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나는 담양 소쇄원을 사진에 담으려 길을 나섰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장성교차로에서 14번 고창담양간 고속도로에 바꿔오르고 담양교차로에서 다시 12번 88고속도로를 타고 고서교차로에서 25번 남해고속도로를 잠시 갈아탄 뒤, 창평IC에 내려 좌로 명옥헌을 뒤로한채 고서면 소재지 삼거리 다리앞 한우식당에서 비빔밥으로 끼니를 이었다. 이 비빔밥은 특이하게 한우 육회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는 곧장 고서면 광주호를 우로 두고 돌아 소쇄원 앞 주차장에 도달했다. 충주에서 정확히 3시간 25분 걸렸다.
아마도 족히 15년은 넘었을 법한 되걸음이었다.
소쇄원은 주차비도 내고 입장료도 내었다. 허허 이젠 돈내고 이 조그만 정원을 사진찍으러 다시 왔구나! 했다
소쇄원은 광풍제월이라는 나의 잡기(雜記)에 그 해석을 실으려하기에 사진은 졸하지만
어디서 듣고 읽은 내용과 내가 공부했던 정원양식, 양택론, 18살(煞)등을 확인하고자 했기에 충분히 되새김할만하다고 자위했다.
왼쪽 위가 제월당이고 우측건물이 광풍각이다/모각(사방 마루를 두르고 안 사각에 방을 둠)건물이다
발길을 돌려 가사문학관 아래 식영정(息影亭)을 찾았다./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쉴식자를 전체로 새긴 현판이 후후.
뒤로는 100년이 넘는 소나무가 고풍을 더하고, 언덕 아래로 잔잔한 광주호가 마음을 비우게 하는 곳.
야트막한 산자락 위에 자리잡아 달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정자가 바로 식영정이다.
담양 일대의 정자 중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아, 쟁쟁한 문인들이 이곳에서 대자연의 흥취에 한껏 빠져들었다고 한다.
건물이 단순 팔작지붕(네귀퉁이마다 추녀를 단 건물)이다.복원한 티가 난다
이 정자는 명종15년(1560)에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세운 정자이며, 서하당은 석천의 사위이면서 제자였다. 그때 석천에게 시문을 배우던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등도 함께 교유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국문학 발전의 기틀을 이루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석천, 서하당, 제봉, 송강을 가리켜 '식영정 사선'이라 불렀고, 식영정을 사선정이라고도 했다.
나는 시간을 때우고자 내리 보성으로 한 시간을 달려 득량만 보성차밭을 찾았다.
그 전에는 한국다원이라는 곳에 들러 돈도 낸 적이 있어 전망 좋은 곳에서 사진 만 박았다.
보성에서 18번 국도를 타면 보성차밭전망대가 있다/좌는 영천저수지다.
이 놈의 차밭이 보성다원인데 차나무 골마다 풀이 잔뜩이다. 저걸 어쩌려는지 농사꾼으로서는 캄캄했다.
여기부터 비가 조금씩 내렸다. 목포로 달렷다 2번 국도가 4차선으로 포장이 쫙 되었더라. 김 대중의 공이다.
목포로 들어가려다 무안낙지를 먹으러 가는 길에 기억나는 밥집이 있다. 거기서 예전만 못하지만 25찬 밥을 5천원에 먹었다.
나의 9872차량이다. ㅎㅎ
아는가 우리나라 국도의 체계를.. 홀수는 남북종단이고 짝수는 서동횡단이다. 하여 1번국도는 목포에서 서울이고(원래는 신의주까지다) 3번은 경남남해에서 충주도 지나고 성남 서울을 지난다(원래는 평북 초산까지다) 유명한 동해안도로가 7번국도다. 그리고 짝수는 남해에서부터 올라온다. 2번 국도는 목포에서 부산까지다.
나는 1넌 국도를 따라 무안에 도착해서 지금은 서서히 비싸져가는 뻘낙지와 세발낙지를 사먹었다. 약간의 소주와(무던히 아쉽지만)
그리고 달음질하는 김에 법성포(영광) 굴비 사러 갔다. 법성포는 온통 굴비판이다.
내 보기엔 수백집은 족히 된다. 그 중 깨끗해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한 두름에 2만5천원주고 사왔다.
차는 계속 달린다. 고창이라는 좋은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거다. 다시 시간이 되면 1박을 고창에서 하고 여러 곳을 볼 참이다.
고창의 여러 가 볼만한 곳 중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고인돌과 보존이 완벽한 고창읍성 그리고 게르마늄온천과 차로도 달릴 수 있는 고사포와 명사십리 해수욕장. 전북에 우뚝서 가히 방장이라 칭할 만한 방장산이 그 곳이다.
난 이번에 다 들릴 수 없어 고창에 가기전 무장에서 자그마한 읍성내 있는 객사를 들러보았다. 아주 멋진 그림도 얻었다.
송사지관이라는 현판의 객사아래 기단에 있는 화병이다
그리고 고창에서는 길가에 늘어선 고인돌군을 한 컷 했다
아마도 삼천개는 될 만한 숫자를 가진 고인돌 군이다.
되올라오는 길에 전주에서 비빔밥을 먹고자 했고 실망시키지 않는 전라도 밥상을 또 먹게 되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전주객사를 찍기란 여간 아니었다.
현판은 풍패지관(豊沛之館)의 초서체다.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이 풍패다 예서 왕조의 본향을 일컫는 고유명사가 됐다
이 나들이는 오로지 대학시절 답사하듯 되었다.
기름을 2번 집어넣으며 달린 길이었다. 그만큼 쉼없이 바퀴를 닳아 낸 길나섬이었다.
누군가 동행을 할 이가 없어 무소의 뿔처럼 홀로 다녀온 길이였다.
뉘 시간이 되어 내게 길나섬의 연출을 맡긴다면 기껍게 하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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