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이인상의 수석도(樹石圖)와 삼익지우(三益之友)

허접떼기 2019. 2. 16. 23:53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1710-1760)은 고조부가 영의정을 지냈다.

배청친명파로 청에 두 번이나 억류되었고 효종 즉위로 영의정이 된 이경여(李敬輿/1585-1657)가 그의 고조부다.

그의 증조 이민계(李敏啓)가 서자다. 서출의 자손은 소과에 급제하여도 대과를 보지 못한다.

벼슬에 나아가도 종6품이 한계다.

성격도 휘어지지 못하여 음죽현감도 관찰사와의 갈등으로 그만 두게 되었지만 친구들은 많았다.

그의 집도 친구들이 알선하여 주었고 능호관이라는 당호도 얻었다.

그가 전서(篆書)로 쓴 글을 모은 첩(帖)에 원령필(元靈筆)이란 표지를 달은 작품은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꼬장꼬장한 김정희도 원령 이인상의 전각만은 크게 칭찬하였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을 통해 배웠다고 하는 그의 그림은 조선 후기 문인화의 큰 맥을 형성하였다.

정말 깔끔하고 담박하다.

특히 이인상은 스스로의 그림에 이렇다 저렇다 드러내지도 않았다.

 

이 그림에 이인상이 쓴 글은 이렇다.

樹寒而秀 石文而醜 (수한이수 석문이추)

나무는 추워도 빼어나다. 돌은 문채가 있지만 추하다.

戊午仲夏 麟祥戱寫 (무오중하 인상희사)

1738년 음력 5월 이인상이 재미삼아 그렸다.

 

원령이 이 그림을 29세에 그린 것이다.

게다가 음력 5월이면 더운 날인데 겨울의 수석(樹石)을 그렸다.

 

이 글은 송대 대문호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이 한 말이다.

소동파는 문동(文仝/1018-1079)이 그린 매화와 대나무와 돌 그림에 로 쓴 글이다.

 

梅寒而秀 竹瘠而壽 石醜而文 是爲三益之友 (매한이수 죽척이수 석추이문 시위삼익지우)

매화는 추워도 빼어나고 대나무는 메말라도 오래 살며 돌은 추해도 문채가 있다.

이것이 세 가지 도움이 되는 벗이다.

 

이인상은 매화 대신 보통명사 나무라 칭했고 을 바꿔 쓴 것이다.

 

 

소동파는 문동의 대나무 그림을 좋아했다.

이른바 마음 속에 대나무가 완성되어 있다흉중성죽(胸中成竹)이 두 사람에게서 생겨났다.

문동의 가 여가(與可). 늘 웃는다 하여 號가 소소선생(笑笑先生)이다.

마지막 벼슬이 지호주(知湖州)여서 문호주로 불리며 문동에서 시작된 묵죽화파를 호주죽파라 부른다.

 

 

(문동의 대나무 그림이다)

 

 

소동파는 다른 시에서 매화 대나무 소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부르기도 한다.

 

공자는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編)에 삼익지우를 말했다.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辟 友善柔 友便侫 損矣

익자삼우 손자삼우 우직 우량 우다문 익의 우편벽 우선유 우편녕 손의

유익한 벗 셋이 있고 해로운 벗이 셋이 있는데,

곧은 사람, 미더운 사람, 많이 들은 사람을 벗하면 도움이 될 것이며,

편벽한 자, 아첨하고 불성실한 자, 말만 앞세워 견문에 실이 없는 자를 벗하면 해가 된다.”

 

이인상이 이 그림을 피서의 방편으로 재미삼아 그렸는지 모르나,

소동파의 삼익지우에 빗대어 자신에게 문채(文彩)와 문자향(文字香)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