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김홍도의 <선면서원아집도>와 화제

허접떼기 2020. 11. 1. 14:38

단원 김홍도의 <선면서원아집도(扇面西園雅集圖)>

송나라 초기 1086년 개봉에 있었다는 왕선 서원의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왕선은 송나라 영종의 사위로 부마도위다. 당년은 영종의 손자인 철종의 재위 후 해가 바뀌어 원우(元祐) 원년이 된다.

소식蘇軾1037-1101, 채조蔡肇?-1119, 이지의李之義1048-1117,

소철蘇轍1039-1112, 황정견黃庭堅1045-1105, 이공린李公麟1049-1106,

조보지晁補之1053-1110, 장뢰張耒1054-1114, 정정로鄭靖老,

진관秦觀1049-1100, 진경원陳景元, 미불1051-1107,

왕흠신王欽臣1034-1101, 원통대사圓通大師1027-1090, 유경劉涇1043-1100,

왕선王詵1036-1104 16(진사도陳師道1052-1102까지 합치면 17명이라고 함)의 문인묵객이 이곳에서 문아의 모임을 가졌다.

 

이공린이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미불은 그 기()를 썼다. 그림은 전하지 않고 화제만이 법첩으로 전한다. 이후 문인들이 즐겨 쓴 화제로서 자주 그려졌다.

미국 넬슨미술관에 소장된 마원(馬遠1160/1165?-1225?)<서원아집도>가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지다가 장자(張滋1153-1235?)의 정원을 그린 <춘유부시도(春遊賦詩圖)>로 밝혀졌다.

명나라의 구영(仇英,1497-1552)<서원아집도>가 유명한데 대만 고궁박물원에 있으며 작가 불명의 작품도 몇 점 있다.

이를 단원이 조선의 색채로 부채 위에 훌륭히 그려낸 것이다.

단원의 다른 <서원아집도>도 있다.

그리고 강세황이 선면에 미불의 화제를 적었다.


강세황이 쓴 글씨를 그대로 탈초 하였다. 미불이 썼다 전해지는 글과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표암 강세황이 쓴 제발문

李伯時效唐小李將軍爲著色泉石雲物 草木花竹 皆妙絶動人
이백시(이공린)는 당의 소이장군을 본받아 착색하였는데,

샘, 돌, 운물, 초목, 꽃, 대나무 모두 절묘하여 사람을 감동시킨다.

-小李將軍(소이장군)8세기 중반 활약한 이소도(李昭道). 부친 이사훈이 대이장군(大李將軍)으로 불리어 그리 불렸다.
而人物秀發 各肖其形 自有林下風味 無一點塵埃氣 不爲凡筆也
그리고 인물화에 뛰어나 각각 그 형상을 닮았으며, 스스로 산림에 은거하는 조촐한 멋이 있어 한 점 세상의 속된 기운이 없으니, 평범한 필치가 아니다.

-秀發(수발)재지와 풍채가 뛰어나다를 말한다.

-塵埃(진애)는 티끌이나 세상의 속된 것을 말한다.

其烏帽黃道服捉筆而書者爲東坡先生 仙桃巾紫裘而坐觀者爲王晉卿
검은 모자와 누런 도의에 붓 잡고 글을 쓰는 이는 동파선생(소식)이다.

선도건에 자색 갖옷을 입고 앉아 관람하는 이는 왕진경(왕선)이다.

-仙桃巾(선도건)은 도인의 복장으로 알려졌고 복식 모양은 전해지지 않았다.
幅巾靑衣據方几而凝竚者爲丹陽蔡天啓 捉椅而視者爲李端叔
복건에 청의를 입고 사각탁자를 붙잡고 멈추어 우두커니 선 이는 단양 채천계(채조)다.

의자를 잡고 바라보는 이는 이단숙(이지의)이다.

-凝竚(응저)은 엉기다, 붙다 외에도 한 곳에 멎다의 의미가 있고

 竚는 우두커니라는 뜻이다
後有女奴 雲鬟翠飾侍然 自然富貴風韻乃晉卿之家姬也
뒤에는 계집종이 쪽진 머리에 비취 장식을 하고 모시는데, 그대로 부귀하고 우아하다. 진경의 시첩이다.

-雲鬟(운환)(여자) 탐스럽게 쪽진 머리다.

-風韻(풍운)은 우아한 자태
孤松盤鬱 後有凌霄花纏絡紅綠相間 下有大石案陳設古器瑤琴芭蕉圍繞

坐於石盤旁道紫衣 右手倚石 左手執卷而觀書者爲蘇子由
외솔이 울창하고 뒤에는 능소화가 얽히고 얽혀 붉고 푸름이 서로 섞였다,

아래는 큰 돌 책상이 있는데 옛 그릇과 옥 장식 거문고를 차려놓고 파초가 둘러쌌다.

석판 곁에 앉아 도인 용모에 자색 옷을 입고 오른손은 돌에 기대고 왼손은 책을 집어 글을 보는 이는 소자유(소철)이다.

-盤鬱(반울)빽빽하게 울창하다이다 천자문에 宮殿盤鬱(궁전반울)이 있다. 창공이 궁과 전으로 빼곡히 차있다는 말이다.

-纏絡(전락)얽혀 이어지다를 말한다.

-瑤琴(요금)은 옥으로 장식한 거문고다.

-道貌(도모)는 도인의 모습이다. 미불의 것이라 전해지는 글에는 道帽(도모) 즉 도인의 모자로 적혀있고 강세황은 로 적었다.
團巾繭衣 手蕉箑而熟視者爲黃魯直 幅巾野褐據橫卷畫淵明歸去來者爲李伯時
단건에 솜옷 입고 손은 파초 부채를 아우르고 눈여겨보는 이는 황노직(황정견)이다.

복건에 거친 털옷에 두루마기 그림을 잡고 도연명의 귀거래를 그리는 이는 이백시(이공린)다.
-團巾(단건)은 각지지 않고 둥근 모자다.
-繭衣(견의)는 솜옷이고

-()아우르다, 가지런히 하다를 뜻한다. 그런데 알려진 미불의 글은 ()이다.

이 그림의 글자는 분명 미불(米芾)의 행서체 이다. 잡자는 뜻의 ()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음을 외우고 뜻을 뒤로한 177764세의 강세황은 수병초삽의 병을 동음의 글자 아우를 並자로 적었나 싶다.

-蕉箑(초삽)은 파초 부채다.

-熟視(숙시)눈여겨 자세히 보다를 뜻한다.

-野褐(야갈)은 거친 털옷이다.

-橫卷(횡권)은 두루마기 그림으로 횡축(橫軸)이라고도 한다.
披巾靑服撫肩而立者爲晁無咎 跪而捉石觀畫者爲張文潛
피건을 걸치고 푸른 옷에 어깨를 만지며 서 있는 이는 조무구(조보지)다.

꿇어앉아 돌을 잡고 그림을 관망하는 이는 장문잠(장뢰)이다.
-被巾(피건)은 지금의 숄이다.

-()는 꿇어앉을 궤다.
道巾素衣按膝而俯視者爲鄭靖老 後有童子执靈壽杖而立
도건과 흰옷에 무릎을 만지며 내려다보는 이는 정정로이며,

뒤에 동자가 있어 신령스런 수장을 잡고 서 있다.

-鄭靖老(정정로)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소식의 <與鄭靖老書(여정정로서)>라는 글에 보인다.

-俯視(부시)俯瞰(부감)이며 위에서 내려다 봄을 말한다.

-执(집)의 속자다.

-靈壽杖(영수장)은 추측컨대 대개 임금이 나이 든 신하에게 하사하는 壽杖(수장)의 형태가 신령스런 모습을 지닌 것을 말한 것은 아닐까 짐작만 한다.

二人坐於蟠磐根古檜下 幅巾靑衣袖手側聽者爲秦少游 琴尾冠紫道服摘阮者爲陳碧虛
두 사람이 넓게 뿌리를 감은 늙은 전나무 아래에 앉았다.

복건 쓰고 푸른 옷 입고 팔짱 끼고 곁에서 듣는 이는 진소유(진관)고,

금미관 쓰고 자색 도복을 입고 월금을 연주하는 이는 진벽허(진경원)다.

-古檜(고회)는 늙은 전나무이며, 는 노송의 뜻도 있다.

-琴尾(금미)鳳尾(봉미)와 같다. 거문고의 줄을 붙들어 매는 꼬리 부분을 말한다.

-()은 연주하다고 ()월금(月琴)이라는 악기의 이름이다.
唐巾深衣 昻首而題石者爲米元章 (幅巾)袖手而仰觀者爲王仲至 前有鬅頭頑童捧古硯而立
당건에 심의 입고 머리 들어 돌에 글 쓰는 이는 미원장(미불)이다.

(복건을 쓰고) 팔짱끼고 머리 들어 보는 이는 왕중지(왕흠신)이다.

앞에는 더벅머리 아이가 오랜 벼루를 받들고 서 있다.

-深衣(심의)는 신분이 높은 선비가 입던 웃옷. 대개 흰 베로 두루마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소매를 넓게 하고 검은 비단으로 가를 둘렀다.

-(幅巾복건)은 요즘 돌잔치에 사내아이가 쓰는 두건인데 이러한 경우 복건이라 발음한다. 강세황은 이 글자를 빼고 적었다.
-鬅頭(빈두)는 터부룩한 머리를 말한다.

-頑童(완동)은 개구쟁이 철부지 아이를 말한다.

後有錦石橋 竹徑繚繞於清溪 深處翠陰茂密

有袈裟坐蒲團而說無生論者爲圓通大師

傍有幅巾褐衣而諦聽者爲劉巨濟

二人並坐於怪石之上

뒤에는 금석교가 있고, 대나무 길은 깨끗한 시내에 감돌며 깊숙한 녹음이 빽빽이 우거졌다.

가운데에 가사 입고 창포방석에 앉아 무생론을 설법하는 이가 있는데 원통대사다.

곁에 복건에 갈옷 입고 자세히 듣는 이는 유거제(유경)인데,

두 사람은 괴석 위에 나란히 앉아 있다.

-繚繞(요요)빙빙 돌며 올라가다, 피어오르다. 감돌다, 긴 소매가 펄럭이는 모양을 말한다.

-翠陰(취음)綠陰(녹음)과 같다.

-蒲團(포단)은 부들방석으로 승려가 좌선할 때 쓰기도 한다.

-無生論(무생론)은 부처가 능가산에서 설법할 때 등장하는 데 불생무상(不生無相)의 함축된 언어다.

-圆通大师(원통대사)는 일본 사람으로 본명이 대정정기(大江定基,968-1041)이며 북송 3대 황제인 진종(眞宗,968-1022)이 법호를 내렸다는 인물이 있다. 그가 항주에서 73세에 입적하였다고 하는데 이 그림의 서원 모임에 참가했다면 118세가 된다. 이것은 원통대사가 일본인 대정정기인지 비정하기 힘들고 이 그림이 실제 있던 모임을 그리지 않았다는 결론에 한 몫 하는 이유가 된다.

또 다른 추정인물은 회현(懷賢,1015?-1082)이라는 승려가 있는데 <회해집(淮海集)>에 기록이 있으며 시와 글씨를 잘 썼다 한다. 다만 그도 이 모임 이전에 입적했다.

최근에는 대만 학자 축개경(祝開景)이 송나라 법수(法秀,1027-1090)라는 주장을 한다. 법수의 자가 원통이다. 송나라 진종의 누이인 만수(萬壽)공주가 명성을 듣고 법운사 주지로 앉혔고 황정견의 시와 이공린의 그림에 등장한다. 그나마 유력한 인물이다.

下有激湍 潀流於大溪之中 水石潺湲風竹相呑 煙方裊草木自馨

아래에는 빠르게 흐르는 여울이 있어 큰 시내 가운데로 모여 흐르는데, 물과 돌은 잔잔히 흐르고 바람과 대나무는 서로 감싸며 향로 연기는 두루 하늘거리고, 초목은 절로 향기롭다.

-激湍(격단)은 매우 급히 흐르는 여울이다.

-()은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한데 합쳐지는 곳, 즉 물들이다.

-潺湲(잔원)은 조용하고 잔잔함이다.

-()삼키다, 싸다, 감추다를 뜻한다.

-鑪煙(노연)爐煙이다. 강세황은 로 적었는데 조금 큰 크기를 갖는다.

-()는 간드러지다, 가늘고 부드럽다, 하늘하늘하다

-()꽃답다, 향기롭다이다.

人間淸曠之樂 不過於此 嗟乎洶湧於名利之域而不知退者豈易得此耶
인간의 청광한 즐거움이 이보다 낫지 않다. 아! 명예와 사리에 들끓어 물러날 줄을 모르는 자가 어찌 쉬 이를 얻겠는가?

-淸曠(청광)깨끗하게 탁 트여 넓다를 뜻한다.

-洶湧(흉용)은 물결이 매우 세차게 일어남을 뜻한다.
自東坡以下 凡十有六人以文章議論博學辨識 英辭妙墨好古多聞 雄豪絶俗之姿 高深羽流之傑 卓然高致 名動四夷 後之覽者 不獨圖畫之可觀 亦足彷佛其人耳
동파 이하로 모두 열여섯 사람이 문장과 의론과 박학과 분별의 지식 그리고 빼어난 문체와 훌륭한 서법, 옛것을 좋아하며 견문이 넓은 영웅호걸들이 세속을 끊고 사는 자태와 높고 깊은 조예를 가진 도사 등등의 출중한 사람들로 걸출하고 고상하다. 명성이 변방까지 감동시킨다.

후에 열람하는 이는 그림이 충분히 볼만 할 뿐 아니라 또한 족히 그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高深(고심)수준이 높고 깊다를 말한다. 그런데 전하는 미불의 기록은 高僧(고승)으로 적혀있다. 강세황은 미불의 행서체로 을 썼다.

-羽流(우류)道士(도사)를 말한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이란 말이 있다.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훌쩍 세상을 버리고 홀몸이 되어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飄飄乎如遺世獨立羽化而登仙)”에서 비롯되었다. 羽流는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려는 일련의 무리를 일컫게 된다.

-不獨...(부독...)‘...뿐만 아니라 또한....

丁酉七月下澣 書

정유년(1777) 칠월 하순에 썼다.

 

그림 우측 바위에 단원은 이리 적었다.

戊戌夏雨中寫贈用訥 士能

무술년(1778) 여름 비 오는 가운데 그려 용눌에게 주다. 김홍도

用訥(용눌)은 이민식(李敏埴,1755-?)이다.

대대로 역관에 종사한 집안 출신인 이민식에게 김홍도는 이 그림 외에도 <신선도팔폭병풍(神仙圖八幅屛風)>도 주었다.

 

본디 미불이 적었다는 <서원아집도기>와 조금 달리 표암이 쓴 글은 이렇다.

아울러 참가한 명사들의 소개는 하지 않겠다.

게다가 이 모임이 실제 있었다는 현실성도 증거도 없다.

아집은 동아리 모임과 비슷하다.

그 출발이 서원아집이며 견주어 조선에도 뒤따른 이들이 많다.

 

원본이 원본이라 할 것도 아니고 의미가 사뭇 다른 바도 아니라면 비교 자체가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그림의 글자를 자세히 보지 않고 전해지는 글과 같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무턱대고 옮기거나 해석한다면 잘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