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신윤복의 '미인도 해제'에 대한 또다른 풀이

허접떼기 2018. 4. 5. 18:39

혜원 신윤복이 그린 이른바 <미인도>



보물 제1973호로 지정되었다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의 발제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달리 해석하여 나름의 정리를 하고자 했다


 

이원복은 <한국 미의 재발견-회화>에서 화제를 이리 쓰고 해석했다.

가슴에 그득 서린 일만 가지 봄기운을 담아 盤礴胸中萬化春
붓끝으로 능히 인물의 참모습을 나타내었다 筆端能與物傳神

 

송희경은 한국 미술 산책라는 캐스트 내에 아래처럼 썼다.

그린 사람의 가슴에 춘정이 서려 있어

붓끝으로 실물 따라 참 모습을 옮겨 놓을 수 있었다.

 (盤礴胸中萬花春 筆端能與物傳神)

 

간송미술관 도록과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해의반박을 인용하여 해석했다.


유명세인 인문학자 최진기는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에서

"이 조그만 가슴에 서리고 서려있는 여인의 봄볕 같은 정을

붓끝으로 이렇게 그 마음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았느뇨?"라며 강연을 했다.

신윤복의 자화자찬을 말한 것이다.


<장자(莊子)>외편(外篇) 21번째 글 전자방편(田子方偏) 7번째 내용은 이렇다.

 

宋元君將畵圖(송원군장화도) : 송나라 원군이 그림을 그리려 하니,

衆史皆至(중사개지) : 여러 화사 모두 이르러

受揖而立(수읍이립) : 읍례를 주고받고 똑바로 섰다.

舐筆和墨(지필화묵) : 붓을 핥고 먹물을 만드는데,

在外者半(재외자반) : 밖에 있는 자가 반이었다.

有一史後至者(유일사후지자) : 늦게 이른 한 화사가 있는데

儃儃然不趨(천천연불추) : 머뭇머뭇 거리며 뛰지도 않고,

受揖不立因之舍(수읍불립인지사) : 읍례 하고는 서지 않고 집으로 갔다.

公使人視之(공사인시지) : 공이 사람을 시켜 그를 보게 하니

解衣般礴(즉해의반박라) : 옷을 벗고 두 발을 쭉 뻗고 앉아 벌거숭이가 되어 있다 하더라.

君曰可矣(군왈가의) : 군이 말했다. 옳구나

是眞畵者也(시진화자야) : 그가 진짜 화가다.

위 사진은 윤희수 님의 홈카페에서 허락받지 않고 얻어왔다. 다리를 쭉 뻗고 앉지는 않았다.

  

해의반박(衣般礴)은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구속되지 않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를 이른다.

 

반박(般礡)과 반박(盤礴)은 비슷하나 뜻이 다르다.

般礡은 기좌(箕坐)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다리를 쭉 뻗고 앉은 모양이고

盤礴은 반슬(盤膝)과 같다. 책상다리로 앉은 모양이다.

해의반박은 옷을 풀어 헤치고 다리를 쭉 뻗어 당당하고 버릇이 없어 보이는 모양새를 말한다.

 

은 그릇 명()이 의미하듯 쟁반이며 나무 목()을 부수로 하는 과 같은 글자다.

      ‘서리다라는 뜻도 있다.

은 널리 덮이다 이고. 가득하다는 뜻이다.

은 엷다는 뜻의 박이다.





중국의 <백도백과(百度百科)>에서

盤礴을 다리를 쭉 뻗고 앉음 箕踞而坐, 오만한 시선으로 인용됨 引申爲傲視,

또한 盤薄으로 쓰임 亦作'盤薄'이라 하며 인용하는 사용되는 예문을 나열하며 

장자의 전자방에 내용을 적고 恣意作畵(자의작화)라 썼다.

자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다.

일단 화제의 글씨는 무엇인가? 본다


 초서로 쓴 발제문은

 盤薄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이다.

 반박흉중만화춘 필단능여물전신


 초서사전을 찾아 글자를 확인했다.

 분명 盤薄(반박)이었다.

 돌 石자가 뚜렷하지도 않다. 그리고 萬化春임에 분명하다.


 이원복은 글자 하나 하나를 풀어 반을 서리다로,

 박은 가득하다로 하여, 반박흉중을

 '가슴에 그득 서린'으로 풀었다.


 송희경은 반박을 해의반박으로 풀어

 그린 사람으로 하고 글자는 盤礴으로 하였다.


 두번째 글씨가 薄이던 礴이던 사실 같은 의미일 수도 있다고 본다.

 盤礴이든 盤薄이든 반박은 胸中을 형용하는 반박일 것이다.

 그리고 그림의 모습이 책상다리하는 모양도 쭉 뻗고 앉은 모습도 아니다.

 어딘가에 앉아 있는 모습일 수도 있으나 

 약간 자세를 비틀고 서있는 모양이라 본다


























위창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에 혜원의 직책이 첨사였다고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이기환님은 경향신문에 혜원이 기부(妓夫)였을 것으로 보며

미인도의 모델이 기생이었을 것이라 했다. 상당히 수긍할 만하다.


이전부터 신윤복의 모델이 된 이 기생여인이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왔고

이기환님도

'배를 내밀듯한 치마와 작은 키 등을 감안하면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썼다.


여인의 얼굴이 전신의 1/5 정도다.


아무리 240여 년 전의 한국인 체형이라도, 겉 보다 마음을 그렸다해도 ,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해도 앉은 모습은 아니다.


여인의 손길을 두고도 갖가지 해석이 나온다. 붉은 삼작노리개와 옷고름을 매만지고 있다.

저고리 고름의 나비 매듭을 푼 뒤 마지막 매듭을 풀어내리는 모습이다.

아니다 노리개를 옷고름에 매어 늘어뜨리기 위한 동작이다...등등 어찌 알겠는가?


盤薄이라면 글자로 얇은 쟁반이다.

그러나 달리 보았듯이 盤礡으로 썼을지도 모르며, 흉중..마음 속을 꾸미는 단어는 아닐까?


나는 해의반박의 의미보다는

어딘가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은 아닐까도 여겨

걸터앉은 마음 속의 만화춘이라 생각했다.

반박이 해의반박이라면, 흉중반박이라 썼을 것이다.


가슴 속의 만 가지 변화하는 봄 (胸中萬化春)을 형용하는 반박의 뜻!

나는 중국의 사전에서 보이는 傲視라고 본다.


1. 깔보다

2. 오만스럽게 대하다.

3. 경시하다.


그래서 나는 여러 의미를 접고

'도도한 마음 속 일렁이는 봄'이라 본다.



전신(傳神)이란 중국 동진의 之(고개지),(346~407)가 주창하였다는 정신을 전한다라는 용어다.

그림을 그릴 때는 대상의 정신()을 전()해야 한다고 했다.

 

고개지는 대상을 임의로 그릴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골법(骨法)을 파악해서 화폭에 재현해야 하며,

얼마나 대상의 골법을 꿰뚫어볼 수 있느냐가 화가의 기량을 크게 좌우한다고 여겼다.

 

한마디로 그림의 대상인 모델의 외면은 물론 내면,

즉 그 모델의 요동치는 흉중을 그 정신까지 붓끝으로 전했다는 자화자찬의 시다.


나는 이런저런 뜻을 새겨보며

반박을 '건방진'이나 '깔보는' 그런 '도도함'이란 눈길로 해석한다.


'도도한 눈길 마음 속 일렁이는 봄 / 붓끝으로 능히 모습과 마음을 더불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