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단원의 무인식성명 화제

허접떼기 2018. 4. 12. 12:13

단원이 60세 전후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10폭의 수묵담채화 화첩이

경매에 나왔다가 유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첩의 크기는 (37.8cm☓33.8cm)이다.


일본인이 소장 하고 있다고 하는 그 화첩, 한 그림의 화제를 본다.

그림은 이른바 무인식성명(無人識姓名)이라는 제목을 가졌다.



  

飼驢留野店(사료유야점) 買藥入山城(매약입산성)

나귀 먹이려 가게에 머물다, 약을 사고 산성에 들었다.

興盡飄然去(흥진표연거) 無人識姓名(무인식성명)

흥이 사라져 훌쩍 가버렸으니, 이름 아는 이 없으리라.

 

   飄然(표연): 바람에 가볍게 팔랑 나부끼는 모양

                   훌쩍 나타나거나 떠나가는 모양

 

화제 글의 출처를 검색을 하다, 중국의 바이두에서 찾았다.

육유(陸游 1125-1210)가 쓴 物外雜題(물외잡제)중의 하나라 한다.

단원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유의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이며 산음(山陰:浙江省)에서 태어났다.

(여진)에 북송이 멸망하자 남으로 피난온 그는 철저한 항전주의자였으며,

생애 1만 수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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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내용에 나오는 흥진(興盡)을 좇아가 본다.

육유는 같은 고향을 가진 왕휘지의 일화를 시에 인용한 것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편(任誕第二十三)산음승흥(山陰乘興)이 나온다.

산음 땅에서 흥이 일었다는 말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을 뜻한다.

이 성어는 중국 동진(東晉)시대, 

왕희지(王羲之)의 다섯 째 아들 왕휘지[王徽之, 자는 자유(子猷)]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왕휘지(王徽之)가 산음현(山陰縣)에 살았는데, 어느 밤에 큰 눈이 왔다.

문득 잠에서 깨 문을 열고 술상을 가지고 오라했다. 사방이 밝았다.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었다.

문득 대규(戴逵, 자는 안도(安道))가 생각났다.

마침 대규는 섬()에 있어, 즉시 밤에 작은 배를 빌려 그곳에 갔다.

밤새 다다랐는데, 그 집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내가 원래는 흥이 나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는데, 어찌 꼭 대규를 보아야만 하는가? 라고 하였다.

王子猷居山陰夜大雪眠覺開室命酌酒四望皎然

因起仿偟詠左思招隱詩忽憶戴安道時戴在剡即便夜乘小船就之經宿方至造門不前而返

人問其故吾本乘興而行興盡而返何必見戴



이때부터 산음승흥(山陰乘興)친구를 방문(訪問)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달리 산음야설(山陰夜雪), 흥진이반(興盡而返)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