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세마(洗馬)를 그린 그림

허접떼기 2018. 4. 6. 16:06

王孫別舍擁朱輪(왕손별사옹주륜) 왕손의 별장은 고관수레에 둘러싸였으나

不羨空名樂此身(불선공명낙차신) 헛된 이름 바라지 않고 이 몸을 즐긴다.

門外碧潭春洗馬(문외벽담춘세마) 문 밖 푸른 못, 봄에 말을 씻고

樓前紅燭夜迎人(누전홍촉야영인) 다락 앞 붉은 촛불, 밤에 남을 맞이하네.

 

한굉(韓翃)의 자가 군평(君平)이다. 하남(河南) 남양(南陽)사람이다.

양귀비에 빠져 있던 唐 현종의 재위기간 천보(天寶 742-756) 말년에 진사가 된 뒤

절도사(節度使) 막부(幕府)에 들어가 황제(皇帝) 조서(詔書)를 쓰는 직무를 담당하였다.

한굉은 주로 떠나는 사람에게 정표로 시를 지어 주는 이른바 증별시(贈別詩)를 지었는데,

상상력이 풍부하고 묘사에 빼어났다고 한다.

 

이익(李翼)은 왕족인 것 같다.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한굉이 장안에 있으면서 친하게 지낸

王孫 이씨의 집안기생(家妓) 柳姬와 결혼하였다는데

<章台柳(장태류)라는 시가 있다>그 왕손일 것 같다.

왕족으로 당고조 이연의 손자이고

연의 15번째 아들 괵장왕(虢莊王) 이봉(李鳳622-675)의 장자로

평양왕(平陽王)에 봉해진 이익(李翼)은 아닌 것 같다. 시대가 맞지 않다.


한굉이 이익에게 지어 준 시로 贈李翼(증이익)이 제목이다.

 

높은 지위를 가졌기에 말을 자신의 못에 씻길 수 있었던 것이다.

 

단원이 벽담(碧潭)을 녹담(綠潭)으로 바꿔 화제를 썼다



2011년 <TV쇼 진품명품>에서 감정가 15억으로 평가된 그림이 있다.


이른바 '石泉閑遊圖(석천한유도)'

조선의 무신 석천(石泉) 전일상(1700~1753)의 일상을 묘사한 풍속화다.

정자 위에 편안히 기대 한가롭게 더위를 식히고 있는 석천의 모습을 초상화기법으로 그렸다


당대 초상화로 이름이 높았던 김희겸이 석천의 부탁을 받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에도 얼룩이 말을 씻는 모습이 나온다.




석천 전일상의 관직은 무관으로

선전관(宣傳官), 우림위장(羽林衛將),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를 역임하고,

단천·구성·거창·경원·칠곡·무산·창원부사를 역임하였다. 대개 종3품의 벼슬이다.

무관이었기에 말을 쉽게 가지고 있었으리라. 누각 기둥에 지휘검을 매달고

손에는 수렵용 매를 기르는 모습은 평민은 상상할 수도 없다.


세마라는 제하의 그림은

일반 백성에게는 바라볼 수도 없는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