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문이 그린 황초평
사마중달에서 시작하여 손자 사마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고 세워진 나라 진(晉)대에 살았다는 신선이 있다.
그의 이름은 황초평(黃初坪)이다.
황초평에 관한 내용은 중국 진(晋)나라의 갈홍(葛洪)이 지은 ‘신선전(神仙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황초평은 단계(丹溪) 지역에 사는 양치기였다.
그가 15세 되던 날 그의 성품이 매우 착한 것을 본 신선이 금화산(金華山)에 데려가 신선도를 가르쳐 닦게 했다.
40여년이 지나서 그의 형 황초기(黃初起)가 아우를 찾아 금화산에 가 보니 아우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형은 동생에게 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황초평이 흰 돌들을 수만 마리의 양으로 둔갑시켰다.
그래서 황초평은 채찍을 들고 양을 몰고 가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내용은 당시 사람들의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홍콩에 가면 적송산에 윙타이신(黃大仙)을 모시는 사원이 있다. 황대선이 바로 황초평이다.
이인문의 그림에 적힌 시제에 황초평이 나온다.
그래서 그림의 주인공이 황초평인 줄 알게 되는데 시제의 첫 글자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제를 쓴 사람이 간재(艮齋) 홍의영(洪義榮)임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단원의 <삼공불환도>를 비롯하여 정조 당대 여러 화가들에게 시제를 써 준 사람이다.
해서와 초서를 아주 잘 썼다고 전해진다.
爾豈非黃初平後身 (이기비황초평후신)
豈非(기비)는 어찌 ~가 아니겠는가?라는 뜻이기에 대개 글의 첫마디에 나온다.
後身(후신)이라 썼으니 어떤 이가 부활하여 다시 태어난 몸이란 뜻이다.
“그대가 황초평의 후신이 아니겠는가?” 라는 뜻이 된다.
여기 첫 글자 너라는 뜻의 爾의 초서체가 그림에 보이는 글자임을 겨우 알았다.
도교·불교와 관련된 소재를 다룬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는 양과 관련된 신선 황초평(黃初平)이 자주 등장하고,
김홍도도 황초평이 양을 몰고 가는 그림을 남겼다.
좌측의 글이 금화편양(金華鞭羊)이다.
금화산에서 채찍을 들고 양을 몰고가는 황초평을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