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판교의 시를 적은 추사의 묵란

허접떼기 2019. 9. 14. 21:19

위 그림은 <난맹첩(蘭盟帖)  >에 실린 김정희(金正喜,1786(정조10) ~ 1856(철종 7)의 <산중멱심>이다.

간송미술관에 있다.

 

김정희 필 난맹첩은 추사(秋史)의 묵란화(墨蘭畵)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서화첩으로

2018년에 보물1983호로 지정되었다.

1849년 추사에게 전기(田琦). 김수철(金秀哲) 등과 함께 그림에 대한 평가를 받은

유재소(劉在韶,1829-1911)의 아버지이며 철종의 어진을 장황(裝潢, 표구를 하는 일)하고

추사 자신의 작품도 장황하던 유명훈(劉命勳)에게 선물을 준 것이라 한다.

 

난의 형상을 다양한 구도와 모습으로 구현했으며

김정희가 추구한 사란법(寫蘭法)에 입각해 개성적인 필묵법(筆墨法)을 구사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면에 쓰인 제시(題詩) 역시 난()에 관한 고사(故事)와 난 그림에 능했던 중국의 인물들,

난의 속성 등에 관한 것으로, 문사철(文史哲)에 해박했던 김정희의 학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서예적 필법으로 난을 다양하게 잘 그렸던 김정희의 화풍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후대 화가들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회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문화재청이 안내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심란(素心蘭)이란 이름으로 소장하는 추사의 작품이다.

 

위 두 그림에 적힌 글씨는 이렇다.

 

山中覓覓復尋尋(산중멱멱부심심)

覓得紅心與素心(멱득홍심여소심)

欲寄一枝嗟遠道(욕기일지차원도)

露寒香冷到如今(노한향냉도여금)

 

이는 <畫蘭寄呈紫瓊崖道人(화란기정자경애도인)>라는 제목 하의 칠언절구다.

판교(板橋) 정섭(鄭燮,1693-강희32 ~ 1765-건륭30)의

판교집(板橋集)5부 판교제화(板橋題畫)에 실린 글이다.



자경애도인(紫瓊崖道人)에게 드리고자 난을 그리며 쓴 시라는 뜻이다.

자경애도인은 강희제의 21번째 아들인 애신각라 윤희(愛新覺羅 胤禧, 1711-1758).

()는 겸재(謙齋), ()는 자율(紫噊), 자경애도인(紫瓊崖道人)이며,

건륭제 즉위 후 신군왕(愼君王)에 봉해졌다.

시인이자 화가였다. 판교와 사회적 지위가 달랐음에도 서로 교류하던 사이였다

 

위 시를 해석해 본다.

 

산중을 찾고 또 찾아

붉은 꽃술과 하얀 꽃술을 얻었습니다.

한 갈래 그려 먼 길에 보내드리오니,

이슬이 차고 향이 맑아 오늘까지 여전합니다.


판교가 어렵게 구한 난을 그림으로 그려 신군왕에게 부쳐

향기롭게 살고자 하는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리라.

 

다음 그림을 본다.

이 그림은 <난맹첩(蘭盟帖)>에 실린 <산상난화>다.


이 그림의 화제는 板橋集(판교집)

<題嶠壁蘭花圖(제교벽난화도)> ‘절벽 난꽃 그림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과

<半開未開之蘭(반개미개지란)> '반쯤 피고 못 핀 난초'라는 제목으로 실린 시에서 따왔다.

1. 

山上蘭花向曉開(산상난화향효개) 산 위 난 꽃은 이미 동틀 무렵 피었고

山腰蘭箭尙含胎(산요난전상함태) 산허리 난과 대는 아직 망울을 품은 채네.

畵工刻意敎停畜(화공각의교정축) 화공은 애 써 머금은 그대로 그리건만

何苦東風好作媒(하고동풍호작매) 어찌 샛바람은 한사코 중매 서길 좋아하는가?

 

()는 대나무의 한 종류인 잇대다.

()은 아직 이라는 뜻이 있다.

()는 식물에게는 꽃이 잎에 쌓인 상태일 것이다.

()은 멈추다, 멎다를 뜻한다.

은 쌓다, 간직하다, 감추다를 뜻하여 과 같다.

作媒(작매)는 중매를 서다로 做媒(주매)와 같다.


원전 板橋集(판교집)≫에 실린 두 시를 적어본다.

 <題嶠壁蘭花圖(제교벽난화도)>

山頂蘭花早早開(산정난화조조개) 山腰小箭尙含胎(산요소전상함태)

畵工立意敎停蓄(화공입의교정축) 何苦東風好作媒(하고동풍호작매)

<半開未開之蘭(반개미개지란)>

山上蘭花向曉開(산상난화향효개) 山腰乳箭尙含胎(산요유전상함태)

畵工刻意敎停蓄(화공각의교정축) 何苦東風好作媒(하고동풍호작매)


2.

此是幽貞一種花(차시유정일종화) 이것은 그윽하고 곧은 일종의 꽃이다.

不求聞達只煙霞(불구문달지연하) 알려지길 힘쓰지 않고 그저 안개와 놀에 있다.

采樵或恐通來徑(채초혹공통래경) 나무꾼이라도 행여 오가는 길이라 두려워

寫高山一片遮(지사고산일편차) 마침 높은 산 한 자락 그려 가려지게 한다.


聞達(문달)은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을 말한다.

不求聞達(불구문달)은 명예를 구하지 않음을 뜻하는 성어다.

采樵(채초)採樵와 같이 땔나무를 베어 거두는 일 또는 나무꾼이다.

通來(통래)往來(왕래)와 같다.

는 타동사나 사동사이기에 목적어가 뒤에 붙는다.

홀로 쓰이는 경우는 적은데 대명사로 이것을 뜻할 때는 저로 읽는다.

()와 같은 음운을 가지기에 차로 읽어 쓰일 것이다.

의미는 알겠는데 도치되었을라? 선뜻 직해가 안되었다.


이 시는 역시  板橋集(판교집)≫에 <蘭(난)>이란 제하에 있는 글이다.

원전에는 위 시의 앞에 7언절구 4행이 하나 더 있다.


屈宋文章草木高(굴송문장초목고) 굴원과 송옥의 문장에 풀과 나무는 높고

千秋蘭譜壓風騷(천추난보압풍소) 천추에 난의 계보는 모든 글에 버금간다.

如何爛賤從人賣(여하난천종인매) 어찌 천박하게 사람에게 팔려고

十字街頭論擔挑(십자가두논담도) 사거리 짐꾼과 가격 흥정하는가!


아울러 원문에 更(경, 갱)자 대신 추사는 다만, 마침을 뜻하는  秖(지)로 썼다.


3.

兩絶皆板橋詩(양절개판교시)두 절구 모두 판교의 시다.

居士(거사) 김정희


정섭(鄭燮)은 중국 청나라 중기의 문인화가다.

자는 극유(克柔), 호는 판교(板橋).

추사와 판교의 나이 차는 거의 백년이다.

추사는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있어야 글씨요 그림이라 한다.

수양의 결과로 나타나는 고결한 품격을 갖춰야 진정한 서예가요 화가라 한다.

추사가 이룬 업적은 문외한인 나로서도 대단한 것이다.

추사가 판교의 글과 그림을 좋아하면서 때로는 익히기도 하였으리라 본다.

내가 살짝 내민 혀로 맛 본 판교의 글과 그림은

인격 수양이 아닌 그저 자신을 마음껏 밖으로 표출한 행위였지

잣대를 들이대며 판가름을 나누려 한 결과물은 아니라 본다.


판교의 그림과 글에 대한 의견은 다음에 적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