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제문으로 부관참시를 당한 점필재 김종직은 영남학파의 시조이며 사림이라 불리는 후학의 시조다.
그러나 그의 수제자인 김굉필이 조선 성리학의 정통이기에 스승으로서 대접을 받고
그의 부친인 김숙자가 길재의 후학이여서 대우를 받지만
김굉필도 이황도 이익조차도 그저 문사에 그친 인물로 평했고 허균은 혹평을 했다.
그가 충주 동헌에 들러 서울의 임금을 향한 연시를 지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새로이 추가된 그의 경영루차운(慶迎樓次韻)을 나름 해석해보기로했다.
辰韓千載國原區 진한천재국원구 更有層樓壓艮隅 갱유누층압간우
路出玉鉤森作界 노출옥구삼작계 地分金盞簇成圖 지분금잔족성도
雄風且可披襟受 웅풍차가피금수 醉墨休妨露頂呼 취묵휴방로정호
西北望京何處是 서북망경하처시 孤帆渺渺接平蕪 고범묘묘접평무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문은 이렇다.
“진한(辰韓) 천 년의 국원(國原) 땅, 다시 층층 누각이 있어 동북 모퉁이를 눌렀다.
길은 옥구(玉鉤)로 나서 경계를 지었고, 땅은 금잔(金盞)을 나누어 그림을 이루었네.
웅풍(雄風)이 또 옷깃을 헤치고 받을 만하구나.
취한 글씨는 이마를 드러내고 부르짖는 것이 해롭지 않다.
서북으로 바라보니 어느 곳이 서울인가. 외로운 돛대 아득하게 푸른 들판에 닿았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만들며 그 집필진을 구성하였는데 누군가 이렇게 번역해 놓았다.
진한 천년의 국원성에(辰韓千載國原區)
다시 층루가 있어서 동쪽 모퉁이를 누질렀구나(更有層樓壓辰隅)
길은 옥구에서 벗어나와 삼연히 지경을 이루었고(路出玉鉤森作界)
지세는 금잔에 나뉘어 떨기떨기 그림을 이룬 듯(地分金盞簇成圖)
웅장한 바람은 가히 옷깃을 헤쳐 받을 만하고(雄風是可披襟受)
취필 먹은 이마를 드러낸 채 부르는 대로 주필이로다(醉墨休妨露頂呼)
서북으로 서울을 바라보니 어느 곳인가(西北望京何處是)
외로운 돛대가 아득히 평무에 접하였네(孤帆渺渺接平蕪)
두 곳의 해석을 실어보고 비교를 해보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저 엄밀히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의 뜻을 바로 알고자 할뿐이다.
덪붙여 향토대전의 해석이 참으로 어의가 없을 지경으로, 지역의 인사라는 분의 의역이 놀라울 뿐이다.
갱유누층압간우(更有層樓壓艮隅) : 다시(更) 층루가 있어(有) 간좌(艮) 면(隅)을 압(壓)했다인데,
허술했던 누각을 다시 세웠기에 ‘갱유층루’이다.
향토대전에서 간(艮)을 진(辰)으로 바꾸어 번역을 했는데
艮坐는 동북방향이고 辰方은 동남쪽으로 많이 다르다.
내가 보기에는 동헌에서 볼 때, 북동방향인 艮方이 맞다. 어울러 <점필재집> 시집 권16에도 艮이라 했다.
점필재문집 권16 경영루차운
그 다음 행인 3, 4절은 路는 ~에서 出하고, 地는 ~를 分했다일 것이다. 왜냐면 대구를 이루기 때문이다.
옥구(玉鉤)는 옥으로 만든 갈고리로 초승달 모양을 비유한다.
금잔(金盞)은 금으로 만든 술잔이다.
더 나아가 위 시는 중국의 길과 땅을 인용하여 대구를 이룬 것이 맞다.
옥구사(玉鉤斜) : 초패왕 항우의 고향이며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강소성(江蘇省) 동산현(銅山縣) 남쪽
희마대(戱馬臺) 아래에 나 있는 가도(街道)의 이름인데,
당(唐) 나라 때 이울(李蔚)이 이 가도를 냈다고 한다.
금잔지(金盞地) : 유설(類說)에 의하면, 장안(長安)의 영녕방(永寧坊) 동남쪽은 바로 금잔지인데
이곳은 깨뜨려도 다시 이룰 수가 있고,
안읍리(安邑里)의 서쪽은 바로 옥완지(玉碗地)인데 이곳은 깨뜨리면 완전해질 수가 없다고 한다.
삼작계(森作界)와 족성도(簇成圖)는 역시 대조구로 森하게 界를 作하고, 簇하게 圖를 成한 것이다.
森은 빽빽한 모양이며 족(簇)은 조릿대로 '무리로, 모이다' 이다.
雄風且可披襟受 웅풍차가피금수 醉墨休妨露頂呼 취묵휴방로정호
웅풍(雄風)은 송옥(宋玉)의 <풍부(風賦)>에 나오는데 임금이 사는 곳에 부는 바람이란 뜻이다.
비하여 백성들 집에 부는 바람은 자풍(雌風)이라 했다.
피금(披襟)은 옷섶을 헤침이며 ‘흉금을 털어놓음’을 말한다.
취묵(醉墨)은 술이 취해 쓴 글씨이고 취흥에 쓴 시나 그림을 말한다.
노정(露頂)은 정수리를 노출한다는 것으로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탈모로정(脫帽露頂)- "모자를 벗어 정수리를 보인다"로 쓰인 것처럼
'예의에 구애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하처시(何處是)는 여기는 어디인가? 이다
고범(孤帆)은 외로은 돛단배이고
묘묘(渺渺)는 '아득히'라는 뜻이다.
평무(平蕪) 평활한 들이다.
그래서 나는 점필재집을 번역한 임정기님의 해석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풀어본다.
진한 천년 국원의 땅(辰韓千載國原區)
다시 동북방 모퉁이를 누르는 누각이 있구나(更有層樓壓辰隅)
길은 옥구사처럼 빼곡이 경계를 이루며 나있고(路出玉鉤森作界)
지형은 금잔지처럼 모여 그림을 이뤄 나뉘었다.(地分金盞簇成圖)
임금을 향한 바람은 가히 옷섶을 헤치어 받을 만하고(雄風是可披襟受)
흥에 겨운 글은 머리를 드러내 읊어도 무방하다.(醉墨休妨露頂呼)
서북으로 서울을 바라보니 여기는 어느 곳인가?(西北望京何處是)
외로운 돛대가 아득히 평무에 접하는구나(孤帆渺渺接平蕪)
지은 사람은 쓰며 뜻하고자 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저 후학(後學)으로 당시 한자를 글로 썼던 시대에 살지 않아 익히고 배우려는 자세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신증된 사림의 종조인 김종직의 차운시를 나름 해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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