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국풍(國風)

11. 진풍(秦風) 9. 위양(渭陽)

허접떼기 2022. 2. 22. 19:45

秦이 9번 도읍을 옮긴 사진이다

我送舅氏 渭陽 아송구씨 왈지위양

何以贈之 路車乘黃 하지증지 노차승황

 

我送舅氏 悠悠我思 아송구씨 유유아사

何以贈之 瓊瑰玉佩 하지증지 경괴옥패

 

내가 외숙을 배웅하니 위양에 이르렀다.

무엇을 선물해 드릴까? 마차와 승황으로 하자.

 

내가 외숙을 배웅하니 아득히 먼 상념이 있다.

무엇을 선물로 드리나? 주옥과 옥패로 하자.

 

舅氏(구씨)는 외삼촌을 일컫는다.

(왈)은 이에~를 뜻하고

渭陽(위양)은 지명으로 위수의 북쪽을 말한다.

아울러 渭陽丈은 남의 외숙을 부르는 말이다. 구씨와 대칭되는 효과도 노린 것이다.

路車(노거)는 제후가 타던 수레다.

乘黃(승황)은 네 황마가 끄는 수레를 말한다. 乘은 4의 뜻이고 黃은 黃馬다.

승황의 다른 뜻으로 한 번 타면 2천년을 산다는 뿔이 달린 여우 모습의 神馬가 있다.

悠悠(유유)는 아득하게 먼 모양과 여유있는 모양을 말한다.

我思(아사)는 강공(康公)이 어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강공의 모친은 晉헌공(獻公)의 딸로 秦목공(穆公)에게 시집을 와 진희(秦姬)로 불린다.

진헌공은 호색하여 부친의 첩인 제강(齊姜)과 정을 통해 태자 신생(申生)을 낳은 것을 비롯해

여러 명의 첩에서 많은 자식을 얻었다.

그 뒤 여융(驪戎)을 정벌하고 취한 여희(驪姬)를 총애하여

신생을 태자에서 폐하고 여희 소생인 해제(奚齊)를 태자로 책봉하였다.

그리고 공자 중이(重耳, 진문공)와 이오(夷吾, 훗날 진혜공)를 쫒아냈다.

晉에서 이극(里克)등이 반란을 일으켜 해제도 죽고 여희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진문공 중이는 20년이 지나서 귀국하여 군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진문공은 개자추 등의 보좌로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가 된다.

진문공과 강공의 모친은 배다른 오누이다.

瓊瑰(경괴)는 붉은 옥구슬, 주옥(珠玉)이다.

玉佩(옥패)는 여성이 지니는 옥으로 만든 패물이다.

중국에서 그나마 진솔히 영역을 표시한 춘추시대 영역이다

秦은 풍속적으로 중원의 제국과 달라 야만스럽다고 업신당했다. 주로 서융(西戎)과 싸우며 영토를 키웠다.

秦목공 당시 수도는 옹성(雍城)이다. 지금의 보계(寶鷄)市 위 봉상(鳳翔)區에 옹성의 고적이 있다.

그곳에서 위수를 따라 120km 동쪽, 함양(咸陽,지금의 西安)이 위양(渭陽)으로 비정된다.<鄭箋>

함양에서 晉의 당시 수도인 곡옥(曲沃)까지는 동북 280km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