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김득신의 오동폐월도와 개소리

허접떼기 2019. 2. 25. 12:15

 

 

이 그림은 긍재 김득신의 작품이다.

제목이 두 개다.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그림을 보면 개인적으로 오동폐월도가 더 어울린다.

조석진, 장승업의 오동폐월도도 있다.

 

오동폐월도는 개가 오동나무 아래에서 달을 쳐다보고 짖는 그림이다.

개 술()’자가 지킬 수()와 비슷하고 나무 수()’자가 지킬 수()와 음이 같아서

집을 지키는 것을 상징한다.

 

긍재가 그림에 쓴 글은 이렇다.

 

 

一犬吠 (일견폐)

二犬吠 (이견폐)

萬犬從此一犬吠 (만견종차일견폐)

呼童出門看 (호동출문간)

月挂梧桐第一枝 (월괘오동제일지)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만 마리 개가 이 한 마리 개를 따라 짖네.

아이를 불러 문을 나가 보거라 하니,

달이 오동나무 첫 번째 가지에 걸려 있어요!”하네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본관은 개성(開城)이고 자는 현보(賢輔),

호는 긍재(兢齋)이며 초호는 홍월헌(弘月軒)이다.

김응리(金應履)의 아들이며, 화원이었던 김응환(金應煥,1742-1789)의 조카이다.

화원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한중흥(韓重興)의 외손자이다.

개성 김씨 가문은 김응환 때부터 도화서 화원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명문 화원 가문을 이루었다.

따라서 김득신 집안의 구성원은 화원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김득신은 화사군관으로 초도첨사(椒島僉使)를 지냈고

동생인 김석신(金碩臣), 김양신(金良臣),

그리고 아들인 김건종(金建鍾), 김수종(金秀鍾), 김하종(金夏鍾)이 모두 화원이었다.

김득신은 활약상에 비해 기록이 적으며 생애도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근역서화징에는 김득신의 생년이 175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큰아버지인 김응환과는 12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김득신은 흔히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화가로 알려진다.

초기에는 집안의 화풍을 계승하였고, 이후에는

도석인물(道釋人物), 산수, 영모(翎毛) 풍속화 등 김홍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김홍도의 후기 풍속화풍을 계승하는 동시에 산수를 배경으로 삽입한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해학적 분위기와 정서를 더욱 가미하여 풍속화에서 김홍도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하였다.

 

김득신이 그림에 쓴 글의 출처를 공부해본다.

 

이경전(李慶全,15671644)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중집(仲集), 호는 석루(石樓).

한마디로 대단한 집안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이다. 조부가 이지번(李之蕃)이고 중조부가 토정 이지함(李之菡)이며.

아버지가 북인의 영수였던 영의정 이산해(李山海,1539-1609).

조부가 윤원형이 날뛰는 꼴을 못 보고 단양에서 신선처럼 살았고

아버지 이산해가 세 번이나 장원한 유전자를 물려받아선지

임란 전에 급제하고 영창대군 옹립에 반대하다 강계에 귀양을 간 뒤

북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광해군으로 충홍도, 전라도 관찰사와 좌참찬에 올랐고,

인조반정 이후에도 서인에게 아부하여 명나라 주청사로 가고 한평부원군이 되었으며

병자호란으로 삼전도비문 작성을 명받았으나 병을 핑계로 거절하고

1640년에 형조판서를 지냈다.

이경전이 어려서 당시 노래를 한자로 적었다는 시가 있다.

 

   

一犬吠, 二犬吠, 三犬亦隨吠. (일견폐 이견폐 삼견역수폐)

人乎虎乎風聲乎. (인호호호풍성호)

童言山外月如燭, (동언출외월여촉)

半庭唯有鳴寒梧. (반정유유명한오)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세 마리 개도 따라 짖네.

사람일까? 호랑이일까? 바람소릴까?

동자가 말하네. "산 밖의 달이 등불 같고,

뜰의 반을 덮은 차가운 오동만 울고 있네요!”

 

비슷한 시기 비슷한 개소리가 있다.

158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3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박사가 되었던

여대로(呂大老,1552-1619)는 임란 때 의병장으로 왜와 싸웠다.

 

一犬吠, 二犬吠, 一時吠千百.(일견폐 이견폐 일시폐천백)

群吠爲何物 徒耳不以目. (군폐위하물 종이불사목)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일시에 짖으니 수천 수백이네.

떼로 짖는 게 무엇 때문인지, 본 게 아니라 소리를 쫓은 거지.

 

여대로는 후한(後漢) 때 속세에 초연하고, 은거하며 잠부론(潛夫論)을 지었다는

왕부(王符)개소리를 읽었을 것이다.

 

一犬吠形 (일견폐형)

百犬吠聲 (백견폐성)

한 마리 개는 형상에 짖고,

백 마리 개는 소리에 짖는다.

 

모두 개소리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