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소아(小雅)

7. 어조지집(魚藻之什) 7. 서묘(黍苗)

허접떼기 2022. 7. 31. 23:53

기장/meipian.com

芃芃黍苗 陰雨膏봉봉서묘 음우고지

悠悠南行 召伯勞유유남행 소백로지

 

我牛 아임아련 아거아우

我行旣 云歸哉 아행기집 합운귀재

 

아도아어 아사아려

我行旣集 蓋云歸處 아행기집 개운귀처

 

肅肅射功 召伯 숙숙사공 소백영지

烈烈征師 召伯成之 열렬정사 소백성지

 

原隰 泉流 원습기평 천류기청

召伯有成 王心則寧 소백유성 왕심즉녕

 

우거진 기장 싹이 오랜 비로 기름지네

멀고 먼 남행을 소백이 위로하셨다네

 

우린 짐에 손수레도 수레에 소도 끌었지

남행은 이미 이뤘고 어찌 가자 하지 않는가

 

걷거나 가마 몰며 큰 무리로 작은 무리로

남행이 끝났는데 돌아갈 곳 말하지 않는가

 

빈틈없는 사읍의 업적 소백이 다스렸네

당당한 남행의 군대를 소백이 성사시켰네

 

땅도 다스렸고 물줄기도 정리하셨네

소백이 완성하니 왕의 마음은 곧 편안하네

 

芃芃(봉봉) : 무성한 모양/장대한 모양

黍苗(서묘) : 기장의 싹

陰雨(음우) : 음산한 비, 궂은 비

본디 몹시 흐린 가운데 내리는 비로

장마를 뜻한다.

호우(好雨) 즉 단비로 해석하는 설도 있다

(고) : ‘기름지게 하다’를 뜻하는데

무언가에 적신다는(滋潤) 뜻이라고도 한다

悠悠(유유) : 멀고 멀다

召伯(소백) : 소(召)나라 목공(穆公) 호(虎)

<毛詩序>는 소공(召公) 석(奭)이라 한다.

소공 석은 주(周)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팥배나무아래 선정을 베풀었다는 인물로 <소남,감당>의 주인공이다. BC11세기 사람이다.

소공은 주 문왕부터 강왕(康王)까지 4대에 걸쳐 정사를 돌보았는데, 특히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주공(周公) 희단(姬旦)과 함께 훌륭히 보필하여 주 왕조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소공과 주공은 각각 주를 동서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주공은 낙읍(洛邑, 지금의 河南省洛陽)에 머물면서 동쪽 지역과 제후들을 관장하였고, 소공은 서쪽 지역을 다스렸다. 소공이 다스렸던 지역에서는 후백(侯伯)부터 서인(庶人)까지 모두 제 할 일을 얻어 실직자가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소 목공 호는 소백호(召伯虎)로도 쓴다. BC8세기 사람이다.

소공(召公) 석(奭)의 후예다. 소(召)에 봉해졌다.

주 여왕(周 厲王)이 폭정을 펴자 간언을 했지만 오히려 여왕은 위(衛)나라의 무당을 시켜 비방을 감시하도록 했다. 다시 간언을 올려도 듣지 않았다. 결국 여왕은 사람들에 의해 추방을 당해 체(彘)로 유배를 갔다. 태자 정(靖)이 그의 집에 피신해 있었는데, 자기의 아들로 대신 죽게 했다. 여왕이 죽자 정을 옹립하여 선왕(宣王)이 섰다. 이때 회이(淮夷)가 복종하지 않고 있어 선왕은 그에게 명령해 가서 평정하도록 했다. 선왕이 신백지(申伯地) 사(謝)를 더하고 그로 하여금 경영하도록 했다.

(로) : 위로하다.

(임) : 싣다, 지다

(련) : 사람이 끄는 손수레

(거) : 상례는 아니고 방언에서 車가 동사로 쓰이기도 한다.

馬瑞辰은 我車我牛를 수레의 멍에에 소를 맨 것이라 한다.

(집) : 끝내다,이루다(成) <毛傳>

(개,합) : 어찌...아니하냐!(합,盍과 같다)

(도) : 걷다, 걷는 사람

(어) : 가마를 몰다, 가마를 모는 사람

(사) : 오려(五旅)가 1師

(려) : 군사 500인을 1라 함

<春秋左傳>은 ‘임금(君)이 움직이면 1師(사)가 따르고 경(卿)이 움직이면 1려(旅)가 따른다’고 한다.(君行師從 卿行旅從)

肅肅(숙숙) : 엄정한 모양/빈틈없이

(사) : 고을 이름으로 위에 설명함

(공) : 남행의 공정(工程), 업적

(영) : 다스리다(治)

烈烈(열렬) : 위풍당당한 모양

征師(정사) : 정벌에 나선 군대

(성) : 성취하다/성사시키다

原隰(원습) : 고원과 습지, 땅을 말함

(평) : 평정하다/다스리다

泉流(천류) : 샘과 하천 즉 모든 물줄기

(청) : 맑게하다. 정리하다

<毛傳>은 땅을 다스리는 것을 平이라 하고

물을 다스리는 것을 淸이라 했다.

 

 

전국시대 순자(荀子)는 이 시를 인용하여

“어진 이가 윗자리에 있으면 백성이 그를 임금처럼 귀하게 여기고 부모마냥 친근히 여겨

그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하고 목숨을 바치고도 즐거워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바로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며 진실로 큰 것이고 진실로 많이 남기 때문이다.

시경에서 ‘우린 짐에 손수레도 수레에 소도 끌었지

남행은 이미 이뤘고 어찌 가자 하지 않는가’라 읊은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덕으로 하고 소인은 힘으로 하는데 힘은 덕의 사역이니라.”

(仁人在上 百姓貴之如帝 親之如父母

爲之出死斷亡而愉者 無它故焉

其所是焉誠美

其所是焉誠大 其所是焉誠多

詩曰 我任我輦 我車我牛

我行旣集 蓋云歸哉 此之謂也

故曰 君子以德 小人以力 力者德之役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