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국풍(國風)

14. 조풍(曹風) 4. 하천(下泉)

허접떼기 2022. 2. 6. 01:12

왕자 조의 난/ 출처 m.ximalaya.com/renwen

冽彼下泉 浸彼苞稂 열피하천 침피포랑

愾我寤嘆 念彼周京 희아오탄 염피주경

 

冽彼下泉 浸彼苞蕭 열피하천 침피포소

愾我寤嘆 念彼京周 희아오탄 염피경주

 

冽彼下泉 浸彼苞蓍 열피하천 침피포시

愾我寤嘆 念彼京師 희아오탄 염피경사

 

芃芃黍苗 陰雨膏之 봉봉서묘 음우고지

四國有王 郇伯勞之 사국유왕 순백로지

 

차가운 저 샘물이 흘러 차조 덤불로 스며드네.

한숨 쉬고 자다 깨 탄식하며 저 주나라 도읍을 생각하네.

 

차가운 저 샘물이 흘러 산쑥 덤불로 스며드네.

한숨 쉬고 자다 깨 탄식하며 저 서울 주나라를 생각하네.

 

차가운 저 샘물이 흘러 가새풀 덤불로 스며드네.

한숨 쉬고 자다 깨 탄식하며 저 서울 스승을 생각하네.

 

무성한 기장 씨앗! 긴 비가 기름지게 하니

천하의 왕이 있어 순백이 그를 위로하네.

 

《詩經》에서 彼만큼 자주 보이는 글자도 없다.

彼는 지시대명사로, 저, 저기, 그, 그이를 뜻하고

彼交匪舒(피교비서)의 용례처럼 匪의 뜻도 가지며.

파생글자의 용례로 덮다를 뜻하는 被의 뜻도 가진다.

彼의 어원은 가죽(皮)을 벗기는 모양에서 출발했다.

안이 아닌 바깥, 안쪽이 아닌 바깥쪽을 뜻하는 글자다.

한자에 불필요한 글자를 구어도 아닌 문체에서 넣어 쓴 예가 있을까?

더군다나 표의문자이니 불필요한 글자를 넣는 용례를 발견하기 어렵다.

冽彼下泉에서 冽은 형용사로 차다, 춥다를 말한다.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有冽氿泉,无浸穫薪이 있다.

(옆으로 뿜어 나오는 차디찬 샘이여, 장작을 적셔 놓지 말아라.)이다.

下泉하천은 중국어로 저승, 황천을 말한다.

<毛傳>에서는 샘이 아래로 흐르는 것(泉下流者)이라 주석하였다.

당나라 공영달(孔穎達,547-648)의 《모시정의毛詩正義》에는

모공毛公의 전傳을 모전毛傳,

후한後漢 정현(鄭玄,127-200)의 전箋을 정전鄭箋,

공영달의 소疏는 공소孔疏라 통칭하고 있다.

 

浸침은 잠기다, 적시다,

苞포는 무성하다, 덤불을 말한다. <진풍秦風>, <신풍晨風>에도 보인다.

稂랑은 강아지풀, 가라지를 말한다.

자전에는 (어린 조다. 물을 대지 않는 풀이다. 물을 주면 병든다. 사람들은 긴 이삭을 가졌으나 속이 안 찬 벼를 말한다.)고 적고 있다.

(童粱 非溉草 得水而病也 有人說稂是長穗而不飽實的禾)

愾(개,희,흘)은 1. 성내다는 개, 2. 한숨 쉬다는 희, 3. 이르다는 흘

寤오는 자다 깨는 것을 말한다.

周京은 주의 수도를 말하며 다음 절의 京周 京師와 같다.

蕭소는 맑은대쑥, 산쑥(애호艾蒿)을 말한다.

蓍기는 톱풀, 가새풀, 시초로 쑥의 일종이다. 당시엔 가새풀 가지로 점을 쳤다.

芃芃봉봉은 무성하고 튼튼한 모양을 말한다. (茂盛茁壯)

黍苗서묘는 기장의 씨앗을 말한다.

陰雨는 몹시 흐린 가운데 계속 내리는 비로 장마를 말한다.

膏고는 윤택하게 하다, 기름지게 하다를 말한다.

<毛傳>에서 郇伯순백은 순후 郇侯를 말한다.

<鄭箋>에서 순후는 문왕의 아들로 주백州伯이 되어 제후를 다스린 공이 있다고 한다.

명대 하해(何楷,1594-1645)의 《시경세본고의 詩經世本古義》에

순백은 제시(齊詩)에 근거해 진晉의 대부인 순력荀躒이라 했다.

勞로는 위로하다 이다.

 

주 경왕(景王)이 죽자 도왕(悼王)이 이었으나 왕자 조朝가 도왕을 공격 살해하였다.

그러자 진(晉)나라가 왕자 조를 공격하여 도왕의 동생 개丐를 경왕(敬王,BC536-476)으로 옹립시켰다.

이후 경왕과 왕자 조는 자주 충돌하였다. BC516년 조는 초(楚)로 도망하였다. BC505년 봄 초나라는 오(吳)나라에게 패하여 자칫하면 망국이 될 뻔했다. 경왕은 기회를 틈타 초나라에 조를 살해할 사람을 보내었다.

다음 해 조의 지지자들이 거병하여 경왕이 도망을 했고 BC503년 진(晉)나라의 도움으로 수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주(東周)는 평왕(平王)부터 낙읍(雒邑,洛邑)이 도읍지였다.

당시 낙읍은 조의 세력이 커서 낙읍의 동쪽으로 새로 도읍을 세워 성주(成周)로 부르고 종전 낙읍은 왕성이라 불렸다.

경왕26년(BC494) 오왕 부차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월(越)나라를 공격하여 월왕 구천이 미녀 서시를 바친 일이 있다.

 

이 시는 경왕이 칭왕하기 이전 하천(下泉)에 가 있으며 낙읍을 생각하며 왕조의 안위를 걱정하던 때를 기록한 것이다.

참고 문헌의 내용을 살펴본다.

<毛傳>에서 下泉은 통치를 생각하다(思治) 라 하고

조나라 사람들이 공공(共公)의 폭정으로 힘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명왕(明王)과 현백(賢伯)을 바라던 상황을 적은 것이라 하였다.

청대 요제항(烑際恒,1647-1715?)도 思治설을 취하되 공공(共公)의 시기는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송대 주희는 《시집전(詩集傳)》에서 왕실이 쇠퇴하니 소국이 피폐해진 것으로

찬 샘물이 아래로 흘러 어린 조가 상해지니 이 같으니

저절로 주나라 도읍을 개탄하며 생각하는 것이라 하였다.

(王室陵夷而小國困弊,故以寒泉下流而苞稂見傷爲比,遂興其愾然以念周京也)

청대 방옥윤(方玉潤)은 《시경원시詩經原始》에서

‘이 시가 만들어 진 것은 주가 쇠퇴하고 진이 패자가 된 까닭이다. 주가 쇠하지 않았다면 즉 주가 천하의 왕이라면 저 晉이 비록 강한들 감히 멋대로 정벌하는 일을 벌일 수 있을까?’ 라 하였다.

(此詩之作 所以念周衰傷晉霸也 使周而不衰 則四國有王 彼晋雖强 敢擅征伐)

유원(劉沅,1767-1855)은 그의 《시경항해詩經恒解》에서

‘주가 쇠하자 대국이 쇠퇴하고 소국은 날로 약탈을 당했다.

천자의 강령이 해이해지고 방백이 없어 현자가 그것을 아파하며 이를 지었다.

특별히 훌륭한 진대부 순력이란 설이 있다 ’고 썼다.

(周衰大國侵陵 小國日削 王綱解而方伯無人 賢者傷之而作 別又有美晉大夫荀躒說)

명대 하해(何楷,1594-1645)의 《시경세본고의 詩經世本古義》에

‘하천포랑下泉苞粮은 십년간 왕이 없고 순백(荀伯)이 때를 만나 주나라 서울을 근심한 것이고

조나라 사람 훌륭한 순력이 주 경왕을 들인 것임이 인정된다.’ 고 하였다

(下泉苞粮 十年無王 荀伯遇時 憂念周京 認爲下泉曹人美荀躒纳周敬王也)

근래 왕선겸(王先謙,1842-1917)은 《시삼가의집소詩三家義集疏》에서

‘하씨는 제시설을 천명하고 시의 뜻을 깊이하고 더했다.’ 고 적었다.

(何氏闡明齊詩說 深于詩義有裨)

정준영(程俊英,1901-)의 《詩經譯注》와 고형(高亨,1900-1986)의 《시경금주詩經今注》도 이를 따른다.

 

《좌전左傳》에 아래의 내용이 있다.

‘춘추말기 노나라 소공22년(BC520) 주 경왕(周 景王)이 죽자 왕자 맹(猛)이 자리를 이어 도왕(悼王)이 되었다.

왕자 조(朝)가 왕위를 잇지 못하자 병사를 일으켜 주왕실은 내란이 생겼다.

이에 진 문공(晉 文公)이 대부 순력(荀躒)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도왕을 영접하고 왕자 조를 공격했다.

오래지 않아 도왕이 죽자 왕자 개(丐)가 옹립되어 즉위하니 경왕(敬王)이 되었다.’

春秋末期的魯昭公二十二年(公元前520年) 周景王死 王子猛立 是爲悼王

王子朝因未被立爲王而起兵 周王室遂發生内亂

于是晉文公派大夫荀躒率軍迎悼王 攻王子朝 不久悼王死 王子丐被拥立即位 是爲敬王

 

하해는 ‘지금 《시경》과 《춘추》의 사실 부합을 고찰하면 초씨(焦氏)의 전하는 바가 명확하다.

위와 같음이 이같이 진실되다.

또 《춘추》에 주 경왕이 지금의 낙양 동쪽 근교에 있는 적천(狄泉, 또는 翟泉)에 거했다.

사람들이 하천의 시 중 하천을 인정하니 이 설은 성립된다.

또 진대부 순력 설의 한 가지 증거다.’라고 하였다.

(今考詩與《春秋》事相符合 焦氏所傳确矣 同上誠然如此 又《春秋》記周敬王居于狄泉 又名翟泉 在今洛陽東郊 有人認爲即《下泉》一詩中之“下泉” 如此說成立 又是美晉大夫荀躒說之一証)

고형(高亨,1900-1986)은 《시경금주詩經今注》에

‘조나라 사람들이 동주 왕조를 근심하며 왕조의 전란을 개탄하여 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曹国人懷念東周王朝 慨嘆王朝的戰亂 因作這首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