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김홍도 선인송하취생도와 나업의 <제생>

허접떼기 2020. 3. 17. 12:04



나업(羅嶪, 825~?)은 만당시기의 시인이다.

자는 불상이고 여항(余杭, 지금의 항주의 일부)사람이다.

詩虎(시호)”라 불렸다. 율시와 필체가 뛰어났다.

특히 칠언율시에 뛰어나 나은(羅隱), 나규(羅虯)와 더불어 강동삼라(江東三羅)로 불렸다.

 

단원이 이 그림은 물론이고 생황을 부는 모습이 나타나는 다른 그림에 화제로 쓴 시의 작가다.

 

이 그림의 화제는 나업이 쓴 제생(題笙)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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筠管參差排鳳翅 균관참치배봉시

月堂凄切勝龍吟 월당처절승용음

最宜輕動纖纖玉 최의경동섬섬옥

醉送當觀灩灩金 취송당관염염금

緱嶺獨能征妙曲 구령독능징묘곡

嬴台相共吹清音 영태상공취청음

好將宮徵陪歌扇 호장궁치배가선

莫遣新聲鄭衛侵 막견신성정위침

 

그리고 나는 아래처럼 해하였다.

 

생황은 들쭉날쭉 봉의 날개처럼 배열되었고

월당의 생황소리는 처절하여 용의 울음보다 낫네.

가볍게 움직이는 옥 같은 가냘픈 손이 잘 어울리고

앞에 보이는 찰랑이는 금색 술잔은 취하여 버리네.

구령에서 왕자 진은 홀로 능히 묘곡을 얻었고

영대에서 농옥과 소사는 함께 청음을 불었네.

궁치음을 잘 조율하면 덧 노래가 왕성하니

새 곡조를 보내지 마라 정위풍이 침입하네.

 

동양의 시는 구어(口語)가 아니고 문어(文語).

칠언율시는 일곱 자 두 구()가 하나의 연()이 되어 네 연으로 완성된다.

수연(首聯), 함연(頷聯), 경연(頸聯), 미연(尾聯)으로 불린다.

하나의 연은 글의 형태가 철저히 대구(對句)를 이루고

네 연의 마지막 글자는 음운이 같아야한다.

당나라 시의 최고의 형식이 바로 칠언율시다. (), 정형화된 법칙을 말한다.

 

단원이 제발(題跋)로 쓴 나업의 제생(題笙) 수연을 보면

筠管參差排鳳翅/月堂凄切勝龍吟

균관이 참치하게 배하니 봉시이고

월당이 처절하게 승하니 용음이다. 라고 직역이 된다.

 

筠管(균관)은 대나무로 만든 악기라는 뜻이고

參差(참치)는 참치부제(參差不齊)라는 말의 줄임으로

 길고 짧고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이때 로 읽는다.

()는 밀치다, 배척하다는 뜻 이외에 세로로 늘어 선 줄형제의 차례를 뜻하여 차례로 늘어서다라는 뜻이 있다.

鳳翅(봉시)는 봉황의 날개다.

 

月堂(월당)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의 당사자로 당대(唐代)뿐 아니라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급이 다른 간신의 상을 보여준 이임보(李林甫)의 호이지만,

그가 생황을 즐겨 잘 불었다는 데이터를 검색할 수 없었다.

그저 생황을 부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은 뒷 단어보다 낫다는 뜻이고

龍吟(용음)용의 울음, 무악(舞樂)의 하나, 금곡(琴曲), 피리나 거문고의 소리다

 

함연(頷聯), 두 번째 연은

最宜輕動纖纖玉/醉送當觀灩灩金 이다

 

최의한다. 경동하는 섬섬한 옥을,

취송한다. 당관하는 염염한 금을. 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最宜(최의)는 최적(最適)이다, 가장 적절하다는 뜻이다.

輕動(경동)가벼이 움직인다.’가 될 테고

纖纖(섬섬)은 섬섬옥수(纖纖玉手)의 쓰임처럼 가냘프고 여림, 연약하고 가냘픈 모양이다

醉送(취송)취하여 보낸다.’ 일 것이다.

當觀(당관)은 불교 용어로는 아타(我他)를 떠나 현재의 시공간으로 보는 관찰이다, 너무 얽매일 것은 아니고,

 ()은 당면하다, 확장되어, ‘필적하다, 짝하다, 균형되다, 어울리다의 뜻으로 보인다.

灩灩(염염)은 출렁거릴 염이 연속되어 물결이 반짝거리거나 넘실거리다, 나부끼다. 철철 넘치다를 말한다.

 

을 대칭한 나업의 뜻이 가늠 안 되었다.

 

금생여수(金生麗水) 옥출곤강(玉出昆崗)이란 말이 있다.

분명 금은 지금의 황금과 다르게 당시에는 모든 쇠붙이를 통칭했다.

어원도 거푸집 모양에서 시작된 것이다.

 

옥은 당나라 사람이 좋아하고 금은 신라인이 좋아했다는 말이 있다.

 

한대(漢代) 허신(許愼)<설문해자(說文解字)>

옥은 5(仁義智禮信)을 갖췄다고 했다.

그 중 소리가 낭랑해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은 지()의 덕이다.”라고 했다.

 

<예기(禮記)>에서는

(((((((()은 물론 하늘과 땅,

나아가 도()의 상징으로까지 승화시켰다.

비견하여 두드려서 나는 소리는 멀수록 더 맑게 더 길게 이어지고 끝나도 남는 여운은 악()을 상징한다.”고 했다.

 

<전운옥편(全韻玉篇)>에는 사랑하다”, “이루다는 뜻도 가진다고 쓰여 있다.

 

금성옥진(金聲玉振)이란 말이 있다.

<맹자(孟子)>에 나오는데

쇠로 만든 악기를 쳐서 음악을 시작하고, 옥으로 만든 악기를 쳐서 소리를 거둬

음악을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옥과 금을 당나라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보며 어렵게 정리하던 중

이 연의 구절 일부를 인용한 시를 찾았다.

 

송대 안기도(晏幾道,1030?-1106?)<자고천(鷓鴣天)>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须教月户纖纖玉细捧霞觴灩灩金 수교월호섬섬옥세봉하상염염금

 

이 시는 자고천이라는 악사(樂詞)의 내용을 노래하였는데

"마땅히 달집의 가늘고 옥같이 하얀 농옥(弄玉)을 본받으니,

하상(霞觴)이란 좋은 술이 넘칠 듯 담긴 잔을 드물게 받든다."

즉 덜 마시게 되더라는 뜻으로 적었다.

 

纖纖玉(섬섬옥)은 섬섬옥수이며,

灩灩金(염염금)은 금색의 술을 가리킨다고 (指金黄色的酒漿) 주해를 달은 중국고시문망의 기록을 찾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옥은 손이고 금은 술의 색이였다.

 

아울러 첫 연의 月堂과 이 시에 쓰인 月户를 견주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으나

달빛이 비치는 마루라는 타인의 해석과 달리

()과 농옥(弄玉)이 학과 봉황을 타고 오른 달나라는 아닐까도 생각했다.

 

세 번째 연, 경연(頸聯)

緱嶺獨能征妙曲/嬴台相共吹清音인데

구령에서 홀로 능히 묘곡을 징하고

영대에서 서로 함께 청음을 취했다 로 직역된다.

 

한나라 때 경학자 유향(劉向, BC 77-BC 6)<열선전(列仙傳)>

, 잉어, , 봉황 등 이른바 영수(靈獸)나 신어(神魚)를 타고 승선하는 경우를 적은 승영물(乘靈物)’편이 있다.

그 중에 생황과 퉁소를 불어 봉황을 타고 승천했다는 두 경우를 이 연에 적었다.

 

우선 緱嶺(구령)은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에 있는 산으로 구산, 구씨산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주나라 영왕(靈王)태자 진()이 피리로 봉황의 울음소리를 내어 <봉황곡>을 지었는데

이곳에서 흰 학을 타고 올라 신선이 되었다는 곳이다.

 

嬴台(영대)는 진() 목공(穆公)농옥(弄玉)이라는 딸과 소사(簫史)라는 사위를 위해

만들어 준 봉황대를 말한다.

소사는 퉁소를 잘 불어 <봉명(鳳鳴)> 이란 곡을 남겼고, 그 소리로 공작과 흰 학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농옥이 소사에게 연정을 품었고, 목공은 딸을 소사와 맺어 주었다.

소사는 농옥에게 퉁소를 가르쳤고 몇 년 뒤 농옥은 퉁소로 봉황의 울음소리를 낼 수 있었다.

부부는 이곳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각각 봉()과 용을 타고 함께 봉황을 따라 승천하여 신선의 세계로 갔다고 한다.

 

()은 정벌하다, 취하다 외에 소집하다, 증명하다. 라는 뜻이 있다 이럴 경우 징으로 읽는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연은

好將宮徵陪歌扇/莫遣新聲鄭衛侵이다. .

궁치를 호장하니 배가가 선하고

신성을 막견하니 정위가 침한다. 로 해석할 수 있다.

 

()에는 동사로 좋아하다 외에 ...하다, ...하기 쉽다가 있다.

()은 동사로 거느리다, 기르다, 돕다, 부조하다.’로 쓰인다.

宮徵(궁치)는 동양 음악의 오음····(궁상각치우) 중의 두 소리고

이때의 徵은 밸 치다.

陪歌(배가)는 더하여 보태지는 노래다.

()은 명사는 부채고 동사는 부채질하다, 왕성하다, 선동하다, 세차다로 쓰인다.

()떠나보내다, 떨쳐버리다이다

新聲(신성)은 새로 만든 곡조다. 이 시에 나오는 묘곡과 청음이라 본다.

鄭衛(정위)는 춘추전국시대 두 나라이름인데,

정위지음(鄭衛之音)은 당시 직설적이고 음란하여 난세와 망국의 음악이라 치부되었었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정풍(鄭風)’, ‘위풍(衛風)’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길고 높은 소나무 아래 생황을 부는 이는 누구일까?

팔선(八仙) 중 머리를 양 옆 두 갈래로 상투를 하고, 피리와 퉁소를 불고 더러 맨발의 젊은이로 그려지는 한상자(韓湘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