어둡지도 않으니
현주(玄珠)를 얻을 수 있는 이유다.
- 곽숭도(郭崇燾)도 주를 하여
象罔者若有形若無形 故眸以得之 卽形求之不得 去形求之亦不得也
상망이란 유형인 듯 무형인 듯 하다. 그래서 자세히 보아 얻을 수 있었다.
즉 모양으로도 구해도 얻지 못하고 모양을 제거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상망의 우화라고도 불리는 이 이야기 속의 현주는
유형과 무형이 결합한 상망의 형상이 道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백고(白膏)는 부스럼과 종독을 아물게 하고 농을 흩어지게 하여 흘러나오게 하는 약제다.
매독치료제인 염화수은 결정체와 붕어와 살충 효과가 있는 파두를 넣은 돼지고기 기름에
비마자(萆麻子)를 섞어 만든다고 한다.
오금(五金)은 금, 은, 동, 철, 주석을 말한다.
사황(四黃)은 주로 열을 내리는 약제다.
大黃(대황, 체내 독과 열을 없애는 사하작용을 한다),
黃連(황련, 장염,이질, 하혈, 화상 등에 쓰인다),
黃芩(황금, 열을 내려 고열과 급성폐렴 천식에 쓴다)
黃柏(황백, 황벽피라 불리며 혈당을 떨어뜨리고 살균작용을 한다) 이다.
박산(博山)은 박산로(博山爐)다.
중국 산동의 박산을 본 떠 만든 동제 향로로 향을 피워 운무가 낀 산을 나타낼 수 있었다.
文火(문화) : 약하게 뭉근하게 타는 불로 활활타는 武火의 반대어이다.
느긋한 불로 항아리에 담백색을 표현하는 도구로 쓰기도 한다.
古甕淸水(고옹청수)는 오랜 항아리에 담긴 맑은 물이다.
胭脂(연지)는 臙脂의 속자다. 화장이나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붉은 빛깔의 안료다. 잇꽃과 주사(朱砂)를 섞어 만든다.
玉菅은 옥피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붓 등을 담은 옥으로 만든 통을 말한다.
김정희의 심복이라고 대사간과 대사헌의 관리들이 철종에게 상소하여
1851년 김정희는 북청으로 유배되는 반면 조희룡은 임자도로 정배되었다.
그의 나이 63살이었다. 임자도 유배시기에 쓰던 호가 소향설관(小香雪館)이다.
신안 임자도에 만구금관(萬鷗唫館)이란 편액이 걸린 유적지가 있다.
‘만 마리의 갈매기가 입을 닫았다?’
그곳에서 어는 봄날에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오래살고 싶었던 것인지 세태가 그러했는지 도가의 단술(丹術)에 나오는 장생의 단약을 열거하며
그림을 그리는 자의 도구를 단약의 방법이라 함께 적었다.
어려서 몸이 안 좋아 결혼에 실패한 우봉이 매화로 오래 살았다고 스스로 고백하였는데
매화꽃을 단약인양 차로 마셨다는 연유가 짐작이 된다.
왼쪽 그림 좌상단에 적힌 글은 이렇다.
我有紅露一勺(아유홍로일작)
七分供之槑花(칠분공지매화)
三分留作漢書物(삼분유작한서물)
開卷先讀梅福傳(개권선독매복전)
내게 홍로주 한 잔이 있어
칠할은 매화에 주고
삼할은 ⟪한서⟫에 남겨 짓느니
책을 펴면 먼저 <매복전>을 읽는다.
이 짧은 글에서는 유가(儒家)의 향기가 난다.
붉은 홍로주 한 잔의 칠 할을 마시고
매화를 그리고
남은 삼할을 《漢書》를 마시며 읽는데 그 중 <매복전>을 먼저 편다는 것인데
매복전은 漢나라 충신 매복(梅福)에 대한 전기(傳記)다.
매복은 字가 자진(子真)이고 구강 수춘(九江 壽春)사람으로 어려서 장안에서 공부하여
공자의 『춘추좌씨전』과 『춘추곡량전』, 『예기』, 『세본(世本)』등에 밝았다.
외척 왕씨가 득세하던 성제(成帝,BC32~BC7) 때 대장군(大將軍) 왕봉(王鳳)이 권력을 쥐었다.
경조윤(京兆尹) 왕장(王章)이 왕봉을 비난하다가 살해당하자
신하들 가운데 감히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는데,
현위(縣尉)의 미관말직인 매복만이 상서하여 간언했다.
평제(平帝) 당시 왕망(王莽)이 선양을 꾀하여 신(新)나라를 세우자
처자와 이별하고 고향 구강을 떠나
회계(會稽)의 비홍산(飛鴻山)에 은거하여 도를 배우며 살다 죽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 산을 매잠(梅岑)이라 고쳐 불렀다.
그의 상소문이 반고의 역사서에 실리게 된 것이다.
두보(杜甫)는 송배이규작위영가(送裴二虯作尉永嘉)에 이렇게 적었다
隱吏逢梅福遊山憶謝公(은리봉매복 유산억사공)
숨어 사는 관리로는 매복을 생각하고, 산에 놀러 가 사영운(謝靈運)을 생각한다.
강희안(姜希顔)은 재실독황정내경일편 부용전운기경순齋室讀黃庭內景一篇/復用前韻寄景醇>에서
葛洪求令因成道 梅福休官便學仙(갈홍구령인성도 매복휴관편학선)
갈홍은 수령을 자청하여 도를 이루었고, 매복은 벼슬을 쉬고 신선되기를 공부한다. 라고 했다.
그림에 화제로 우봉은 매복의 전기를 읽으며 충신의 간언을 적었다.
왼쪽 그림 아래에는 이리 적었다.
硏池春生卍花迸現(연지춘생만화병현)
一花一佛(일화일불)
使人如參龍華會(사인여참용화회)
上以圖(상이도)
畵作佛事(화작불사)
自我始(자아시)
연지에 봄이 되어 여러 꽃이 솟아오르는데
하나의 꽃이 하나의 부처라
사람으로 하여 용화회에 참석하는 것과 같아
위 그림이 의도한 것이며
그림으로 불사를 하니
나로부터 시작이라.
용화회는 4월 초파일 불교에서 부처가 탄생하는 모습의 불상을 목욕시켜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법회를 말한다.
이 글에서 우봉은 수 많은 매화 꽃이 석탄절에 모인 중생의 모습과 비하며
그림으로 불사한다고 적었다.
이 대련은 유불선(儒佛仙)이 모두 있다.
시대적 상황인지 우봉의 관념인지 모르나
노론의 사고로 꽉찬 우봉의 유교 관념과
신선의 단약(丹藥)으로 불로장생을 꿈꾸던 우봉의 희망과
봄 날 매화꽃을 용화회에 모인 중생의 모습으로 우봉이 대련에 가득한 매화를 그린 것이다.
다만 임자도에서 우봉이 그리도 좋아하는 매화도 이른 봄의 짧은 만남이었을 것이다.
'옛 그림 속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주 김진우의 묵죽에 적힌 <소동파죽> (0) | 2019.07.20 |
---|---|
김홍도의 월하청송도와 그 시제 (0) | 2019.07.19 |
조희룡의 고목석죽도의 글 (0) | 2019.03.12 |
신위의 묵죽 속의 글2 (0) | 2019.03.10 |
신위의 묵죽 속의 글 1 (0) | 2019.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