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서

[스크랩] 화엄사 종소리에 갇히다 2

허접떼기 2016. 6. 13. 11:00

각황전 8개 주련의 글을 살피면

1-4연은

대각국사 의천의 문집에 화엄사연기조사영(華嚴寺緣起祖師影)에 실린 글이다.

 

偉論雄經罔不通 위론웅경망불통 : 위대한 논서와 웅혼한 경전에 통하지 못함이 없고

一生弘護有深功 일생홍호유심공 : 일생 불법을 펴고 지키니 공덕이 깊다.

三千義學分燈後 삼천의학분등후 : 삼천의 의로운 학문이 등불 뒤를 나누니

圓敎宗風滿海東 원교종풍만해동 : 원교의 종풍이 해동에 가득하다.

 

원교는화엄경의 원만인연수다라(圓滿因緣修多羅)에서 기인했다.

불교의 교법을 그 우열(優劣)천심(淺深)에 따라 점교(漸敎)돈교(頓敎)원교(圓敎)로 나누고, 가장 원만한 교법을 원교라 하여, 화엄경이 원교에 해당된다고 했다.

보조국사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정혜쌍수(定慧雙修) 사상에서도 나타나는 데

점수는 꾸준한 수행을 말하는 것이며, 돈오는 자신의 본심이 부처의 마음이란 것을 문득 깨닫는 것이다

 

5~8연은

설암 추붕선사(雪巖 秋鵬 1651~1706)의 문집인 설암난고(雪巖亂藁) 16題華嚴寺丈六殿(제화엄사장육전)이라는 글의 일부다

 

西來一燭傳三世 서래일촉전삼세 : 서쪽에서 촛불 하나 삼세에 전하니

南國千年闡五宗 남국천년천오종 : 남국 천년에 오종이 투영되었구나

遊償此增淸淨債 유상차증청정채 : 누가 청정한 빚을 더하여 갚을 것인가

白雲回首與誰同 백운회수여수동 : 흰구름이 머리에 감도는 데, 누구와 더불어 할 것인가?

 

연기조사가 인도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 끼친 공덕을 기리며 그 빚을 갚아야하겠다는 뜻으로 새겼다.

 

각황전은 1930년대 일제에 의해 다시금 수리를 당한다.

당시 우리의 문화재는 일제에 의한 보수라는 미명으로 원형을 잃었다고 본다.

그리고 6.25를 맞아 다시금 위기에 처하는 데 빨치산 토벌이라는 미명 하에 겨레의 자산을 잃어버릴 뻔 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지리산 일대 빨치산 남부군 토벌을 지휘했던

차일혁 경무관(1920~1958)을 기리는 공적비다.

 

그는 화엄사를 비롯해 빨치산 근거지가 될 만한 사찰과 암자를 불태우라는 상부 지시를 받았지만, 각황전 문짝만 떼어내 불태우고는

"문짝만 태워도 빨치산이 은신할 수 없다"고 보고해 화엄사를 지켜냈다고 한다.

그는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공덕비는 2013년에 새로 세웠다.

 

차일혁 공덕비를 보며 몇 년 전 해인사에서 만났던 김영환 장군 공적비를 생각한다.

6.25 때 공군 편대장이었던 김 장군은 가야산과 해인사에 숨어든 인민군 1천명을 소탕하기 위해 가야산 일대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격했지만

민족의 소중한 문화재산 팔만대장경을 태울 순 없다며 폭격에 불응했다.

      


각황전의 현판을 숙종이 사액한 일과 연관하여 얽힌 야담(野談)이 있다.

 

임란으로 소실된 장륙전의 중창을 대원으로 세운 계파대사가 화주승이 된 이유는

항아리의 밀가루에 손을 넣은 모든 스님과는 달리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아서 였다 한다.

당신 회향을 주재한 노승이 걱정 말라며 내일 길을 떠나 제일 먼저 만나는 이에게 시주를 부탁하라고 하였다 한다.

이튿날 길을 나선 계파와 맞난 이는 노파였다.

사정의 전후를 들은 가난하고 비루한 노파는 죽음으로 환생하여 그 원을 갚겠노라며 물에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5-6년 후 태어나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는 숙종의 딸인 공주가 어전에서 계파를 보자 울음을 그치게 되었고

한 번도 펴지 않은 한 손이 펴지고 그 안에 장륙전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공주의 전생 이야기를 계파와 나눈 숙종이 공주 이름으로 불사를 일으켜 완성되었다는 야담이다.


물론 근거는 없다.

숙종의 3명의 정비와 장희빈을 비롯한 7명의 빈 이하의 후궁 사이에서 낳은 공주는

20살에 천연두로 사망한 인경왕후에게서 얻은 두 딸이지만 모두 두 살을 넘기지 못했고

각황전을 짓기 시작한 1700년에서 완공한 1703(계미)년 사이에 생존해 있지 않았다.   

숙종 (1661 ~ 1720 / 재위: 1674 ~ 1720) - 4510개월

정비 : 인경왕후 김씨 (仁敬王后 金氏, 1661- 1680)

장녀 : 공주 (1677~ 1678)

차녀 : 공주 (1679~ 1679)

1계비 : 인현왕후 민씨 (仁顯王后 閔氏, 1667~ 1701)

2계비 : 인원왕후 김씨 (仁元王后 金氏, 1687~ 1757)

후궁 :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 희빈 장씨, 1659~ 1701)

장남 : 20대 경종 (景宗, 1688~ 1724)

차남 : 성수(盛壽) (1690~ 1690)

후궁 :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 1718)

삼남 : 영수(永壽)1693~ 1693

사남 : 연잉군 금(延礽君 昑) : 21대 영조 (英祖, 1694~ 1776)

오남 : 왕자(1698~ 1698

후궁 : 명빈 박씨 (䄙嬪 朴氏, ~ 1703)

육남 : 연령군 훤(延龄君 昍, 1699~ 1719

후궁 : 영빈 김씨(寧嬪 金氏, 1669~ 1735)

후궁 : 귀인 김씨(貴人 金氏, ? ~ 1735)

후궁 : 소의 유씨(昭儀 劉氏, ? ~ 1707)

숙종



 

 

 

 

 

 

 

 

 

 

현종 (1641 ~ 1674 / 재위: 1659 ~ 1674) - 153개월

왕비 : 명성왕후 김씨 (明聖王后 金氏)

 : 1658(음력 428) ~ 같은해 사망 (요절)

 : 1659(음력 1115) ~ ?

 : 명선공주(明善公主) (1660~ 1673912(음력 82))

아들 : 조선 19대 국왕 숙종 순(肅宗 焞) (1661~ 1720)

 : 명혜공주(明惠公主) (1665~ 1673611(음력 427))

 : 명안공주(明安公主) (1667~ 1687625(음력 516))

해창위(海昌尉) 오태주(吳泰周)에게 하가

승은궁녀 : 김상업(金常業)

해주 오씨^ 집안에 시집을 갔으며, 숙종이 많이 이뻐한 여동생 명안공주도 각황전을 세우기 전에 죽었다.

 

 


聞鐘聲煩惱斷(문종성번뇌단) : 종성을 들으며 번뇌를 끊고

智慧長菩提生(지혜장보리생) : 지혜가 늘어나고 보리심이 생겨

離地獄出三界(이지옥출삼계) : 지옥을 떠나 삼계(아귀,지옥,축생)에서 벗어나

願成佛度衆生(원성불도중생) : 성불을 원하며 중생을 바로잡느니라


노전스님이 도량석을 하는 동안 대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법복을 걸친 다음

법당에 들어가 불전에 삼배를 올리고 각자 자리에 앉아 예불 준비를 한다.

이때 큰 절에서는 대중이 제각각 법당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두 손을 모으고 줄을 지어서 법당으로 오는 관습이 있으니 이것을 차수안행(叉手雁行)이라고 한다.

도량석이 끝나면 예불을 담당하는 노전스님은 법당에 있는 작은 종을 치면서 게송을 읊는데,

이것을 종송(鐘誦)이라고 한다.

종을 치면서 게송을 왼다는 뜻인데, 예불을 드리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종송은 도량석과 마찬가지로 낮은 소리에서 시작하여 점점 높은 소리로 올라간다.

종송에 사용되는 게송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사용하는데 대략은 다음과 같다.

원차종성변법계 철위유암실개명 삼도이고파도산 일체중생성정각

(願此鐘聲遍法界 鐵圍幽暗悉皆明 三途離苦破刀山 一切衆生成正覺)이라는 타종게(打鐘偈)를 먼저 외고,

이어 화엄경에 귀의한다는 서원을 말한 다음,

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사구게(華嚴經四句偈)를 읊는다.

다음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외고

극락세계십종장엄오종대은명심불망등의 게송을 차례로 외우며 종을 쳐 나간다.

종각 아래 벚나무에 붉은 버섯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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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이 단청이 없는 데 반해 화엄사 대웅전은 단청이 칠하여져 있다. 

숭례문 화재에 있어 불의 착화가 쉬운 이유가 단청과 기름칠이라고 들었다.

아마 각황전이 단청을 칠하지 않은 이유도 화재예방이 하나일 수 있다.


대웅전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는 광명이며 진리이고 보제의 뜻을 지닌다.



가운데 비로자나불은 주존불인만큼 2.7m로 양쪽 불상보다 20~30cm 크다.

지권인(智拳印) 손갖춤(手印)을 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비로자나 수인과 달리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고 있다.

오른손은 부처세상 불계(佛界), 왼손은 중생세상 중생계(衆生界)를 나타내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며 번뇌와 깨달음도 일체라는 의미다.

 


노사나불은 원래 비로자나불의 약칭이지만

대승불교, 특히 화엄을 중시하는 종파에선

비로자나불과 별도로 삼신불의 하나로 자리 잡은 부처다.

노사나불은 깨달은 몸, 보신(報身佛)이고

비로자나불은 진리의 몸, 법신(法身佛)이며

석가모니불은 중생을 구제하는 몸, 응신(應身佛)이라는 교리다.


보통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고 부른다.

두 손을 들어 가르침을 주는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고

독특하게도 보살처럼 보관(寶冠)을 썼다.

 

석가모니불은 제일 작은 2.4m..

오른손을 무릎에 두고 왼손은 엄지를 중지에 대고 왼쪽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손갖춤, 즉

악마를 항복시켜 깨달음을 얻었음을 나타내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대웅전 기둥에는 여섯 줄 주련이 걸려 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揭)에 나오는 말이다

 

四五百株垂柳巷(사오백주수류항) : 4,5백 그루의 수양버들 거리에
樓閣重重華藏界(누각중중화장계) : 누각이 겹겹이 화장세계로다
二三千尺管絃樓(이삼천척관현루) : 2,3천 척 높이의 관현 누각 


紫羅帳裏橵眞珠(자라장리산진주) : 붉은 장막에 진주를 흩어 놓은 것처럼
雨寶益生滿虛空(우보익생만허공) : 법비가 허공에 가득히 더하여 내리는데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 : 중생들은 그 그릇만큼 이익을 얻는다.


화엄사에 있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감동적이었다. 그 감동을 주련을 주제로 다시금 적어봤다.

 

 

 


출처 : 열 두 대
글쓴이 : 올곧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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