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최북의 송정야흥도 - 원령필과 박문조관

허접떼기 2019. 2. 9. 04:41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이 <송정야흥도>로 명명하여 소장하고 있다.

이 그림에 쓴 글은 이렇다.

 

起來共倚松梧影(기래공의송오영일어나 소나무와 오동나무 그림자에 공손히 기대니

夜半月明潮未平(야반월명조미평한밤중 달은 밝고 조수는 아직 고르지 않구나.

毫生館

 

起來(기래): 일어나다, 일어서다

夜半(야반): 한밤중,

 

호생관 칠칠 최북(1712-1786)께서

같은 시기에 살았던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1710-1760)의 전서체(篆書體) 필첩을 보셨나보다.

이인상이 전서(篆書)로 쓴 서첩,

보물1679호로 지정된, 이른바 이인상전서원령필(李麟祥篆書元靈筆)내에 똑같은 내용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舟泊谿頭夢不成(주박계두몽불성)  배는 시내 어귀에 대었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忽聞雲裡數鐘聲(홀문운리삭종성)  별안간 구름 속에서 여러 번 종소리 들리네.

起來共倚松梧影(기래공의송오영일어나 소나무와 오동나무 그림자에 공손히 기대니

夜半月明潮未平(야반월명조미평한밤중 달은 밝고 물살은 고르지 않더라.

 

谿頭(계두) : 溪頭 시내 어귀

() : 갑자기, 문득

() : 자주, 여러 번, 접근하다  

 

사실 이 시의 원본이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명대 시인 문조지(文肇祉, 1519~1587)가 지은 시 박문조관(泊問潮館)이다.

 

찾아 본 원본의 내용은 이렇다.

   

欽定四庫全書(흠정사고전서) 文氏五家集(문씨오가집) 14

文肇祉(문조지) 撰錄(찬록) 문조지가 써서 기록하다.

泊問潮館(박문조관) 문조관에 정박하여

舟泊溪頭夢不成(주박계두몽불성) 배는 시내 어귀에 대었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忽聞雲裏度鐘聲(홀문운리탁종성) 별안간 구름 속, 종으로 헤아리는 소리 들려

起來自倚篷窻看(기래자의봉창간) 일어나 저절로 봉창에 기대 바라보니

夜半月明潮未平(야반월명조미평) 한밤중 달은 밝고 물살은 고르지 않더라.

 

度鐘聲(탁종성) :  度은 헤아리다, 종으로 생각되는 소리

篷窻(봉창) : 篷窓, 배의 창문

 

이 시의 내용에서 谿, , 度을 으로, 自倚篷窻看共倚松梧影으로 바꾸어

능호관이 전서로 썼고 칠칠께서 그림에 쓴 것이다.

 

문씨오가집은 명대(明代) 3대에 걸친 문씨 집안 5인의 시를 적은 책이다.

문홍(文洪/?~?)은 자가 공대(功大) 이고 호는 희소(希素)

그의 아들이 문징명(文徵明/1470-1559)이다

문징명은 심주(沈周)에게 그림을 배웠고

심주와 더불어 오파(吳派)의 선구가 되며 남종화 중흥을 일으켰다.

문징명의 장자가 삼교(三橋) 문팽(文彭/1498-1573)이며 차자가 문수(文水) 문가(文嘉/1501-1583).

그리고 문팽의 아들이 응봉(應鳳) 문조지(文肇祉/1519-1587).

문징명부터 문조지까지

모두 시서화에 능한 오파(중국 소주(蘇州) 지역을 오()라 불러 유래했다)의 일가를 이룬다.


이른바 소나무 정자에서 한 밤의 흥을 그렸다는 <송정야흥도(松亭夜興圖)

그 그림의 畵題가 이인상이 중국과 조선의 유명한 시문을 전서로 쓴 서첩의 한 부분 글과 같아,

그 글의 원작자인 문조지의 글을 찾아보았던 것이다.

교연의 사심(四深)에서

'인용되는 글을 나름 바꾸어 쓰는 것이 또다른 해석의 지평을 여는 것'이라 한 기억이 난다.


최북이 이인상의 그림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치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골수 노론 남공철(南公轍/1760-1840)이 서화발미(書畵跋尾)에 이르길

하루에 술 대여섯 되는 마셨고,

평양,부산은 물론 만주와 일본까지 다니며 그림을 팔았다는 최북,

이규상(李圭象/1727-1799)이 ≪일몽고(一夢稿)<화주록(畵廚錄)>에 적기를

모든 이들이 망독(妄毒)으로 보았다는 최북,

한 성질하며 일생을 풍미한 최북이 그림으로 연명하여 호생관이라 자칭한 시절의 이 그림이

서출이나 명문 출신이던 이인상보다는 사람내가 좀 더 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