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절이라고 없는 것이 많은 절이라고 했었다. <2013년 9월에 적은 글을 보관하다 올림>
수십년만에 情人과 함께 찾은 화암사.
굽이 도는 거친 산릉에 싸여 아직도 국보로 승격된 보물을 가진 사찰로 입장료도 없어서였는지
요사채를 뜯어내고 세상으로 나오고자 수리 중이였다.
이십여 년 전 찾아 갔을 때 걸어 걸어 올라갔던 절이 그나마 작은 길을 내고 철계단을 놓아
요즘 흔한 산책로처럼 닦아 놓아 아기자기 했으나
복수초 설화는 깨어진 흔적처럼 사람들에게 인위가 무었인지를 말해준다.
화암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 형태이며 국내에서 유일한 하앙식(下昻式) 목조 건축물이다.
하앙(下昻)이란 다포식(多包式) 건축양식 중에서도 도리 바로 밑에 있는 살미라는 건축 부재가
서까래와 같은 기울기로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지렛대 형식으로 떠받치는 공포를 말한다.
하앙식 건축물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완주 화암사 극락전만 실물로 보고돼 있다.
하앙식 공포
완주 화엄사 극락전은 정유재란 때 피해를 본 뒤 선조 38년(1605)에 중건됐다.
의상과 무학대사가 수도를 했던 고찰은 조선조 세종대에 한 번 중수되었고
임란 중에 불탔다가 재건되었는데, 그때까지도 하앙식 구조로 건물울 지을 목공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조에 이런 하앙식구조를 가진 건물이 존재하여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가운데
유일히 보존되어 2011년 국보로 승격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용머리 모양새를 갖춘 하앙식 공포 (극락전 앞쪽)
삼각자 모양의 극락전 뒤 공포
화암사는 절 입구까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으나
중간에 산책로를 새로 만들어 대개는 거기에서 주차하고 걸어 나무다리와 철계단을 올라 이르는 것 같다.
오르는 길에 계곡을 따라 있는 데 긴 더위에 말라 있었다.
지형은 변성암이였다. 깨지기 쉬운 암벽지대이니 옥천지역의 일부다.
충주의 부산처럼 뾰족히 생긴 산이였다.
겨우 십분도 채 안되어 일명 147계단에 도착했다.
시인 안도현의 글이 써있다.
그가 어지간한 이가 아니면 모를 절이라고 하였다.
나도 그렇게 30년 가까운 전에 왔을 때 잡초가 무성하고 길도 없었던 산사였다고 기억한다.
오르는 계단에 즐거우라고 그림과 안도현 시인의 글을 붙혀 놨기에 덜 심심한 것은 사실이나
가만히 계단 아래를 보니 조금 작으나 물줄기 흐르는 폭포를 덮어 만들어 놓은 것이여서
비껴 만들 수는 없었나 하는 아쉼이 생겼다.
오르니 예전 산사 입구로 향하는 길이 나 있어 들어가 보니 철봉 손잡이 길이 나 있었다.
불명산 화암사라는 현판을 뒤로 하고 마당안으로는 우화루(雨花樓)라 이름하는 건물이 서 있다.
요사채 보수를 하느라 요사채와 우화루 경계를 이루던 담을 허물고
일부를 해체하여 우화루에 널어 놓은 기둥과 보들이 보인다.
현판의 글씨가 비슷하나 죄 다르다. 다른이가 쓴 것이다.
우화루!! 내 기억에 우화루란 이름의 절 누각이 적잖다.
의성 고운사 雨花樓, 봉정사 영산암 우화루, 무주 백련사 우화루, 밀양 표충사 우화루, 장성 백양사 우화루.
또 다른 순천 송광사 우화루(羽化樓),
법화경서품에,
“이때에 하늘에서 만다라화(曼陀羅華), 마하만다라화(摩訶陀羅華), 만수사화(曼殊沙華),
마하만수사화(摩訶曼殊沙華)가 부처님 좌상과 여려 대중 앞에 비 오듯 우수수 쏟아졌다.”는 내용이 있다.
또 법화경에 나타난 상서로운 여섯장면[法華六瑞] 중에 세 번째가 우화서(雨花瑞)로
석가세존께서 법화경을 설하려고 삼매에 드셨을 때 하늘에서 4종의 꽃이 비 오듯 쏟아지는 장면을 말한다.
‘우화(雨花)’는 花자 대신에 華자를 사용하여 ‘우화(雨華)’로도 쓴다.
의성 고운사는 최치원과 관계있는 절이고 그 말가 중의 하나가 봉정사인데
최치원이 세웠다는 우화루에 대한 글씨가 雨化 雨花 등으로 분명하지 않다.
우화등선(雨化登仙)
우화(羽化)라는 말의 원뜻은 번데기가 날개 있는 벌레로 바뀐다는 뜻이다.
우화등선이란 땅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되어 있는 사람이 날개가 돋친 듯 날아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미지에 대한 동경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온다.
宋(송)나라 神宗(신종) 元豊(원풍) 5년 임술년(1082) 가을 7월 16일에,
동파가 손님과 더불어 배를 띄우고 적벽의 아래에서 놀 때에 청풍은 천천히 불고 물결은 일지 않았다.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시경(詩經)』의 명월편을 암송하고 요조의 장을 노래 불렀다.
조금 있으니 달이 동산 위에 나와 남두성과 견우성 사이에서 배회하더라.
흰 이슬은 강을 가로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닿은지라,
쪽배가 가는 대로 맡겨 만 이랑 넓은 강을 지나가니, 넓고 넓도다.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 가서 그 그치는 곳을 모르겠고, 너울너울 날아오르도다.
훌훌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것 같구나.
<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
이때에 술을 마셔 즐거움이 더하니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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