麟之趾 인지지
振振公子 于嗟麟兮 진진공자 우차린혜
麟之定 인지정
振振公姓 于嗟麟兮 진진공성 우차린혜
麟之角 인지각
振振公族 于嗟麟兮 진진공족 우차린혜
기린의 발굽이듯 인후한 공자! 기린이로다!
기린의 이마이듯 인후한 공성! 기린이로다!
기린의 뿔이듯 인후한 공족! 기린이로다!
麟(기린) : 상상의 동물이다.
발굽은 있으나 밟지 않으며(有蹄不踏)
이마가 있으나 들이박지 않으며(有額不扺)
뿔이 있으나 받지 않아 (有角不觸)
어질고 후덕하며(仁厚) 성실함에 비유한다
趾(지) : 발굽
振振(진진) : 성실하고 후덕하다.
公子(공자) : 제후의 아들
공자의 자손을 공성(公姓),
공성과 같은 조상을 둔 자손을 공족(公族)이라 한다
于嗟(우차) : 감탄사
定(정) : 이마(顁)
기린은 봉황•거북•용과 함께 사영수(四靈獸)를 이루어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었다.
기린의 출현은 성군 혹은 성인의 등장을 예고 한다.
임금이 정치를 잘해 태평성대를 이룰 때 나타난다는 봉황과 비슷하다.
과거 중국에는 기린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있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는 기린 태몽을 꾸었다.
신녀(神女)가 쟁반에 옥벽을 받쳐 들고 뜰앞에는 다섯 노인이 서 있었는데 기린이 옥으로 된 책을 토하였다.
거기에는 공자가 후에 '무관의 제왕(素王)'이 될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춘추(春秋)'의 마지막 구절은
애공(哀公) 14년 봄에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잡았다(西狩獲麟)'는 내용이다.
당시 사냥에서 기린을 잡은 자는 노나라의 실권자인 대부 숙손씨의 거자(車子, 수레를 관리하는 자) 서상(鉏商)이였다.
서상은 대수롭지 않게 우인(虞人, 가축을 키우는 이)에게 줘버렸다.
이를 본 공자가 기린이라 하니 뒤에 숙손씨가 취하였다.
공자는 이를 춘추에 기록하면서 "성인이 나타나야 출현하는 상서로운 짐승이 어찌 이런 때 나타나고,
성인의 앞이 아니면 복종하지 않는 짐승이 기린이 뭔지도 못 알아보는 자에게 잡히다니
하늘의 도가 이것으로 무너진 게 아닌가
吾道窮矣(오도궁의, 내 도가 다했구나.)”라며 한탄했다.
공자가 춘추의 기록을 획린(獲麟)으로 끝냈기에 이 단어는 '붓을 꺽다(絶筆)' 또는 '명을 다하다(臨終)'라는 관용구로도 쓰인다.
춘추를 '인경(麟經)'이라 부르게 된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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