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서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문무대왕암

허접떼기 2020. 11. 26. 13:09

감은사는 문무왕이 짓기 시작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고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682년(신문왕 2)에 완공하였다고 《삼국유사》에 적혀 있다.

 

바다에서 감은사 금당까지 죽어 용이 된 부왕이 출입하도록 지었다고 《삼국사기》에 있는 데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절터는 동해에 이르기 직전의 산기슭에 있는데, 거기에는 큰 3층석탑 2기가 동남으로 흐르는 대종천을 앞에 두고 서 있다.

 

탑 사이 두 개의 잘라진 듯 누워있는 돌이 무얼까?

포개 세우면 당간지주 모양이 되지는 않을까!


중문터와 회랑터의 남쪽 절반과 금당터의 대부분이 밭이 되었고, 북쪽 회랑터 절반과 강당터는 민가가 앉았다.

 

불국사 석가탑이 통일신라시대 전형이다.

특징은 삼층이며 옥개석이 5단이고 두 개의 기단부를 가진다.

석가탑보다 70여 년 전에 만든 탑이다.

각 부의 구성을 백제초기의 탑과 같이 많은 석재를 이용하였는데

형태가 남성적이고 웅장하다. 높이 13.4m이다.

 

국보(제112호)다.

목탑 구조를 단순화시켜 전탑을 모방한 신라의 탑은 석가탑에서 틀의 완성을 본다.

 

감은사지 앞을 흐르는 하천이 대종천(大鐘川)이다.

감은사의 대종을 왜적이 훔쳐 가다가 대왕암을 지나다 벼락을 맞아 파산되어 종이 빠졌다한다.

그런 이유에서 대종천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최근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어 나라에 국보로 지정된 탑은 29개다.

그 많은 국보 탑 중에서 감성이 가장 풍부한 탑이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이견대(利見臺)

682년 5월에 왕이 이곳에서 용으로부터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79년 박정희 때 지었다.

 

코로나-19로 한가해진 바닷가에는 영과 정기를 받고자 대왕암을 향해 기도하는 아줌마들 사이로 오징어 냄새가 난다.

저 곳이 문무왕이 수장된 곳이라는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보면 울산의 대왕암도 그 부인이 수장된 곳이라고 믿고 싶다.

한반도처럼 이웃 복이 없는 곳이 있을까? 그 둘 중에서 정말 용서가 안되는 족속의 위협을 부부가 용이 되어 한반도를 지켜주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