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風과 霽月을 이름으로 현판한 누각도 많다.
그것은 유교의 시작이라는 주돈이의 사상에서 비롯된다고 말했거니와
그 뜻이 주는 마음가짐에서 많은 조선의 학자들이 좌우명하고자 한 연유다
1. 창덕궁 비원에 있는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다
정조대왕의 신진관료들의 공부방인 규장각이 있는 비원 주합루 뒷편 독서실이다
2. 안동 서후면 금계리 천등산 남록에 있는 광풍정 제월대이다
거대한 자연 암석 아래에 있는 이 건물은 조선 중기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4) 선생이
300여 문인에게 강학(講學)하던 유서 깊은 정자다. 이 양반/ 벼슬은 하지 않았다.
김성일 유성룡에게서 사사받았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공부만 했다.
역학에 조예가 깊어 송나라 유학자 호방평(胡方平)이 써 역학의 시대구분을 확정했다는 역학계몽통석 분배절기도(易學啓夢通釋 分配節氣圖)의 오류를 지적하여
십이절기를 새로이 규연한 책을 20년동안 연구한 사람이다.
아울러 임진난엔 의병으로 칼을 들고,
난이 끝난 후에 돌연 선비로 돌아가 죽을때까지 敬을 실천하고자 한 대학자이다.
뒷편의 자연 암석은 경당 선생께서 제월대라 명명했고
능주목사<전남화순군 능주면이 옛적엔 능주목이였다) 김진화가 표면에
′경당선생제월대(敬堂先生霽月臺)′라는 휘호를 남겼다.
3. 영주 소수서원에 있는 광풍정이다
4. 그리고 당연 백미는 전남 담양 소쇄원이다.
조선 중기 유학엔 퇴계가 반드시 반듯이 있다지만 현실참여엔 조광조가 있다.
이 조광조와 관련되어 장흥효도 멀지 않지만
이 소쇄원을 지었다는 소쇄옹 양산보(瀟灑翁 梁山甫 1503-1557)만 못하다
지금은 양산보의 철학을 의리(義理)사상이라고 정한 사람도 있다. 좌간 그는 천재였다.
일찍이 15세 나이에 동네에서 배울게 없어 당시 30대 초반의 밉상받이 홍문관 부제학이던
조광조 문하에 들어가 17살에 조광조가 만든 현량과에 합격하였지만 나이가 어려 등사하지 못하다,
그해 중종14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스승이 능주(아까 언급한 곳)에 유배되자 그곳까지 따라갔다,
벼슬길을 때려치고 고향 담양에 와 멋들어지게 조성하여
지금도 건축학에서 샘플이 되는 소쇄원(瀟灑園)만들기 시작했다는 거 아니겠는가!
친구들 가 본적이 있던가?
담양은 소쇄원말고도 많은 정원이 있다네 그중 명옥헌도 있으니 들러들 보시게나
대밭 지나며 산림욕도 하고.... 그리고 왜? 이 동네, 대나무가 많은 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게나^^
그건 소쇄원에 힌트가 있듯이 봉황과 관련이 있다네.
아는가?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둥지를 틀지 아니하고, 천년 대나무의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아니한다는....
광풍제월의 제(霽)는 '비 갤 제' 라네
하여 이 글에서 시작된 여행을 소쇄원의 풍수적 해석으로 다음에 이어가고자 한다.
즐독하면 고맙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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