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소호 김응원의 묵란과 화제

허접떼기 2020. 1. 9. 13:31

김응원(金應元, 1855-1921)의 호는 소호(小湖).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하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1911년에 서화미술회(書畫美術會) 강습소가 개설될 때 묵란법(墨蘭法)을 가르쳤고.

1918년 서화협회(書畫協會) 13인의 발기인중 하나였다.

행서와 예서를 잘 썼고, 대원군의 필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독자적인 경지를 이룬 묵란이 탁월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창덕궁 소장인 웅장하고 환상적인 구도의 대작 석란도(石蘭圖)등이 있다.


위 그림은 어느 경매에 나와 얻은 사진이다.

그곳에 달린 제시(題詩)에 대한 풀이가 다소 이상하여 나름 짚어보고자 하였다.


湘江春日靜輝輝 상강춘일정휘휘

蘭雪初晴翡翠飛 난설초청비취비


拂石似鳴蒼玉佩 불석사명창옥패

御風還著六銖衣 어풍환저륙수의


夜寒燕姞空多夢 야한연길공다몽

歲晩王孫尙不歸 세만왕손상불귀


千載畵圖勞點綴 천재화도노점철

所思何處寄芳菲 소사하처기방비


書爲怡堂仁兄雅正 庚申立龝小湖金應元寫意

이당 아형을 위하여 경신년(1920) 가을 소호 김응원이 의미를 살려 그림


이당은 이도영(李道榮)의 족숙이며 서화협회 회원으로

나비 그림을 잘 그렸다는 이경승(李絅承,1862-1927)이다.


위 시는 7언 절구로 2구가 대구로 이어진다.

음운은 飛비, 衣의,歸귀, 菲비다.


상강의 봄 햇살이 조용히 비추고 비치니

난초의 눈발이 처음 녹으며 비취처럼 날린다.


(난이)돌에 스치니 마치 푸른 옥패처럼 울리고

바람을 맞으니 또 얇은 옷을 입는구나


날은 찬데 연길은 부질없이 꿈이 잦고

해가 가도 왕손은 여태 돌아오지 않네

 

천년동안 그림을 그려 이어지도록 애썼는데

생각한바 어느 곳으로 향기로움을 부치려나


이 시를 쓴 사람은 원대 승려 종연(宗衍13091351)이다.

자는 도원(道原)이고 시와 서예에 뛰어났다.

그가 남긴 《벽산당집(碧山堂集)》에 제조공송설묵란(題趙公松雪墨蘭)」이란 제하의 시.

조공이란 조맹부를 말한다. 소호가 쓴 시와 다른 글자는 갤 晴이 아닌 꺼질 消 정도이다.


좌씨전(左氏傳)》 「선공3(宣公三年)의 기록은 이렇다

겨울에 정 목공이 죽었다. 처음 정 문공에게 천첩이 있으니 이름이 연길이다.

꿈에 천사가 난초를 주며 나는 백조다 너의 조상이다.

이 꽃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다.

난초는 나라에서 으뜸가는 향기가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난처럼 몸에 지니고 아끼게 될 것이다.

그 후 문공이 그녀를 보자 난을 주며 시침을 들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밝히며 말했다.

소첩은 미천합니다. 다행히 아들을 낳았으나 장차 믿지 못하신다면

 이 난을 징표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그녀는 목공을 낳았고 이름을 난()이라고 지었다.

문공은 숙부 정자의 비, 진규(陳媯)와 간통하여 자화(子華)와 자장(子臧)을 낳았다.

자장은 죄를 지어 나라 밖으로 도망쳤으나

문공은 자화를 유인하여 남리(南里)에서 죽였고

자객을 보내 진과 송나라 사이에서 자장을 죽였다.

문공은 또 강나라 여인을 얻어 공 자사(子士)를 낳았다.

자사가 초나라에 입조했는데

초는 그에게 독을 먹였고 자사는 섭에 이르러 죽었다.

문공은 다시 소나라 여인을 얻어 자하(子瑕)와 자유미(子俞彌)를 낳았는데

자유미는 일찍 죽었다.

설가(洩駕)는 자하를 미워했고 문공 역시 그리하여 태자로 세우지 않았다.

문공이 여러 공자를 축출했는데

난은 진()으로 도망하였다가. 공을 따라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

정나라 대부 석계(石癸)

내가 희()씨와 길()씨는 좋은 배필이라

그 자손은 필시 크게 번성할 것이라 들었다.

()吉人의 뜻이고 후직의 원비도 길씨였다.

난은 길성의 조카이니 하늘이 혹 그에게 길을 열어 주면

반드시 군주가 되고 그 후손은 번성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를 받아들이면 큰 총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석계는 공 장서(將鉏)와 후 선다(宣多)와 함께 그를 받아들여

대궁에서 동맹을 맺고 태자로 세우고 진나라와 화평을 맺었다. (BC630)

후에 목공이 병이 들자 말했다.

난이 죽으면 나도 죽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난으로 인해서였다.”

난을 베자 목공이 죽었다.


鄭穆公卒鄭文公有賤妾曰燕姞夢天使與己蘭余爲伯鯈余而祖也以是爲而子以蘭有國香人服媚之如是既而文公見之與之蘭而御之辭曰妾不才幸而有子將不信敢徵蘭乎公曰生穆公名之曰蘭文公報鄭子之妃曰陳媯生子華子臧子臧得罪而出誘子華而殺之南里使盜殺子臧於陳宋之間又娶于江生公子士朝于楚楚人酖之及葉而死又娶于蘇生子瑕子俞彌俞彌早卒洩駕惡瑕文公亦惡之故不立也公逐群公子公子蘭奔晉從晉文公伐鄭石癸曰吾聞姬姞耦其子孫必蕃吉人也后稷之元妃也今公子蘭姞甥也天或啟之必將為君其後必蕃先納之可以亢寵與孔將鉏侯宣多納之盟于大宮而立之以與晉平穆公有疾蘭死吾其死乎吾所以生也刈蘭而卒


여자가 난초 꿈을 꾸면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은 비범한 인물이 된다는 속신이 전해지는 계기다.

중국의 <주공해몽(周公解夢)>에 난초가 뜰에 나는 꿈을 꾸면 아들이 태어나는 징조라 적혀있다.

정몽주의 처음 이름도 몽란이었다.

포은의 어머니가 난초화분을 안았다 떨어뜨리는 꿈을 꾸어 그를 낳았기에 그리 지었다는 것이다.


연길이 낳은 목공은 13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이 중 장남인 이와 차남인 견은 정영공과 정양공이 되었다.

나머지 아들들도 일가를 이루어 이들 중 7명의 자손이 칠목(七穆)이라 불리며

후일 정나라의 정치를 좌우하게 된다.


위와 같은 고사를 넣은 시를 그저 제비(燕)로 직역한 풀이가 아쉬워 이 글을 적었다.

아울러 같은 내용의 시를 화제로 한 소호의 그림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9.04.16.~06.02까지

 봄 새벽을 깨우다 근대서화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열었다.

유길준(俞吉濬,1856-1914)의 제가 아울러 있는 소호의 묵란도가 전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