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金秀哲)은 조선 말기의 화가로, 그의 자는 사익(士益), 사앙(士盎), 호는 북산(北山)이며, 본관은 분성(盆城, 지금의 김해)이다. 이름을 '김수철(金秀喆)'로 쓰기도 한다. 그의 출신이나 생애 등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나 동대문 밖 석관동(石串洞)에 살았다고 하며, 같은 시기에 유사한 화풍을 구사한 김창수(金昌秀)와 동일인일거라 가늠되고 있다. 연대를 알 수 있는 김수철의 작품 중에 '무릉춘색도'(武陵春色圖)가 1862년으로 가장 늦게 제작되어서 그가 이 시기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수철은 같은 중인 계층의 여항문인(閭巷文人)들과 교유했다. 그는 조희룡(趙熙龍,1789-1866), 유최진(柳最鎭,1791-1869), 전기(田琦,1825-1854), 유재소(劉在韶,182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