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글

坐茂樹以終日(좌무수이종일)

허접떼기 2018. 2. 15. 16:47

窮居而野處 升高而望遠 (궁거이야처 승고이망원)

은 한 되 두 되의 부피 단위 되지만. 여기서는 오르다=이다

곤궁히 살아 들에서 지내며 높은 데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고

坐茂樹以終日 濯淸泉以自潔 (무수이종일 탁청천이자결)

는 앞 내용으로 뒤를() ~ 한다는, ~ 써 이다

무성한 나무에 앉아 종일 있다가 맑은 샘에 씻으니 저절로 깨끗하고

採於山美可茹 釣於水鮮可食 (채어산미가여 조어수선가식)

고문진보를 해석하여 출간한 많은 분들은 채어산 미가여로 띄워 하여,

산에서 캐어, (: 여기서는 예쁘다가 아닌 맛있다는 뜻)(먹다 여)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붙인들 뗀들 별 차이는 없고 = 可茹로 목적어가 되고 를 종결동사로 해도 무방하니

먹을 만한 맛난 것을 산에서 캐다. 이리 해하여도 될 듯싶다.

산에서 맛난 것을 캐니 먹을 만하고 물에서 싱싱한 것을 낚으니 먹을 만하다.

起居無時 惟適之安 (기거무시 유적지안)

起居는 우리말 기거하다 이고, 는 오로지, 은 따르다. 는 주격조사로 본다.

기거에 때도 없고 오로지 편안함을 따른다.

與其譽於前 孰若無毁於其後 (여기예어전 숙약무훼어기후)

는 비교격으로 무엇 무엇보다, 무엇 무엇과로 뒤 따르는 형태를 목적절로,

이어지는 (: 누구, 무엇)의 의문문과 연결된다.

앞에서의 좋은 평판과 뒤에서 헐뜯지 않는 것이 무엇이 같겠는가?

與其樂於身 孰若無憂於其心 (여기락어신 숙약무우어기심)

몸에 즐거운 것이 마음에 걱정 없는 것과 뭐가 같겠는가?

車服不維 刀鋸不加 (거복불유 도거불가)

는 벼리, 밧줄이고 동사로 생각하다, 유지하다이며

刀鋸는 칼과 톱이다.

형벌에 쓰는 도구로 거세용 칼과 뒤꿈치를 자르는 톱을 일컫기도 한다.

타고 입는 거 생각하지 않고 칼과 톱도 더하지 않고

理亂不知 黜陟不聞 (이난부지 출척불문)

理亂은 반어대구로, '다스리고 어지럽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로도 쓰이는 데, 물을 다스린다.’ 옥을 다스린다.’였다.

보다는 가 주로 사용되다,

당 고종의 이름이 李治(이치)여서 ()를 피하기 위해 당대 작품에는 가 주로 쓰였다고 한다.

黜陟은 쫓아 내치기만 하는 黜斥(출척)과 다르다.

은 내몰다이며, 은 올리다. 승진하다의 뜻으로

庚申年(1680) 大黜陟처럼

남인은 축출되고 서인은 정권을 잡아 서인기준으로 경신환국이라 하는 사건을 참조한다.

다스림과 난리도 알지 못하고 내치던 올리던 들리지 않으니

大丈夫不遇於時者之所 (대장부불우어시자지소)

대장부가 때를 잘못 만난 것에 있는 것이다.

我則行之 (아즉행지)

내가 바로 그리 한다.

 

당나라 문장가 韓愈(한유)가 쓴 送李愿歸盤谷序(송이원귀반곡서)중의 일부다.

한유가 이원을 전송하고 반곡에 들어와 쓴 (주로 사적의 요지를 적은 글)에 나오는

坐茂樹以終日 濯淸泉以自潔 (무수이종일 탁청천이자결)은 여러 사람들이 인용하는 시구다.

김시습은 이 구절을 제목으로 두 개의 시를 남겼고,

단원은 이른바 觀山濯足圖(관산탁족도)를 그리면서 로 바꿔 화제를 썼다.

단원이 나이 들어 丹邱를 호로 쓴 그림에 화제 글자가 원본과 다른 경우를 몇 몇 본다.