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있는 것

한반도의 미일안보조약

허접떼기 2011. 2. 28. 20:05

 

그들이 보고한 FTA

쌍방이 동등한 기회를 갖고 좀더 적극적으로 주고받는 양자협상의 통상시대가 도래했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 494쪽)

 

"한미 FTA는 한미 동맹 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2010년)

 

그들이 보고하지 않은 FTA

1985년, 미국은 프라자 합의를 일본에 관철시켜,

당시 1달러에 248엔 하던 환율을 하루아침에 무려 180엔으로 변경시켰다.

그렇게 해서 일본 토요타 자동차의 미국 가격은 하루아침에 25%나 올랐다.

이것은 일본 제조업에 극단적인 충격을 가했다.

일본 기업들은 엔고를 피해 미국에 현지 공장을 짓고, 아세안과 중국으로 활로를 찾아 대거 이동하였다.

일본 제조업은 공동화되었고

일본의 국내 고용은 심각히 줄었다. 이는 일본의 고용 능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여기에 일본의 고령화가 본격화하면서 일본 경제는 쇠락하였다. 마침내 중국에게 추월당했다.

 

미국은 일본 사이에 체결된 '미국과 일본 상호 협력 및 안전조방조약'에서

일본의 경제정책에 제도적으로 개입할 틀을 가지고 있다.

 

이 조약의 2조에는 '상호 경제 관계'의 안정화를 촉진할 것이 규정되어 있다.

승전국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경제 정책에 합법적으로 관여할 법적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그런 것은 아직 갖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의 1952년 상호방위조약에는

그 어디에도 한국의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관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틀이 없다.

 

미국은 한국 경제에 대하여 세계 무역기구 153개 회원국의 하나로서

역시 그 하나인 한국에게 세계무역기구의 규정에 따른 협의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공식적 권리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인 중국도 한국에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가 체결되면,

미국은 한국을 압박하기 위하여 더 이상 세계무역기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게 일대일로 직접적 및 공식적으로 요구할 제도적 틀을 갖게 된다.

 

22.2조의 '공동위원회'를 비롯하여,

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위원회, 위생검역위원회, 자동차 작업반, 금융서비스 위원회, 보험 작업반,

농산물 무역 위원회 등 수많은 위원회와 작업반을 갖게 된다.

 

이 위원회는 최소한 년 1회 소집된다.

미국이 요구하면 이 위원회는 열려야 한다.

이제 미국은 굳이 세계무역기구를 거치지 않더라도

직접 한국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고 관철시킬 제도적 틀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 경제에 일대일로 개입할 법적 틀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1995년부터 일관되게 유지해온 WTO 다자주의를 미국에 대해서 포기하는 것이 된다.

 

1994년 한승주 당시 외무부 장관은

한국이 만일 WTO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강대국의 일방적 조치에 대한 효율적 대응수단"을 갖지 못하고,

 "양자 차원의 통상압력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국회가 그해 12월 16일, 찬성 152 대 반대 58로 WTO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킬 때,

찬성 토론자는 WTO를 하면

"EU나 NAFTA 등과 같은 지역주의로부터 한국이 차별당하지 않도록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를 뒤집었다.

그는 한승주 전 장관과는 정반대로 WTO를 강대국의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조성되는 국제환경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FTA에 대해선 쌍방이 동등한 기회를 갖고

좀 더 적극적으로 주고받는 양자협상의 통상시대가 도래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이 2010년 재협상에서

한국산 자동차(3000cc 이하) 관세 즉시 철폐를 없애버리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얻을 교훈은 패권국은 주는 것보다

더 많은 반대급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 498쪽)

 

그는 왜 이를 자신이 진행한 한미 FTA에서는 적용하지 않은 것일까?

그가 진행한 한미 FTA야말로 패권국 미국이 주도한 것이었다.

 

미국은 시애틀과 칸쿤에서의 WTO 회의에서 자신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데에 거듭 실패했다.

 

오히려 브라질, 중국, 인도 등은 미국의 면화 보조금의 신속한 폐지를 요구하였다.

 

미국은 2003년, 면화 보조금 문제로 WTO에 제소 당하였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의 틀 바깥에서 자신의 이익을 일대일로 직접 관철시킬 상대를 고르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통상 정책의 변경이 한미 FTA가 세상에 나온 배경이다.

 

미국은 한국에게 FTA 협상을 시작하는 전제 조건으로서

스크린 쿼터 절반 축소와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 등 4개의 선결조건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2007년 4월의 협상 타결 선언 후에도 그해 6월 재협상을 하여

미국의 이른바 '신통상정책'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다시 지난 12월에는 또 재협상을 해서 자동차 관세 즉시 철폐를 뒤집어 버렸다.

 

미국은 왜 일본에게 프라자 합의를 관철시켰을까?

그것은 일본의 경제적 비약으로 미국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제 한미 FTA의 공동위원회라는 일대일의 법적 틀을 확보한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 전본부장이 2005년 10월, 한미 FTA를 추진할지 말지를 결정한 정부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했다는 '3만불 시대'일까?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 102쪽)

 

그의 말은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추진위원장을 지낸 박세일 전 청와대 수석을 떠오르게 한다.

박 전 수석은 1997년 3월에 세계화를 역설하며 이렇게 전망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맞이하였고,

2010년까지는 4만 불을 넘어서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끼일 전망이다."

(국회 사무처, <국회보> 365호(1997.3) 91쪽. "삶의 질 세계화의 의의 및 정책 과제")

 

그러나 한국은 그 해가 미처 가기 전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김영삼 정부의 잘못된 세계화가 한국을 초대한 곳은 4만 불이 아니라 IMF였다.

 

과연 김현종은 박세일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미국이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무역 관계의 증진을 위해'

한국에게 제2의 프라자 합의를 요구하면 한국은 무슨 대책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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