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김홍도의 지장기마도 화제

허접떼기 2020. 3. 18. 00:08


이 그림은 진위의 논란이 있다.

1900년대 초반 박은규라는 이가 이 그림을 모사한 것이 전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도

이동천 감정학 박사의 <미술품 감정비책>에 의하면 소루(小樓) 이광직(李光稷)이 모사한 것이라고도 한다.


명의살인(名醫殺人)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이름난 의사가 사람을 죽였다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뒷말이 생략됐다.

돌팔이가 환자를 치료하다 죽이면 의사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지만,

명의가 환자를 치료하다 죽이면 죽을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 권위에 의한 거짓은 모든 분야에서 이뤄진다. 미술사도 마찬가지다.


작품 진위의 사실은 이미 작품과 함께 존재한다.

나는 이 그림에 찍힌 주문방인(朱文方印) 臣弘道(신홍도)

백문방인(白文方印) 醉畵師(취화사)까지 모각된 것이라 하여도

그림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니 그림의 진위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이 그림에 쓰인 글에 대하여만 집중 했다.

이 글의 앞 네 글자가 이 그림의 이름이 되었다.

 

知章騎馬似乘船 지장기마사승선

眼花落井水底眠 안화락정수저면

 

지장은 말 타기를 배 타 듯하고

몽롱하여 우물에 빠져도 물 아래서 잠을 잔다.

 

이 시()두보(杜甫, 721770)<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첫 구절이다.

 

두보가 '음중팔선'이라고 한 사람들은

() 개원(開元,713741), 천보(天寶,742756)년간 시와 술을 사랑한 여덟 명으로

전통 '팔선'들을 대신하여 유명한 술꾼들이다.

 

그들 여덟은 하지장(賀知章), 여양왕이진(汝陽王李進), 이적지(李適之),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晋), 이백(李白), 장욱(張旭), 초수(焦遂).

두보가 그 각각의 인물들을 한 구절씩 묘사하여 시를 읊은 것이다.

 

이 그림의 글은 바로 하지장(賀知章,659-744)에 대한 묘사다.

하지장은 이백을 발견한 사람으로 비서감에 올라 하감(賀監)으로 불렸다.

 

두보가 음중팔선가에 적은 나머지 인물묘사를 번역하면 이렇다

 

-여양(汝陽王 李璡, ?-750)은 세 말을 마셔야 조정에 나아가고

길에서 누룩수레를 만나면 입에서 침이 흐르고

주천(酒泉)으로 봉작이 옮겨지지 않음을 한스러워 했다.

-좌상<左相,이적지(李適之,?-747)>은 하루 유흥비가 만전이고

긴 고래가 강물을 들이키듯 술을 마시며

맑은 술만 마시고 탁주는 피하였다.

-종지<최종지(崔宗之,?-?)>는 준수한 미남인데

잔 들고 눈 흘기며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게

옥으로 다듬은 나무가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듯하다.

-소진(蘇晋,676-734)은 수놓은 부처 앞에서 오랫동안 정진하다가도

취하면 때때로 참선 파하기를 즐긴다.

-이백(李白,701-762)은 술 한 말에 시 백편을 쓰는데

장안 저자 술집에서 자고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자칭 신은 술 마시는 신선입니다한다.

-장욱(張旭,685?-759?)은 석 잔쯤 마셔야 초서를 쓰는데,

왕공 앞에서 모자 벗고 정수리를 들어내고

구름과 연기처럼 종이위에 일필휘지 한다

-초수(焦遂,?-?)는 다섯 말을 마셔도 의젓하고

고담웅변으로 청중을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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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왼쪽의 글은 이렇다

 

甲子臘念丹邱寫于瑞墨齋

갑자납념단구사우서묵재

 

갑자년(1804) 동지 후 세 번째 술일(戍日)

단구가 박유성(朴維城,1745-1816?)의 집에서 그렸다.

 

()은 섣달 곧 음력 12월이고

납념(臘念)은 동지가 지나고 세 번째 다가오는 술일이다.

瑞墨齋(서묵재)는 단원과 이인문과 동갑 화원인 박유성이다.

 

이 그림이 김홍도가 그린 진본이 아니라도 아마도 상당히 원본에 가까울 것이라고 본다.

김홍도가 나이 60에 그렸다는 것이고,

정조가 붕어한지 4년이 지났다는 시기라는 것이다.

김홍도의 절대적인 지지자가 사라지고 노인이 된 상황을 나는 안쓰럽게 느끼며 공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