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菜根譚)/후집

315. 萬慮都損 一眞自得 만려도손 일진자득

허접떼기 2023. 12. 12. 17:35

문징명(文徵明,1470-1559)의《심취헌도深翠軒圖》복제품

斗室中萬慮都損 두실중만려도손

說甚飛雲珠簾捲설심화동비운주렴권우

 

三杯後一眞自得 삼배후일진자득

素琴橫月短笛吟風 수지소금횡월단적음풍

 

썩 작은 방 안에서도 온 시름이 모두 덜어지는데

단청한 마룻대는 구름을 날고 주렴은 비를 둘둘 마네

라는 말은 지나치네.

석 잔 후 하나의 진리가 절로 얻어지며

질박한 거문고 소리가 달빛을 가로지르고

짧은 피리 소리도 바람을 읊음을 누가 알리오!

 

斗室(두실) : 아주 작은 방

說甚(설심) : ()이 지나치다()

() : 마룻대,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珠簾(주렴) : 구슬 등으로 물건을 꿰 만든 발

() : 둘둘 말다

畵棟飛雲 珠簾捲雨

요절한 천재시인 왕발(王勃,647-674)

<등왕각시滕王閣詩>에 나오는 싯구에서 따왔다.

왕발의 시는 이렇다

滕王高閣臨江渚 등왕고각임강저

佩玉鳴鸞罷歌舞 패옥명란파가무

畵棟朝飛南浦雲 화동조비남포운

珠簾暮卷西山雨 주렴모권서산우

閑雲潭影日悠悠 한운담영일유유

物換星移幾度秋 물환성이기도추

閣中帝子今何在 각중제자금하재

檻外長江空自流 함외장강공자류

등왕각은 높게 강 모래톱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패옥의 방울소리 울리던 노래와 춤을 마치네.

단청한 마룻대는 아침에 남포의 구름 위를 날고,

주렴은 저녁에 서산의 비를 말아 오르네.

한가로이 구름 낀 연못에 해그림자 유유히 비치고

경물이 바뀌고 별이 옮긴 것이 몇 번의 가을이던가

누각에 있던 황손은 지금 어디에 있나?

난간 너머 장강은 헛되이 절로 흐르는구나!

 

늘상 느끼는 것이나

옛 한문으로 쓴 시를 대하면 음운과 성조의 고저에 따라

중국인이 읊는다면 노래 같은 맛이 있을텐데

한국인이 풀어 옮기니 느낌이 덜하다.

 

(,) : 누가(=)

素琴(소금) : 질박한 거문고, 도연명의 일화와 관련있다.

 《송서宋書<도잠전陶潛傳>에 적히길

潛不解音聲而畜素琴一張無弦 每有酒適輒撫弄以寄其意

잠불해음성이축소금일장무현 매유주적첩무롱이기기의

도잠은 음률은 모르나 줄 없는 질박한 거문고 하나 두고

매번 술을 마실 때면 늘 그 뜻을 빌리며 어루만졌다.

라 하였다. 여기서 無弦素琴(무현소금)이 유래하였다.

吟風(음풍) : 바람을 읊다 / 吟風弄月의 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