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의 무인식성명 화제
단원이 60세 전후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10폭의 수묵담채화 화첩이
경매에 나왔다가 유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첩의 크기는 (37.8cm☓33.8cm)이다.
일본인이 소장 하고 있다고 하는 그 화첩, 한 그림의 화제를 본다.
그림은 이른바 무인식성명(無人識姓名)이라는 제목을 가졌다.
飼驢留野店(사료유야점) 買藥入山城(매약입산성)
나귀 먹이려 가게에 머물다, 약을 사고 산성에 들었다.
興盡飄然去(흥진표연거) 無人識姓名(무인식성명)
흥이 사라져 훌쩍 가버렸으니, 이름 아는 이 없으리라.
飄然(표연): 바람에 가볍게 팔랑 나부끼는 모양
훌쩍 나타나거나 떠나가는 모양
화제 글의 출처를 검색을 하다, 중국의 바이두에서 찾았다.
육유(陸游 1125-1210)가 쓴 物外雜題(물외잡제)중의 하나라 한다.
단원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유의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이며 산음(山陰:浙江省)에서 태어났다.
金(여진)에 북송이 멸망하자 남으로 피난온 그는 철저한 항전주의자였으며,
생애 1만 수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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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내용에 나오는 흥진(興盡)을 좇아가 본다.
육유는 같은 고향을 가진 왕휘지의 일화를 시에 인용한 것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편(任誕第二十三)》에 산음승흥(山陰乘興)이 나온다.
산음 땅에서 흥이 일었다는 말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을 뜻한다.
이 성어는 중국 동진(東晉)시대,
왕희지(王羲之)의 다섯 째 아들 왕휘지[王徽之, 자는 자유(子猷)]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왕휘지(王徽之)가 산음현(山陰縣)에 살았는데, 어느 밤에 큰 눈이 왔다.
문득 잠에서 깨 문을 열고 술상을 가지고 오라했다. 사방이 밝았다.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었다.
문득 대규(戴逵, 자는 안도(安道))가 생각났다.
마침 대규는 섬(剡)에 있어, 즉시 밤에 작은 배를 빌려 그곳에 갔다.
밤새 다다랐는데, 그 집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원래는 흥이 나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는데, 어찌 꼭 대규를 보아야만 하는가? ”라고 하였다.
王子猷居山陰,夜大雪,眠覺,開室,命酌酒。四望皎然,
因起仿偟,詠左思招隱詩。忽憶戴安道,時戴在剡,即便夜乘小船就之。經宿方至,造門不前而返。
人問其故,王曰吾本乘興而行,興盡而返,何必見戴?
이때부터 산음승흥(山陰乘興)은 ‘친구를 방문(訪問)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달리 산음야설(山陰夜雪), 흥진이반(興盡而返)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