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金弘道(김홍도,1745-1805?)가 부채에 그린 <죽리탄금도(竹裡彈琴圖)>로
고려대박물관에 있다.
이 그림에 단원 김홍도가 쓴 글은 이렇다.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홀로 그윽한 대숲 속에 앉아
彈琴復長嘯(탄금부장소) 거문고를 뜯고 시를 읊조린다.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깊은 숲이니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明月來相照(명월래상조) 밝은 달이 찾아와 서로를 비춘다.
長嘯(장소)는 길게 부는 휘파람이다.
詩語에서는 시나 노래를 읊조림을 뜻한다.
相照(상조)는 서로 대조(對照)함이다.
肝膽相照(간담상조)의 쓰임처럼 서로 깊이 터놓고 사귄다는 뜻이 있으니
두 개의 대상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모양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중국을 통 털어 서정시의 형식을 완성한 3대 시인이 있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를 살았다.
남성적이고 의협심을 중히 여기고 평생 술을 가까이 하였고
오랜 방랑과 신선도를 닦기도 하여 詩仙(시선)이라 불린 李白(이백,701-762).
사회적 관심사를 많이 써서 詩史(시사)라고도 불리고,
인간의 심리와 자연의 사실 등을 넘치는 기교로
수많은 시를 남겨 詩聖(시성)으로 불린 杜甫(두보, 712-770).
위 두 사람과 달리 과거에 급제하고 右丞(우승)에 까지 올랐으며,
동진의 도연명과 송의 사령운의 산수시의 영향으로 자연시를 크게 발달시켰고
吳道子, 鄭虔 등과 함께 남종화의 개조로 여겨지는 등 수묵산수화에 뛰어나
소동파가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에 시가 있다”고 평가한 사람.
孟浩然(맹호연,689-740), 韋應物(위응물,737-804), 柳宗元(유종원,773-819)과 더불어
‘王孟韋柳’의 하나이며
藍田(남전)의 終南山(종남산) 기슭 輞川莊(만천장)에 머물며 시와 그림에 살았던 사람.
어머니의 영향으로 시작된 불가와의 인연으로 어릴 적 이름이 摩詰(마힐)이기도 하여
詩佛(시불)로 불린 王維(왕유699-759)가 그들이다.
왕유가 竹里館(죽리관)라는 제목으로 쓴 시를 단원이 그림에 시제로 적었다.
죽리관은 그가 머물던 종남산 輞川(망천) 별장 속에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옛 그림 속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홍도의 구룡연도와 제발문 (0) | 2020.02.19 |
---|---|
김홍도의 고목석죽도와 글씨 (0) | 2020.02.08 |
해강 김규진이 그린 대나무와 제시 (0) | 2020.01.18 |
소호 김응원의 묵란과 화제2 (0) | 2020.01.09 |
소호 김응원의 묵란과 화제 (0) | 2020.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