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구산리삼층석탑은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1494-1번지에 위치한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높이는 3.24m이다.
아래 위층 기단의 네 면에 우주(隅柱, 모서리 기둥)와 가운데에 탱주(撑柱 버팀 기둥)을 새겼다.
아랫 기단의 갑석(甲石,윗면)은 경사를 주었으며 윗 기단이 앉는 자리에 굄돌 모양을 만들었다.
탑이 넘어져 깨진 것을 수리하여 붙였고 아래 기단 몸돌은 거의 새 돌로 채웠다.
형태는 같으나 안상을 조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작시기가 더 오래된 탑이다.

윗 기단의 갑석은 경사를 줄였고 굄돌 모양을 새겨 1층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기단 몸돌에는 우주와 탱주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탑신부를 이루는 탑신(몸돌)과 옥개석(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3층 탑신의 너비는 아주 작게 줄여 올렸는데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과 비례가 비슷하다.
고려시대에는 기단에 비해 탑신이 빈약하게 작아지는 특징이 있다.

1층 탑신 남쪽 면에 길고 네모난 윤곽이 새겨져 있는데 문비인지 감실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옥개석 밑면에 5단 받침을 두었고, 윗면은 얇고 처마선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신라의 통일 이후 주로 표현되는 형태다.
낙수면 위에 옥신굄 2단이 있다. 옥개석의 받침 표현이 5개인 것이 통일신라시대의 정형이고 시기가 흐를수록 그 숫자가 줄어든다.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으나, 3층 옥개석 위에 지름 23.5㎝, 깊이 7㎝의 원형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이 석탑은 일찍이 넘어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
옆에 서 있던 고목은 베어져 있었다.


고려시대 청암사(靑岩寺)터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는데 2006년 주변 유적을 조사하였고 건물지와 금동불상이 발굴되고 명문 기와와 도자기및 희녕중보(1067-1077주조) 동전이 발굴 되었다. 주변 마을 이름도 탑동이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이 잘 나타나 있고,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과 형태가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굄돌이 보이고
기단에 인상 조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9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예쁜 탑은 아니었다.
그 제작 표현이 9세기 형식이고 울진 지역을 대표하는 석탑이기에 1968년 보물 제498호로 지정되었을 것이라 본다.
북편에서 3칸 규모의 건물지가 확인된다. 전면 주칸 370㎝, 측면 670㎝이다.


옆에 놓인 구산리 석등재는 연화문의 하대석과 간주석 일부로 하대석은 폭 73㎝, 높이 20㎝에 8엽의 연화문이 둘려 있다. 간주석은 폭 25㎝에 높이 50㎝가량만이 남았다.

또한 탑이 원래의 자리인지도 의문이나 주변 민가 농지에서 땅을 일구면 기와 파편이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탑이 선 자리 옆을 휘돌아 흐르는 왕피천과 구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봉우리가 둘러싸 아늑한 곳이다. 왕피천의 옛 이름 중 하나가 수산천(守山川)이다. 말 그대로 산을 지키는 여울이다.
아직도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어쩌면 계속 숨겨야 할 계곡 언저리에 자리한 탑을 묵묵히 쳐다보고 왔다.
그리고 국보와 보물의 경계를 허물었으나 엄연히 나라의 보물인데 주차시설도, 관리도 너무 부족하다.
탑의 앞까지 차를 운전하였다가 후진하여 나왔다.

점심으로 죽변항 등대회식당에서 물회를 먹었다.

6월이 제일 한가할 때라고 하지만 죽변은 조용했다. 생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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