緇衣之宜兮 敝予又改爲兮 치의지의혜 폐여우개위혜
適子之館兮 還予授子之粲兮 적자지관혜 환여수자지찬혜
緇衣之好兮 敝予又改造兮 치의지호혜 폐여우개조혜
適子之館兮 還予授子之粲兮 적자지관혜 환여수자지찬혜
緇衣之蓆兮 敝予又改作兮 치의지석혜 폐여우개작혜
適子之館兮 還予授子之粲兮 적자지관혜 환여수자지찬혜
치의가 어울리네. 해지면 내가 또 고쳐 드리리
그대가 관청에 갔다 돌아오면 밥을 드리리
치의가 보기좋네. 해지면 내 또 만들어 드리리
그대가 관청에 갔다 돌아오면 밥을 드리리
치의가 넉넉하네. 해지면 내가 또 지어 드리리
그대가 관청에 갔다 돌아오면 밥을 드리리
緇衣(치의) : 검은 옷으로 경대부가 조정에 일을 볼 때 입는다
宜(의) : 옷이 몸에 알맞다.
敝(폐) : 해지다
適(적) : 가다(往)
館(관) : 관청, 관사, 관서
粲(찬) : 좋은 백미, 밥
蓆(석) : 크다, 넉넉하다
<毛詩序>와 <鄭箋> 모두 정나라 무공(武公)과 그의 부친 환공(桓公)이
주나라의 사도(司徒)를 맡아 일을 잘 처리하였음을 찬미한 시라 한다.
주나라 선왕(宣王,재위BC827-782)이
배다른 동생 우(友)를 함림(咸林)에 봉하였으니(BC806) 환공이다.
환공은 주나라 유왕(幽王,재위BC781-771)의 대사도(大司徒)를 지냈는데
견융(犬戎)의 침입에 함께 싸우다 죽었다.
환공의 아들 굴돌(掘突)이 뒤를 이으니 무공이다.
무공은 사도(司徒)로서 진(晉)의 문후와 더불어
주나라 평왕(平王,재위BC770-720)의 동천(東遷)을 도와
10읍을 하사받았고 도읍을 회(檜)로 옮겼다.
이후 전국시대 한(韓)나라에게 멸망하였다(BC375)
<鄭風> 21편은 모두 동주 이후의 시로 대표적인 음풍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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