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樽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碁聲流水古松舘道人李文郁證 檀園畵
오주석이 간송미술관에서 연구위원을 지내며 단원의 그림과 화제에 대해 일가를 갖추었고
그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위 글을 이렇게 해석했다.
어여쁜 여인이 꽃아래에서 천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 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깁을 짜고 있구나.
바둑 두는 소리, 흐르는 물, 늙은 솔 그늘진 집의 도인
이문욱이 증명함. 단원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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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해석한 글은 아래와 같다.
(꽃 아래 佳人은 천 가지 황(簧 : 악기의 일종)의 혓소리 내고),
(시인의 술독 앞에는 두 알의 귤 보기도 좋네.)
(언덕 위 버들가지 새를 어지러히)
(오가는 저 꾀꼬리, 안개와 비를 엮어 봄강을 짜는 구나.)
碁聲流水古松舘道人李文郁證(기성유수고성관도인 이인문이 감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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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문화도록’ 해설은 이렇다.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
시인의 술동이 앞에 황금 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어지러운 금북(북은 베 짜는 도구)이 버드나무 언덕 누비니,
아지랑이 비 섞어 봄 강을 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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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한국 미의 재발견’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이 꽃 그늘 아래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
시 읊는 선비가 술항아리 위에 황금 귤 한쌍을 올려놓은 듯
찬란한 베틀북이 어지러이 버들가지 언덕을 오가며
아지랑이 비 섞어 봄강에 고운 깁을 짜놓은 듯.
우선 그림을 본다.
그림의 해석은 오주석의 멋진 해석이 와닿았다.
버드나무 가지의 선과 길의 구도가 같은 방향이며
畵題의 글씨까지도 진하고 옅음을 달리해 같은 방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오른 쪽 열에서 좌로 底 歷 織이 좀 굵고 진하게 그림과 같은 방향성을 가진다.
그리고 말잡이 종(驅從)을 데리고 나선 주인공도 단원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화제의 뜻을 헤아리기에 도움이 되는 꾀꼬리를 보면 두 마리가 화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저 글이 무엇일까?
간송미술관 그림을 보는 것은 어렵다. 일년에 한 두 번 외부인에게 열람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연히 도록을 보다가 꽂힌 그림, 마상청앵<馬上聽鶯>
제목도 어렵다. 대개는 소장자가 이름을 붙이는 것이니 간송미술관에서 이름을 붙였을 텐데,
나로서 글을 읽기란 힘들다. 물론 한자를 생활화 하는 시절이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위안하고
제대로 읽기 위해 여러 자료를 뒤져서 저 글의 해서체를 찾았다.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樽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碁聲流水古松舘道人李文郁證 檀園畵
일단 해석을 위해 글자의 수를 세어본다. 28자다. 그러면 7언절구이며 4행시다.
각 행의 마지막 글자를 운(韻)이라 한다. 설, 쌍, 애, 강이다.
대개 세 번째가 주제행이라고 하며 음운도 달리하며 해석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 행과 두 번째 행은 댓구를 이룬다.
가인과 운사가 주어가 되며 여자와 남자이고, 화저와 준전이 처소격으로 댓구이며
황과 감이 대치되는 상징물이고, 천설과 일쌍이 숫자를 얽혀 그림을 보여준다.
佳人은 아름다운 여자이고 韻士는 운치있는 남자를 말하고,
花는 꽃이니 여자와 어울리고 樽은 술동이이니 운사와 어울린다.
篁은 대나무를 변으로 둔 글씨이니 유추가 될는지 모르나 죽통으로 만든 생황이다.
柑은 귤이다.
千舌은 천음과 비슷하고 직역으로 천개의 혀이니 불어대며 화음을 낸다는 생황에 닿은 입술이고
무언가 오선지에 그려지는 악보가 그려진다.
그러니 대략의 뜻을 알 수 있다. 가인/ 꽃 아래/ 생황, 천설 – 운사/ 술동이 앞/ 귤 한쌍
세 번째 행은,
歷亂은 명사로는 꽃 등이 어지러운 모양이며 형용사로는 '어지러운'이며 부사는 '어지러이' 이다.
金梭는 금빛의 북이다. 읽기로는 금사이며 梭는 베틀의 날줄을 오가는 북이다.
楊柳는 버드나무이다.
崖는 주로 물기슭을 뜻한다. 작은 언덕 물가 위를 뜻한다.
그러니 어지러운 금빛 북, 버드나무 언덕이다.
왜 금사, 금빛 북이라고 했을까? 자문해봤다. 궁궐에서도 베틀 북을 금으로 도금하지는 않을텐데...
네 번째 행,
惹는 동사로 이끌다 당기다로 쓰면 야로 읽고, 가볍다 경쾌하다 일 때는 약으로 읽는다.
烟은 연기, 안개이며 雨는 비다. 그 사이에 있는 和는 주로 AND이다. 즉 '그리고' 이며 與와 같다.
織은 베틀 옷감등으로 짜는 직이며, 명사로는 휘장..옷감의 뜻으로 치라고 읽는다.
旗幟(기치)를 올리다에 쓰이는 경우이다.
春江은 봄 강이다.
그러니 惹를 '당기다'로 쓰면 안개와 비를 당겨 춘강을 짜낸다. 이고
약으로 읽으면 '부드러운 안개와 비가 춘강을 짠다'가 된다.
위 여러 해석을 미리 본 것처럼 어떤 상황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계절은 봄이다(春江) 그리고 조용히 안개처럼 비가 내린다.
생황의 음악처럼 가볍고 역난처럼 바람에 일렁거리듯 분주하고 어지러운 모양새이며
귤 한쌍은 꾀꼬리 두 마리를 뜻한다.
그리고 베틀북이 금빛의 색을 가진 것은 귤임과 동시에 꾀꼬리다.
그리고 다시 보면
이 시에서 쓰인 주 동사는 짤 織만 있을 것으로 나는 본다.
큰 틀에서 보면 惹는 주로 동사로 쓰는 경우가 많으니
안개와 비(烟和雨)가 수직으로 오가는 날줄로 보고 당긴다고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안개와 비의 형태를 나타나는 형용사적인 뜻으로 쓰여도 무난하다.
왜? " 이러저러 하듯하며 나열하고 봄 강을 만들었구나" 한 의역을 이해할 수 있다.
詩이다 보니 명사를 나열하여 댓귀를 맞추고 그림을 그린 것을 설명하는구나 한다.
일반 문어체에서는 주어와 술어 목적어 순으로 나열되어 있어 이해가 쉽지만
역시 화제가 7언 절구로 된 시이다 보니
맥락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저마다 달라도 굳이 틀리다 할 이유는 없었다.
가인이 꽃 아래 여러소리로 생황을 불고, 운사의 술동이 앞에 놓인 귤 한쌍처럼,
금빛 북이 어지러이 버드나무 언덕을 오가고 옅은 안개와 비를 이어 봄 강을 짜는도다~ 라고 해석함이 적절했다.
첨가하여
오주석이 이인문을 모르지 않을텐데 그의 호를 바둑 소리..흐르는 물...이라며 설명한 것은 하릴없다싶다.
이인문은 단원과 동갑으로 1745년 을축년 소띠이며 정조가 단원과 더불어 아끼던 도화서 화원이다.
그의 자(字)가 문욱이다. 證이라 쓴 것은 증명하듯 그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인문은 길이 8M가 넘는 대작 <강산무진도>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강산무진도의 일부이다.
아울러 <馬上聽鶯>이 단원이 그리고 문욱이 화제를 썼다면 거꾸로 이인문이 그리고 김홍도가 화제를 쓴 그림도 있다.
그것이 바로 송하한담도<松下閑談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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