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이인상의 어초문답

허접떼기 2019. 2. 17. 19:12

<이인상의 어초문답(漁樵問答)>

 

이인상이 이 부채 그림에 전서(篆書)로 쓴 글은 이렇다.

 

採於山菜加茹 釣於水鮮可食(채어산채가여 조어수선가식)

戱作魚樵問答 倣古人筆意(희작어초문답 방고인필의)

 

산에서 캐어 나물이 먹을 만하고 물에서 낚아 물고기가 싱싱해 먹을 만하다.

어부와 나무꾼의 문답을 재미로 그려 옛사람의 그림에 담긴 의미를 본떴다.

 

그림에 쓴 글의 앞부분은

당대 문장가 퇴지(退之) 한유(韓愈/768-824)가 이원(李愿)을 보내고 반곡에 돌아와 쓴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의 일부다.

 

窮居而野處 升高而望遠 (궁거이야처 승고이망원)

坐茂樹以終日 濯淸泉以自潔 (좌무수이종일 탁청천이자결)

採於山美可茹 釣於水鮮可食 (채어산미가여 조어수선가식)

起居無時 惟適之安 (기거무시 유적지안)

與其譽於前 孰若無毁於其後 (여기예어전 숙약무훼어기후)

與其樂於身 孰若無憂於其心 (여기락어신 숙약무우어기심)

車服不維 刀鋸不加 (거복불유 도거불가)

理亂不知 黜陟不聞 (이난부지 출척불문)

大丈夫不遇於時者之所 (대장부불우어시자지소)

我則行之 (아즉행지)

 

사는 게 궁하여 들에 살며, 높이 올라 멀리 본다.

우거진 나무에 종일 앉아 있고, 맑은 샘에 씻어 저절로 깨끗하구나.

산에서 캐어 나물이 먹을 만하고 물에서 낚아 싱싱해 먹을 만하다.

사는 데 때가 없고 오로지 쫓는 게 편안이다.

앞에서 좋은 평판과 뒤에서 헐뜯지 않는 것이 뭐 같겠는가?

몸에 즐거운 것과 마음에 걱정 없는 것이 뭐가 같겠는가?

타고 입는 거 생각하지 않고 칼과 톱도 더하지 않고

다스림과 난리도 모르고, 내치던 올리던 듣지 않는 건

대장부가 때를 잘못 만난 것에 있는 것이다.

내가 곧 그렇게 한다.

    

작년 어느 때 단원 김홍도가 이 시에 나오는  

坐茂樹以終日 濯淸泉以自潔 을 제시로 쓴 그림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그리고 이인상이 인용한

어초문답은 그 출처가 宋代로 올라간다.

 

소강절(邵雍,:康節/1011~1077)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어초문대(魚樵問對)가 그것이다.

 

어부가 물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무꾼이 그 옆을 지나다 짊어진 짐을 벗어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어부와 아주 길게 세상을 보는 이치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다.

그 내용은 너무도 길어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소식(蘇軾 1036~1101)전적벽부(前赤壁賦)』<어초한화록(漁樵閑話錄)>에 어초가 나온다.

 

況吾與子(황오여자) 하물며 나와 그대는

漁樵於江渚之上(어초어강저지상) 강가 위에 어부와 나무꾼이니

侶魚蝦而友麋鹿(여어하이우미록)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사슴들과 벗함이라

駕一葉之扁舟(가일엽지편주일엽편주에 몸을 담아 

擧匏尊以相屬(거포존이상속바가지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네.

寄蜉蝣於天地(기부유어천지) 하루살이마냥 천지에 의탁하고 있으니,

渺滄海之一粟(묘창해지일속) 그 아주 작음이 푸른 바다 속 한 톨 좁쌀이라,

哀吾生之須臾(애오생지수유) 실로 우리 삶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羡長江之無窮(이장강지무궁) 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네.

 

이때부터 어부와 나무꾼이 속세를 벗어나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은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이전 도연명(陶淵明/365?-427?)도화원기(桃花源記)를 시로 읊은

왕유(王維/ 701-761)도원행(桃源行)에 어초(漁樵)가 있다.

 

漁舟逐水愛山春(어주축수애산춘) 고깃배로 물 따라 산의 봄을 즐기는데
兩岸桃花夾去津(양안도화협거진) 두 언덕 복사꽃이 지나는 나루터로 온다.

坐看紅樹不知遠(좌간홍수부지원) 붉은 나무를 앉아 보니 멀리 온 줄도 모르고

行盡靑溪不見人(항진청계불견인) 푸른 시내까지 걸어가도 사람을 볼 수 없네


山口潛行始隈隩(산구잠행시외오) 산 어귀로 숨어가니 처음엔 굽이져 흐릿한데
山開曠望旋平陸(산개광망선평륙) 산이 열려 전망이 트이니 평지가 돌아온다.
遙看一處攢雲樹(요간일처찬운수) 멀리 한 곳을 보니 구름과 산이 모여 있어
近入千家散花竹(근입천가산화죽) 가까이 들어가니 집집이 꽃과 대나무가 흩어져있다.
樵客初傳漢姓名(초객초전한성명) 나무꾼이 처음에는 한나라 이름을 알리는데
居人未改秦衣服(거인미개진의복) 사는 사람들 아직 진나라 의복을 바꾸지 않았다.


居人共住武陵源(거인공주무릉원) 주민들은 무릉의 도화원에 함께 살며
還從物外起田園(환종물외기전원) 세상 물정 바깥으로 돌아와 전원을 일궜다.
月明松下房櫳靜(월명송하방롱정) 달은 밝아 소나무 아래 방과 난간은 조용한데
日出雲中雞犬喧(일출운중계견훤) 해가 뜨니 구름 속에서 닭과 개가 짖어댄다.


驚聞俗客爭來集(경문속객쟁래집) 속세 손님 듣고 놀라 다투어 와서 모여
競引還家問都邑(경인환가문도읍) 서로 집으로 끌고 들어가 도읍 소식 묻는다.
平明閭巷掃花開(평명여항소화개) 날이 밝자 거리마다 꽃을 쓸며 열고
薄暮漁樵乘水入(박모어초승수입) 해질 녘 어부와 나무꾼은 물 타고 들어온다.


初因避地去人間(초인피지거인간) 처음에는 처지를 피해 인간세상을 버렸는데
更聞成仙遂不還(경문성선수불환) 되 들으니 신선이 되어 돌아가지 않겠단다.

峽裏誰知有人事(협리수지유인사) 골짜기 안에 사람의 일이 있을 줄 뉘 알랴
世中遙望空雲山(세중요망공운산) 세상 속 멀리 부질없는 구름 산이 보인다.

不疑靈境難聞見(부의영경난문견) 신령한 지경은 듣고 보기 어려움을 의심치 않고
塵心未盡思鄕縣(진심미진사향현) 티끌 같은 마음 미진해 고향 마을 그리워한다.
出洞無論隔山水(출동무론격산수) 동네를 나가도 가려진 산수를 논하지 않고
辭家終擬長游衍(사가종의장유연) 집에 청하여 견주길 끝내고 흐드러지게 놀겠다.

自謂經過舊不迷(자위경과구불미) 스스로 지나온 옛 길은 잃지 않는다 말했지만
安知峯壑今來變(안지봉학금래변) 어찌 봉우리와 골이 지금 변한 것을 알았으랴.
當時只記入山深(당시지기입산심) 당시에 단지 산 깊이 들어간 것만 기억하니
靑溪幾度到雲林(청계기도도운림) 푸른 시내가 몇 번째에 구름 낀 숲에 이른지.
春來徧是桃花水(춘래편시도화수) 봄이 오니 온통 복사꽃 흐르는 물이라
不辨仙源何處尋(불변선원하처심) 선경을 어디서 찾을지 분별을 못하겠다.


이인상은 왕유가 적었던 어초에서 시작하여 송대 소동파와 소강절에 의해 굳어진

어초문답의 의미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고

자연에 살며 유유자적한 삶을 산 한유의 글로 안빈낙도의 뜻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