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국풍(國風)

3. 패풍(邶風) 1. 백주(柏舟)

허접떼기 2022. 7. 1. 18:13

출처/baidu.com

柏舟 汎其流 범피백주 역범기류

耿耿不寐 如有隱憂 경경불매 여유은우

我無酒 以미아무주 이오이유

 

我心匪 不可以아심비감 불가이여

亦有兄弟 不可以역유형제 불가이거

薄言 逢彼之怒 박언왕소 봉피지노

 

我心匪石 不可轉也 아심비석 불가전야

我心匪席 不可卷也 아심비석 불가권야

威儀棣棣 不可위의체체 불가선야

 

憂心悄悄 群小 우심초초 온우군소

覯閔旣多 受侮不少 구민기다 수모불소

靜言思之 寤辟정언사지 오벽유표

 

일기월저 호질이미

心之憂矣 如匪심지우의 여비한의

靜言思之 不能奮飛 정언사지 불능분비

 

측백나뭇배가 두둥실 떠내려가네

시름으로 잠 못 이루니 남모르는 근심인냥

술도 안 마시고 이리저리 노닐지도 못하네

 

내 마음은 거울이 아니라 짐작하지 못하리

형제가 있으나 기댈 수 없네

가서 털어놔도 그들의 노여움을 만나리니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니 굴릴 수 없고

내 마음은 자리가 아니니 말 수도 없네

용모와 태도는 점잖으나 어림할 수 없네

 

시름에 걱정으로 하찮은 이들에게 원망이고

우환은 이미 많았고 수모도 적지 않게 받아

조용히 생각하니 거꾸로 가슴을 치고 마네

 

해와 달은 어찌 번갈아들고 이지러지나?

마음이 우울하니 옷을 빨지 않은 듯하네

가만히 생각해도 떨쳐 날아오를 수 없네

 

汎(범) : 뜨다, 떠 있는 모양

柏舟(백주) : 측백으로 만든 배

  잣나무라는 설은 조금 의아스럽다.

  잣나무는 한국 고유의 나무로

  중국에서는 紅松으로 부른다.

  편백도 扁柏이라 부른다.

  편백은 한국과 일본이 자생지다.

  제갈량의 묘에 심은 나무가 측백이다.

  <용풍,백주>에도 나온다

亦(역) : 조사로 말머리에 쓰인다

耿耿(경경) : 마음에 잊히지 아니함

  근심스러운 모양

  걱정거리로 두 눈을 감지 못하는 것(炯炯)

隱憂(은우) : 남모르게 걱정하다

微(미) : 아니다

敖(오) : 놀다, 거닐다

敖遊(오유) : 이곳저곳 놀러 다니다

鑒(감) : 거울

茹(여) : 헤아리다, 짐작하다.

據(거) : 의지하다, 기대다.

薄(박) : 구의 앞머리에 쓰이니 발어사

  薄浣我衣<주남,갈담>의 예와 같다

言(언) : 이에, 어기(語氣)를 나타내는 말

  薄言還歸<소남,채번>참조

愬(소) : 하소연하다, 털어놓다

威儀(위의) : 엄숙한 용모 장중한 태도

棣棣(체체) : 한가로운 모양

  점잖고 고상한 모습

選(선) : 가리다, 어림잡아 계산하다

悄悄(초초) 근심하는 모양

慍(온) : 성내다, 화를 내다

覯(구) : 체험하다, 만나다

閔(민) : 근심, 우환

言(언) : 어기 조사

寤(오) : 거꾸로(啎)

辟(벽) : 가슴을 치다(擗)

摽(표) : 치다 두드리다

居(기)/諸(저) : 어조사

迭(질) : 번갈아들다

微(미) : 쇠퇴하다,

  일설에 일식과 월식을 가리킨다 한다

澣(한) : 빨래하다(浣)

奮(분) : 번민 등을 털어내다

奮飛(분비) : 새가 날개 치며 날아오르다

 

<毛詩序>는 경후(頃侯,재위BC866-BC855)때 어진 이가 때를 만나지 못하고 소인배가 제후 곁에 있어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전한의 학자 유향(劉向,BC77-BC6)은 위 선공(宣公,재위BC718-BC700) 부인의 작품이라 한다

“정숙한 여자는 수시로 변하는 두 마음이 아니니 돌이 아니라는 싯구를 지었다”는 것이다

주자는 부인이 남편에게 믿음을 얻을 수 없어 스스로를 柏舟에 비유한 것이라 한다<詩集傳>

 

주 무왕(재위BC1122-1116)은 은(殷)을 멸하고

은의 마지막 왕인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으로 하여 은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우들인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으로 은의 신하들을 감독케 하였다.

그래서 이 세 형제를 삼감(三監)이라 한다.

은의 도읍이던 은허(殷墟)를 조가(朝歌)라 하고

그 북쪽을 패(邶), 남쪽을 용(鄘), 동쪽을 위(衛)라 불렀다고 한다. (鄭玄의 <詩譜>)

무경이 패를 관숙이 용을 채숙이 위를 다스렸다는 데 정설은 아니다.

성왕(成王, 재위BC1115-1079)때 무경과 관채의 난을 평정하고

강숙(康叔, 이름은 封)을 위에 봉하고 패와 용도 다스리게 하였다.

강숙이 조가에 도읍하고 은의 유민을 다스렸고, 그 이후 패와 용의 구분은 의미없고 모두 위라 불렸다.

의공(懿公,재위BC668-BC660)때 북적(北狄)에게 망하여

대공(戴公,재위BC660)때 황하를 건너 동으로 조읍(漕邑)에 천도하고

문공(文公,재위BC659-BC635)때 다시 초구(楚丘)로 옮겼으나

모두 위나라 땅이다.

오나라 계찰(季札)은 패풍,용풍 모두 위풍이라고 하였다.

이 시의 위의체체(威儀棣棣)를 인용하며 <左傳>은 위풍이라 하였다.

굳이 3나라의 노래로 나눈 이유와 역사는 지금도 무의미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