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한 땅에 자기가 원하였던 방향대로 사는 사람보다
그저 산다고 할 만큼 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기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 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퍽이나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현실의 한국은 실로 무서울 만큼 우울함과 절망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내가 지금 몸서리치게 싫은 벽에 대항하여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항거할 수 있을까?
이른바 처세로 불리는 전술과 전략을 동원해가며 타인과 대화를 해야만 할까?
나는 그 단어에서조차 풍기는 냄새가 싫어 이내 도리질치고 만다.
산다는 거 뭐 있느냐는 말이 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도 유한한 인생이 공통분모임에는 틀림없다.
유한인생에 목적을 논하기는 얇기 만한 내가 보기에도
거짓과 위선과 강요가 판을 치는 이 땅에 나는 무언가에 잣대를 가지고 싶었다.
나는 내 다음의 세대가 아주 조금일지라도 올바른 방향으로의 전진을 강력히 기대한다.
바로 내 자식의 문제다.
무엇이든 자식이 원한다면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다면 보편적 가치 안에서 인식되는 자식의 희망에 일조하고 싶다.
나보다 더 암울한 환경에서 치우친 조건과 맞서야하는 어린 중3 여학생의 현재가 난 참으로 안타깝다.
강요가 아닌 그저 희망에 그치는 수준에서 한국의 커다란 잘못인 현실 학교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이다.
무상급식 파문의 후폭풍이자, 향후 총선과 대선을 향한 정책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를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은 '세금폭탄론'으로 맞불을 놨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도 그 아버지가 좋아햇던 '한국형' 복지 행보를 시작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맞춤형 복지'를 주장하며 논쟁에 가세했다.
나는 복지국가 스웨덴에 대한 동경과 유혹에서 미래의 기회비용을 산출해보고 싶었다.
그저가 아닌 적극적인 탐색으로 스웨덴을 찾던 중
오마이뉴스의 복지논쟁시리즈 중에 실린 어느 기사에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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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스웨덴>의 저자 신필균 사회투자재단 이사장
1973년 9월의 어느 날 저녁 6시,
스웨덴 스톡홀름 보건사회부 청사 입구.
그곳에 2주 전 조국을 떠나온
앳된 모습의 동양인 유학생이 섰다.
그녀는 독재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무작정 전화를 해
장관과의 면담 약속을 잡은 터였다.
장관 비서는 친절하게 그녀를 장관 집무실로 안내했다.
문이 열리자,
스벤 아스플링(Sven Aspling) 장관이
환한 미소로 "웰컴(Welcome)"이라며
그녀를 맞았다.
비서에게 퇴근을 하라고 한
아스플링 장관은
그녀에게 직접 물을 떠다주며
조카를 대하듯
"집은 괜찮으냐?",
"학교 등록은 했느냐?"고
친근한 질문을 던졌다.
스물여섯의 젊은 유학생은
이러한 스웨덴의 모습에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신필균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장은 38년 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사람사는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다,
외국인에게도 자유·평등·사회정의 등의 가치를 제공하는 스웨덴에서의 생활은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최근 출간한 <복지국가 스웨덴 - 국민의 집으로 가는 길>(후마니타스 펴냄)이
아스플링 장관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그 이유다.
신 이사장은 한국이 민주화된 이후인 1995년 귀국할 때까지
23년간 스톡홀름대 대학원생·사회보험청 연구원·스톡홀름 란드스팅(광역시) 공무원 생활을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재임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의 초석을 놓았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신 이사장이 직접 보고 느끼고 연구하고 집행했던 스웨덴 복지모델의 실제 작동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준다.
그는 "스웨덴의 복지국가 건설은
국가를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훌륭한 '국민의 집'으로 만들기 위한
연대 정신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웨덴 전 인구의 1/4이 신대륙으로 이민을 갈 정도로 암울했던 19세기 후반부터
스웨덴에서는 연대 정신 위에서 보편 복지가 시작됐고,
이후 사회정의·평등·자유가 이뤄져 사회민주주의가 심화됐다"며
"이러한 보편 복지를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 이사장 자택에서 이뤄졌다.
"아이 태어나면 무료 백신 접종 계획부터 보내온다"
▲ 지난해 4월 스웨덴 헬싱보리의 한 병원에서 한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스웨덴은 모든 국민에게 싼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로 유명하다.
ⓒ Susanne Kronholm/Johner
개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두렵고 외롭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스웨덴 유학 생활을 어떻게 견뎠을까.
민주화운동 탓에 귀국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신 이사장은 "스웨덴의 법적인 체류자가 되면 스웨덴에서 제공하는 모든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생긴다,
스웨덴 사회는 동양인 유학생을 포근히 품었다"며 말을 이었다.
"학교를 무료로 다녔다.
학생 기숙사 임대료가 있지만,
학업보조비를 받았기 때문에 부담이 안 됐다.
무상의료 덕에 질 높은 건강관리를 받았다.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데,
자동차 무료 개조 혜택도 받았다.
1983년 임신을 했는데, 임신·출산 비용은 모두 무료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동네 보건소에서 무료 백신 접종 계획부터 짜서 보내온다."
국회가 2011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영유아 필수예방접종비 380억 원을 삭감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한국사회 구성원에게
스웨덴 복지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으로 다가올 터였다.
다시 그의 말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아이의 신체·심리적 발달을 체크했다.
12개월의 출산휴가(현재는 480일)가 주어졌고, 그중 9개월 동안 월급의 80%가 지급됐다.
밤늦게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 보육료는 내 소득에 따라 적은 돈만 내면 됐다.
무엇보다 아이가 16세가 될 때까지 아동수당을 받는다. 학교에서는 급식, 준비물 등 모든 비용이 무료다."
신 이사장은 "아동 정책의 표어는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것이었다,
사회가 어떤 아이든 우월함 혹은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끔 아이를 함께 키우자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스웨덴이 복지병에 허우적댄다는 보수 진영의 주장이 떠올랐다.
실제 스웨덴에서는 보수당이 2006년 집권했고 지난해 총선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 보수당의 집권을 두고 스웨덴 복지 모델의 퇴조를 언급하는 이들이 있다.
"1991~1995년 스톡홀름에서 국민건강과 의료제도를 담당하는 기구의 공무원을 지냈다.
경제위기가 온 당시에는 중앙·지방정부 모두 보수당이 집권해 의료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일부 민영병원이 도입됐다.
하지만 이는 일부 경쟁을 도입하고 효율을 높여, 싼 비용으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스웨덴의 의료정책을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보수당 의원들도 스웨덴 복지 모델의 근본을 절대 흔들지 않는다."
- 복지 전달 과정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1992년 공무원 교육을 받을 때 기억나는 문구는
'공무원의 가장 중요한 도덕은 국민의 세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이미 1940년대 구스타프 묄러(Gustav Moeller) 보건사회부 장관은
'세금을 한 푼이라도 낭비하는 것은 국민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웨덴의 행정은 미국 등 세계 주요 나라와 비교해도 효율적이고 행정비용이 낮다."
복지 국가의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어떨까.
그는 "사회가 아이를 키워주고 질 높은 삶을 보장하고 노후를 책임지고 국민을 자발적으로 서게 만들면
나태병이 근절된다"며
"1932년 사회민주노동당(사민당) 집권 후 스웨덴은 세계 일류국가가 됐다"고 했다.
스웨덴은 지난해 10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같은해 5월 삼성경제연구소는 선진화지수 1위 국가로 스웨덴을 꼽았다.
스웨덴 복지모델의 정신인 '국민의 집'... "훌륭한 집에선 누구도 소외 안돼"
인터뷰 내내 궁금증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건설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신 이사장은 1928년 1월 사민당 의장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 1932~1946년 총리 재임)의
국회 연설 일부를 소개했다. 보편 복지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이 연설의 제목은 '국민의 집(Folkhemmet)'.
"훌륭한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독식하는 사람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다른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이런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그러나 오늘의 스웨덴은 좋은 집이 못 된다.
계급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국가 경제는 소수 특권층에 좌우된다.
스웨덴 사회는 사회 구성원 간의 진정한 평등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좋은 '국민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사회적 돌봄 정책과 경제적 균등 정책이 요구된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4년 뒤인 1932년부터 사민당을 이후 44년간 내리 집권하게 만들고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지게 한 83년 전의 이 연설은 마치 현재의 한국 사회를 향한 것인 양 큰 울림을 전한다.
현재의 한국처럼 당시의 스웨덴에서도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 기득권층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스웨덴은 어땠나?
"1913년 노령 연금의 도입이 스웨덴 복지정책의 시초다.
19세기 말부터 보수 정치인들이 도입을 주장했다.
당시 농작물이 번성하기 어려운 기후 탓에 스웨덴 전 인구의 1/4이 미국 등으로 이주했다.
조선보다 더 가난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빈곤에 허덕였다.
당시 정치인들은 보편 복지만이 극심한 빈부격차를 줄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막대한 조세 부담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불만은 없었나?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09년 기준 한국의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조세 국민부담률은 25.6%인 반면,
스웨덴은 46.4%에 달한다.)
"정치가가 진정성을 갖고 국민 생활이 향상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그에 대한 신뢰를 얻을 때, 국민들은 그 정당에 표를 던진다.
사민당 정치가들은 시민들이 올바른 정책에 표를 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아는 게 힘'이라며 무상교육을 시행했다.
이어 국민건강제도를 비롯한 사회안정망을 확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우리가 번 돈을 나누자고 호소하자 시민들은 받아들였다.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다수의 경우, 내가 내는 세금만큼 큰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연대 의식이 발전했고
그 바탕위에서 사회·경제적 자유·평등·사회정의가 실현됐다.
이어 사회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스웨덴 복지국가 건설은 달팽이의 느리고 긴 여정... "한국도 복지국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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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과 학업준비물 등을 포함하는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학 등록금도 무료다. ⓒ Susanne Walstrom/Johner
신 이사장은 최근의 복지 논쟁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에 대해 "한국에서 주요 정당이 무상복지 정책을 내놓은 것은
사실상 처음으로,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이러한 발표가 선거를 앞둔 1회용이 될지,
국민을 설득해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발전시킬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내놓는 선별적 복지론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보편 복지를 두고 "망국적 포퓰리즘", "종양" 등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막말을 하며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보편 복지를 위한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정사회를 강조한다.
하지만 나는 2008년 12월 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정부의 압박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났다.
불공정한 이유로 사람을 억압하고 선별한 정부가 말하는 선별적 복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나.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아래를 내려다보듯 복지를 얘기하는 것이 조선 시대와 뭐가 다르나."
인터뷰는 어느새 2시간을 넘어섰다.
그만큼 그가 말하는 스웨덴 복지 모델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인 기자를 매혹시켰다.
그의 일정 탓에 인터뷰를 마무리해야할 시간,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 한국도 복지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스웨덴 복지국가의 건설은 흔히 '달팽이의 느리고 긴 여정'으로 비유된다.
한 번에 복지국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처럼 공동체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도
어려운 사회 구성원을 위해 가진 사람이 더 내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가능하다.
비전을 갖춘 정치가가 이끌고 시민이 참여하는 대중운동이 뒷받침되면 복지국가가 꿈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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