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문의 송하한담도(松下閑談圖)이다.
이 그림에 김홍도가 쓴 화제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時方震午 시방진오
彈李元談歌 탄이원담가
이때 방진오가 거문고를 타고 이원담이 노래를 했다.
中歲頗好道 晚家南山陲 중세파호도 만가남산수
行到水窮處 坐看雲時 행도수궁처 좌간운 시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흥래매독왕 승사공자지
偶然值林叟 談笑無還期 우연치임수 담소무환기
起 기
중년에 자못 도를 좋아해 늦게나마 종남산 기슭에 집을 마련했다.
걷다가 물길 다하는 곳에 이르면, 앉아 구름? 때를 보고
흥이 일면 홀로 길을 걷고 좋은 일은 그저 나만 알 뿐.
어쩌다 숲속 늙은이를 만나면 돌아갈 기약 없이 담소를 나누지. 기(起)?
乙丑元月道人與丹邱 書畫于瑞墨齋中 贈六逸堂主人
을축원월도인여단구 서화우서묵재중 증육일당주인
을축년(1805) 정월 도인(이인문)과 단구(김홍도)가 서묵재안에서 쓰고 그려
육일당 주인에게 드린다.
단원(檀園)의 또 다른 호가 단구(丹邱)다.
서묵재(瑞墨齋)는 김홍도,이인문과 함께 동갑이라는 화원 박유성의 호다.
육일당주인은 누구인지 모른다.
그가 화제에 쓴 시는 당나라 시인 왕유의 종남별업(終南別業)이라는 시다.
시 원문은 다음과 같다.
中歲頗好道 晚家南山陲 중세파호도 만가남산수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흥래매독왕 승사공자지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
偶然值林叟 談笑無還期 우연치임수 담소무환기
중년에 자못 도를 좋아해 늦게나마 종남산 기슭에 집을 마련했네.
흥이 일면 홀로 길을 걷고 좋은 일은 그저 나만 알 뿐.
걷다가 물길 다하는 곳에 이르면 앉아 구름 이는 때를 보고
어쩌다 숲속 늙은이와 만나면 돌아갈 기약 없이 담소를 하지.
왕유는 측천무후와 양귀비로 대신하는 당 현종대 인물로 안사의 난에 안록산에 붙잡혀 낙양으로 끌려갔다.
안록산의 벼슬을 거부하고 남전(藍田)의 종남산(終南山) 기슭의 망천장(輞川莊)에서 지냈었다.
시선(詩仙)이라는 이백, 시성(詩聖)이라는 두보와 함께 唐의 3대 시인 중의 하나다.
불교의 영향이 많아 시불(詩佛)로 불린다. 아울러 그림도 잘 그려 남종화의 시조로 여겨지는데
송 소식이 왕유를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평한 것은 유명하다.
그의 이름 유(維)와 자(字)인 마힐(摩詰)이 바로 <유마경(維摩經>의 유마힐(維摩詰)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고로 유마힐은 부처와 동시대 사람으로 거사 또는 재가 신자로 불리며 정명(淨名)으로도 번역되는데
지혜 제일 이라는 사리불, 불경 존유의 제일이라는 가섭조차도 꺼린 존재였다.
문수보살이 부처의 명으로 문병을 갔는데
대승의 교리인 불이(不二)를 유마힐을 통해 깨우쳤다는 내용이 바로 유마경이다.
왕유가 부인을 잃고 어머니를 모시려
종남산에 망천장이란 별업 즉 별장을 구입하여 살며 지었던 여러 시 중 하나가 종남별업(終南別業)이다.
오언 율시 이 시에서 주제 구는 역시 세 번째 구이다,
“다니다 물이 다한 곳에 다다르면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때를 본다”는
이 구절은 지금까지도 인용되고 회자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리고 왕유의 이 시를 단원이 무던히 좋아한 모양이다.
이 시를 썼다는 을축년(1805)이 바로 회갑이 되는 해이고 시 말미에 씌여 있는 세 명 모두 을축년생들이다.
단원이 1806년에 죽었다는 설도 있고보면 죽기 얼마 전에 이 그림의 시제를 써준 것이다.
나이 40이 되어 안기찰방으로 나가고 몇 년 뒤 도화서에 돌아왔다 다시 50 중반에 연풍현감을 마치고
다시 도화서에 들어온 단원이 1800년 그의 성군인 정조가 사망하자
술을 마시며 좋은 풍경에 그림을 그리고 자적하였다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왕유의 싯구를 뒤바꾸고 끝내는
글자 한자를 빼먹고, 빼먹은 글자를 시 마지막에 살며시 적어놓았구나 한다.
雲과 時사이에 빠진 起를 작게 적어 시 종결어인 期 아래 적어놨다.
'옛 그림 속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윤복의 '미인도 해제'에 대한 또다른 풀이 (0) | 2018.04.05 |
---|---|
이인문이 그린 황초평 (0) | 2018.03.25 |
坐茂樹以終日(좌무수이종일) (0) | 2018.02.15 |
김홍도 愼言人圖 에 쓴 표암의 畵題 (0) | 2018.02.13 |
마상청앵도 畵題 (0) | 2018.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